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법조기자 출신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가 쓴 ‘법조 뉴스 생산 관행 연구-관행의 형성 요인과 실천적 해법’이란 제목의 논문이 지난 6월 발간된 한국언론정보학보에 실렸다. 본인의 법조 출입경험과 전·현직 법조출입기자 18명(현직 10명, 전직 8명) 심층 인터뷰를 통해 소위 ‘친검 기자’를 ‘법조 전문기자’로 바꿔낼 방법들이 실려 주목된다. 

박영흠 교수는 “개별 기자를 비난하거나 각성을 요구하는 방식만으로 관행의 개선은 불가능하다”며 기자들이 전지적 검찰시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적으로 법원 중심 보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조국 전 장관 수사 보도는 압도적으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지만, 몇몇 언론사에서 연재하고 있는 사법농단 재판 추적 보도는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법원 공판 기사에 대한 저조한 관심을 지적하며 뉴스수용자의 변화를 당부했다. 

법원 중심 보도로의 전환을 위해선 많은 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 일단 공판 기사는 검찰발 기사에 비해 종일 재판을 들여다 한다는 점에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인사이동이 잦은 언론사 속성상 한 명의 기자가 연속성을 갖고 하나의 재판을 추적하며 심층 분석을 하기도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법원의 업무 과정 및 패턴과 맞는 새로운 취재 관행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보도 관행은 다수의 언론사가 참여해 공론화하고 합의해야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박 교수는 “현행 취재 시스템에서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고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는 순간 담당 기자는 검찰 출입기자에서 법원 출입기자로 바뀐다”며 기자가 출입처를 담당하지 않고 사건을 담당하는 ‘사건기자’ 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특정 이슈나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또는 환경부 출입기자가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재판을 취재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담당 분야 사건을 취재하도록 출입처를 개방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식도 있다.

▲검찰. ⓒ연합뉴스.
▲검찰. ⓒ연합뉴스.

첫 번째 방법이 취재 공간을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기는 것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인력보강이나 기사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취재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인력을 보강해 기자들이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고 정확성과 심층성을 담보하는 취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검찰은 물론 법원 출입 인력 증원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력 증원이 어렵다면 “법조팀에서 생산하는 절대적 기사량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해당 논문에서 인터뷰에 참여한 익명의 신문사 기자는 “권력형 비리수사 의혹 제기가 되었다 그러면 모든 언론이 면을 잡아놓고 시작한다. 종합 1면 톱, 종합 3면 톱, 종합 4면 톱. 6∼7명의 기자가 10000자를 채우기 위해서, 오후 5시까지 기사를 막기 위해 정말 피가 마르는 노력을 한다”며 “심적 압박감에 못 이겨서 극히 소수의 기자는 소설을 쓴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신문사 기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면 취재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일단 지면을 비워놓고 업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법조 출입처가 한국 언론으로부터 과도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법조의 뉴스 가치가 과대평가 받고 있다”며 “검찰 수사는 실제 사회적 의미 이상으로 취재와 보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과도한 관심이 법조의 위상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라고 지적하며 “법조 출입처에 대한 재평가 및 인력 조정과 재배치의 선택은 결국 뉴스룸의 리더십이 ‘결단’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했다. 

세 번째 방법은 법조기자단에서 누리는 특권을 해체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안이 투명한 정보 공개 시스템 구축이다. 법조는 다른 출입처에 비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지나치게 크다. 박 교수는 “법원과 검찰의 정보 공개가 지금보다 훨씬 투명하고 광범위한 수준으로 이뤄진다면, 기자들이 굳이 음성적으로 정보를 얻어야 할 유인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은밀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을 의미하는 소위 ‘빨대’와 특혜를 얻는 배타적 기자단이 사라질 수 있다. 

박 교수는 “형사사건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법조 기자단이 누리는 배타적 혜택도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기자실의 폐쇄성이나 기자단 가입·운영과 관련된 논란도 상당 부분 불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면에서 지난해 등장한 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최대한의 정보 개방과 자유로운 정보 유통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방침이어서 재개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다.

▲검찰 깃발. ⓒ연합뉴스.
▲검찰 깃발. ⓒ연합뉴스.

 

“검찰 기자들, 열심히 할수록 기레기 되는 상황에 억울”

박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수용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전통적 언론은 법조에서 수용자들에게 대체될 수 없는 효용을 제공함으로써 신뢰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한편 “기자 집단 전체를 싸잡아 부도덕한 기득권으로 규정하거나 적대시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권력형 비리 수사가 정국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한국 정치의 특수한 맥락과 해외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집중된 권력을 가진 한국 검찰이 없었다면 한국 언론의 법조 뉴스 생산 관행은 지금과 매우 다른 형태를 띠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대부분의 기자들은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피의사실 보도에 비판적인 동시에 수사에 대한 보도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절충적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인터뷰 참가자들이 최근 강하게 의식하거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미디어 외부 요인은 정치·경제 권력의 개입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압력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몇몇 검찰 출입기자들은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으로 인해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고 전하며 “‘열심히 하면 할수록 기레기가 되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국정농단 수사 당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보도를 했음에도 시민들이 진영논리에 근거해 일관되지 않은 비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기자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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