서울신문 기자들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고발에 ‘기획미투’ 의혹을 제기한 칼럼 게재 사태를 두고 작성자인 곽병찬 논설고문의 거취 결정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 편집분회는 13일 성명을 내고 지난 6일 지면에 실린 곽병찬 비상임 논설고문의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 칼럼보도를 놓고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에 요구안을 내놨다. 기협 서울신문지회와 지부 편집분회는 12일 저녁 기자총회를 열어 곽 고문 칼럼에 대한 대응 방향과 대안을 토론했다. 50명가량의 기자가 총회에 참석했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성명에서 “성폭력 사건 언론보도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신상 정보 유출과 2차가해 등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오래 전 확립된 사회적 합의”라며 “고소인 핸드폰을 포렌식하자는 곽 고문 칼럼은 일반 상식에 크게 벗어났고 서울신문 구성원이 용인하는 한계도 넘어섰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현 경영진 취임 뒤로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칼럼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일련의 시도에 우려를 표명하며 이런 태도는 정론지를 지향하는 서울신문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 문제는 정부의 오랜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된 구조적 악습”이라고도 밝혔다. 곽 고문은 서울신문 대주주인 정부 주도로 고광헌 서울신문 사장이 임명된 뒤 서울신문 비상임 이사에 임명됐다.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 편집분회는 12일 저녁 기자총회를 열어 곽 고문 칼럼에 대한 대응 방향과 대안을 토론했다. 사진=기협 서울신문지회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 편집분회는 12일 저녁 기자총회를 열어 곽 고문 칼럼에 대한 대응 방향과 대안을 토론했다. 사진=기협 서울신문지회

기자들은 “곽병찬 고문이 이번 칼럼 논란과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사장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해 달라”고 밝혔다. 곽 고문이 논설고문을 그만두라는 요구다.

기자들은 또 ‘사회적 합의에 배치되는 주장이나 기사가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출고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칼럼처럼 혐오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내용이 발견되면 1~2일가량 출고를 미루고 긴급위원회를 소집하기를 제도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젠더데스크 역량과 권한을 강화하라고도 밝혔다. 서울신문은 현재 젠더감수성 관점으로 편집국 운영에 개입하는 젠더데스크를 뒀지만, 인원이 1명이고 출고 라인을 일시중지할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재발 방지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또 ‘인권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이들은 “여기서 합의된 내용을 서울신문의 보도준칙으로 만들고 전문가 강연을 열어 구성원들이 인식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류지영 기협 서울신문지회장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표현의 자유 영역에 들어가느냐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곽 고문이 그간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글을 지속 양산해온 시스템에 문제의식이 더해졌다”고 요구안 발표 배경을 밝혔다. 

곽 고문 칼럼은 고 박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의 2차가해 비판 발언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빗대며 ‘기획미투’ 의혹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또 수사기관이 피해자 휴대전화를 포렌식 할 것도 요구했다. 편집국은 칼럼이 실리기 전날과 당일 5판이 나간 뒤 논설실에 게재 반대 뜻을 전했지만 칼럼은 일부 문장만 수정됐다. 50~52기 기자들과 편집국장, 부국장, 부장, 차장 등이 비판 입장문을 냈다. 편집국은 해당 칼럼을 온라인에 게시하지 않았고, 논설실은 이에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재차 비판 입장을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