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2583만3325명

2020년 6월 기준 수도권 인구수는 2600만6083명이다. 우리나라 총 인구의 50.16%에 해당한다. 2019년 12월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돌파한 이후에도 거침이 없다. 수도권은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11.8%를 차지할 뿐이다. 결코 넓지 않은 국토의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 남북한을 합친 인구의 3분의 1이 거주하는 꼴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지독한 수도권 과밀화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수도권 밖에는 무려 2583만3325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 연합뉴스
▲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 연합뉴스

#국립대전현충원

장장 10km에 달하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는 2020년 6월30일 기준 9만2964개의 묘소가 매장되어 있다. 4만1248개의 위패도 봉안되어 있다. 당사자들은 국가원수를 비롯해 독립유공자, 의사상자, 독도의용수비대 등에 이른다. 최근 백수를 넘기고 숨진 백선엽 전 육군대장의 안장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전쟁 영웅과 친일파라는 상반된 평가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일부 정당과 언론은 마치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사리에 맞고,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면 홀대라는 투의 주장을 쏟아냈다. 똑같은 국립묘지이더라도 어디에 묻히는지가 격과 급을 좌우한다는 평소 사고의 발현이리라. 대전 시민으로서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하고 계신 호국영령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뿐 아니라 죽어서도 서울로 보내야 하나 보다.

#BTS(방탄소년단)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이 그저 허황된 소리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건 말이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있기 마련이다. 이동성이 제한된 시절일수록 그렇다. 지금은 아니다. 네트워크 사회가 고도화하면서 거리는 소멸되고 국경은 사라졌다. 한때 이 현상은 중심부가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간주되었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어디에 위치하건 전 세계가 공평한 경쟁의 장으로 평평해졌다. 1945년과 1956년에 각각 개업한 군산의 이성당과 대전의 성심당이 전국적 지명도를 얻은 건 네트워크를 타고 확산한 입소문 덕분이었다. 네트워크 시대의 산물인 유튜브가 없었다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BTS도 마찬가지다. 음악의 변방인 한국에서 소형 기획사 소속의 비영어권 아시아인이자 보이밴드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전 세계적 도달 능력을 갖춘 유튜브와 트위터 등을 활용해 팬 한명 한명과 교류했기에 아미(A.R.M.Y.)라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BTS가 생산하는 물질적·상징적 재화의 충성스러운 소비자인 아미 역시 유례없이 다양한 인종과 나이, 계층,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소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사람을 굳이 서울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 BTS (방탄소년단). 사진=BTS 공식 홈페이지
▲ BTS (방탄소년단). 사진=BTS 공식 홈페이지

#차별금지법

우리 헌법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을 금하고 있다. 나아가 행복 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대기 중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이 될까 의문이다. 헌법과 법률이 무색하게 수도권 밖 지역은 ‘계륵’ 취급당하는 현실이다. 자식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는 게 자랑이다. 부모가 아프면 수도권에 자리한 큰 병원에 모시는 게 자식의 능력이다. 전도된 의식이라 일축하지 말라. 이건 오랜 기간 사회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심리적으로 주입돼 형성된 결과다.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미디어의 지역 감수성 부재가 뼈아프다. 존립 근거가 지역성 구현이라는 공공성을 띤 지역방송은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지 꽤 됐다. 그리고 국가는 이를 방치했다. 그 결과 방송사 내부에는 체념과 냉소주의가 자리 잡았다. 학계에서는 지역방송 현장을 키스테이션의 ‘내부 식민지’에 빗댄다. 명색이 지방자치제를 실시함에도 지역 내 공론의 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도권 밖 지역은 차별을 넘어 방치 상태다.

#해리포터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은 옳음과 그릇됨보다 옳음과 손쉬움의 구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표현을 소설 <해리포터>의 어느 구석에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간 지역방송 정책은 옳고 그름을 떠나 가장 손쉬운 방식을 견지할 뿐이었다. 무대책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방송의 출발 자체가 기형적이었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할 목적에서 기획되고, 지역방송도 순전히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복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애초 지역방송은 독자적 비전이나 전망 없이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도 지역방송은 지역사회의 자생적 성장과 지역주민의 이익 실현이 아닌 정권의 효율적 통치에 복무할 뿐이었다. 2000년 방송법 제정 이후에만 20회가 넘는 개정이 있었으나 지역방송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재송신 등의 문제로 사업자 간 갈등을 봉합하는 경우에만 가동되었다. 2014년에 제정·시행된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은 지역방송 활성화의 단초가 되리란 기대를 한껏 받았으나 후하게 말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손쉬운 정책 행위의 관행과 유혹부터 뿌리쳐야 한다.

#이재명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올해로 사반세기가 됐다.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으로 내년부터 중앙 행정 권한의 이양이 이루어진다. 재정분권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자치경찰 등도 추진 중이다. 그만큼 자치단체와 단체장의 역할과 권한이 커진다. 옳은 방향임에도 걱정이다. 시장, 도지사, 구청장, 군수의 권력을 일선에서 견제할 지역방송이 유명무실해진 탓이다. 지역방송의 재설계 없이 확대될 분권과 자치는 죽 쒀서 개 주는 비극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건대, 지역방송을 상향적·하향적 커뮤니케이션이 교차하는 지역사회 소통의 장으로 변신시키기 위해선 정책의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소극행정의 틀과 복지부동의 문화로는 어림없다. 무상교육이 안착하고 기본소득이 화두로 떠오른 과정을 되돌아보라.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경기도가 공공 부문만이라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게, 비정규직 중 고용기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상이 다 현실이 되진 않으나 상상하지 않고 세상을 바꿀 순 없다. 지역방송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라. 손쉬움 말고 옳은 방향에서.

▲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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