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기자가 자신이 겪은 일이라고 털어놓은 이야기다. 사회부에서 정치부로 발령받은 첫 날, 치마를 입고 국회로 출근했다고 한다. 사회부 업무 특성상 집회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길바닥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 많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바지를 입었는데 국회 첫 출근날 치마를 입고 싶더라는 것이다. 치마를 입은 대가는 혹독했다. 국회 출입 선배 기자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 네가 여자냐?”라는 질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얼 묻고자 하는 거지 당황해하며 여성 기자가 머뭇거리자 선배 기자는 “너는 여자가 아니라 기자야”라고 말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우선인데 여성성을 내세운 치마를 국회에서 입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말이었다.

여성 기자가 겪은 ‘황당한 경험’이 벌어진 때는 2007년이라고 한다. 2020년 국회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자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이 성희롱성 댓글을 달면서 논란이 됐다. 13년 전 여성 기자가 받았던 비슷한 말들이 쏟아졌다. ‘넌 젊은 여성이 아니라 국회의원이야’

언론의 시선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관음증적이고 선정적이다. 국회 본회의 표결을 하는 모습이 아닌 굳이 류 의원이 원피스가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도했고, 성희롱성 댓글이 달리자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트래픽 올리기 소재로 활용하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류 의원이 입었던 원피스 제품과 가격을 소개하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면서 류 의원에게 ‘완판녀’라고 이름을 붙여준 주요 일간지의 보도에선 천박함마저 느껴진다.

여성 기자의 눈에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는 어떻게 비쳤을까. 그는 “한국 사회는 국회라는 공간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권위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려는 모습을 보이면 가차 없이 비난한다. 13년 전에도 그렇지만 현재도 한국 사회는 반드시 넥타이에 정장을 갖춰서 입어야만 국회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처럼 낡은 게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특히 “보통 남자들은 치마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처럼 편한 게 없다. 하체 압박이 없고 해방된 느낌이다. 그래서 치마를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국회 취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편안함 때문에 치마를 입고 나갔던 것처럼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도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더욱 이상하다는 것이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7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7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한 것처럼 류 의원의 원피스는 “국회의 과도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깨 준”이라고도 볼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한참 전에 타파했었어야 할 국회의 쓸데없는 권위를 돋보이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언론은 국회의 과도한 특혜를 타파하자는 쪽으로 보도의 방향을 틀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으레 초선 의원들이 특권을 타파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만 제도와 문화로 정착된 경우는 많지 않다. 공항 VIP 이용 등 나쁜 특권은 당장 없앨 수도 있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우리에게 생소한 모습이지만 별도 차량 유지비와 관용차가 없는 유럽 국회의원들에게 자전거는 출퇴근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 출퇴근 모습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국회 본회의 복장을 놓고 권위 타파라는 해석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뉴스 거리가 아니었을 때 한국 사회는 진전될 수 있다. 치마와 원피스는 그냥 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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