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의 발언을 박정희 독재정권의 긴급조치에 빗댄 서울신문 칼럼과 관련해 내부에서 비판 성명이 잇따라 나왔다. 반면 서울신문 논설실장 등이 “칼럼에 동의하진 않지만 칼럼 삭제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논설위원과 편집인을 지낸 곽병찬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고문은 지난 6일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 칼럼에서 “피해자를 의심하는 건 책임 전가이자 2차 가해”라고 한 김재련 변호사 발언을 두고 “의심해서도 안 되고, 문제 제기해서도 안 되며, 그저 믿고 따르라니, 어처구니없었다. 1970년대 긴급조치가 부활했나”라고 썼다. 이어 ‘미투’에 대해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걸고 고발하는 일이라며 ‘가짜 미투’사례를 들고 “미투에 대한 특별한 예우는 바뀌지 않았다”고 썼다. 이 칼럼에선 “고소인의 핸드폰을 수사기관에서 포렌식해 증거를 찾도록 하면 된다”라며 현재 ‘미투’가 “광기에 의지한다”고 썼다.

칼럼이 실린 후 서울신문 사회부 한 기자는 해당 칼럼이 긴급조치 비유 등 논리적 비약으로 채워졌고, 미투 사건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포함돼있으며 피해자에게 기획 가능성이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문을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은 피해자 명예훼손이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김재련 변호사 비판, 서울신문 칼럼 온라인 미게재 왜?)

▲서울신문 6일 곽병찬 칼럼.
▲서울신문 6일 곽병찬 칼럼.

7일 서울신문 50기, 51기 기자들도 해당 칼럼을 비판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서울신문 50기 기자들은 “곽 고문의 칼럼은 박 전 시장 사망 직후 피해자를 향했던 2차 가해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며 “지극히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임에도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를 끌어오고 이미 포렌식을 진행한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이 포렌식 해 증거를 수집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의 잘못을 희석하려 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50기 기자들은 “고광헌 사장, 박홍기 이사, 문소영 논설실장, 안미현 편집국장을 비롯해 책임 있는 분들의 진지한 답변과 해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칼럼이 지면에 실리게 된 과정 △내부 문제제기에도 칼럼을 내리지 않은 경위 △최종적으로 이 칼럼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주체 △최종 판단의 배경과 이유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51기 기자들도 같은 날 “‘그 지면’보다, 뒤처리가 더 부끄럽습니다”라는 성명을 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우리 회사의 위상과 신문의 상품 가치를 크게 떨어뜨린 일”이라면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보도 사례와 비교해 비판했다. 51기 기자들은 “서울신문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발생 이후 바로 다음 지면 기사로 1면에 ‘설 자리 없는 피해 호소인’에 대해 다뤘고, 줄곧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대해 다뤘다”며 “편집국 회의를 거쳐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 역시 피해자로 바꿨다”고 전했다. 앞서 7월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이후 피해자 중심 보도 스탠스로 선명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51기 기자들은 “하나의 조직에서 정반대의 목소리를 버젓이 내는 서울신문을, 어떤 독자가 신뢰할 수 있겠나”라며 사장과 논설실장 등에게 경위를 밝히고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요구했다.

7일 오후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사내 게시판에 곽병찬 칼럼의 논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칼럼 삭제에는 반대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논설실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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