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 예술인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문화예술계 지원대책을 우후죽순 내놓았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미디어오늘에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연속기고를 보내왔다. 정부의 예술인과 문화예술계에 대한 코로나19 재난지원대책을 뜯어보고 그 방향과 실효성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심각 단계 격상 뒤인 3월 프리(Pre-production, 영화 본 촬영 전 준비단계)가 한창인 현장에서 미술팀으로 일하는 스태프 A는 제작사로부터 무급휴직 제안을 받는다. 기한은 2주였다. 프리단계에 고용된 제작, 연출, 미술 스태프에게 모두 제안된 내용이다. 일하지 말라는 통보도 아니고 이 일이 아니면 마땅히 일도 없으니 코로나19 사정을 고려해 받아들이기로 한다.

영화 일정이 미뤄지면서 촬영 단계(프로덕션)에 고용되는 촬영팀 스태프 B는 크랭크인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원래 촬영예정일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지연이 반복되다 아예 중단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촬영이 진행되지 않으니 고용은 미뤄진다. 고용이 돼있지 않으니 ‘무급휴직’은 성립이 안 된다. 영화가 엎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해외촬영 중이던 스태프 C는 촬영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제작사의 판단에 따라 귀국했다. 제작사는 촬영을 재개할 것을 언급하고 스태프 C를 포함한 스태프들의 계약을 해지한다. 영화가 언제 재개될지는 알 수 없다. 

후반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영화현장의 제작이 줄어듦에 따라 나중에 체감할 것이다. 영화들의 제작 일정이 밀리면서, 한정된 기간에 후반작업이 몰려 가뜩이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코로나19로 더 긴 시간 노동이 고착화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5월8일 발행한 ‘코로나19 충격: 한국영화산업 현황과 전망’ 이슈페이퍼는 5월4일 현재 촬영준비, 촬영, 후반작업, 개봉준비, 개봉단계에 있던 82편의 영화 가운데 절대 다수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 혹은 연기됐으며 413명의 고용이 중단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중 227명 고용이 연기됐고, 186명은 취소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영화제작 현장 피해 실태조사 중간보고서(영진위 내부자료)’를 인용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이슈페이퍼는 또 영화산업 및 관련 인근 산업의 직간접 피고용자 수는 3만 4835명으로 추산하며 최근 극장매출 감소로 2만명 넘게 고용불안 위험에 노출됐다고 전망한다. 최근 영화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코로나19 피해현황 설문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제작중단 또는 연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8.6%였다. 이중 제작 현장이 재개돼 고용된 경우는 1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2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는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영화산업에 영화발전기금 170억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그중 90억원 예산이 ‘코로나19 특별 국민영화관람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관객을 위로한다는 명분 아래 영화관에 지원됐다. 종사자와 스태프 지원은 제작사를 통한 ‘코로나19 한국영화제작활성화지원’으로 귀결됐다. 스태프의 고용유지 노력 등은 지원 요건에 반영되지 않았다. 피해 영화인을 직접 지원하란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산 170억원 중 90억원을 영화관람권 지원에 써서 극장에 관객을 유인해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영화산업을 진작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3차 추경예산 편성에 즈음해 영진위는 영화 현장과 간담회를 통해 같은 입장을 재차 피력했다. 현장과 소통은 충실히 진행되지 않았다. 영진위가 언급했던 생계비 지원성격의 사업예산도 편성되지 않았다. 6월17일 ‘무비스트’ 보도에 따르면 영화관람권 지원에 쓴 90억원의 95%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Q 등 멀티플렉스 4사에 지원됐다. 코로나19 피해가 영화 현장의 모두에게 해당함에도 피해회복의 손길은 모두에게 닿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19 상황 속 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 예술인의 실업위기와 생계위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무급휴직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마련하고 6월1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영화현장 일이 1년 내내 있는 것이 아니고 일하는 기간이 특정된 것도 아니니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소득감소 비교 대상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스태프와 영화산업 종사자가 혜택을 받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나마 현장 스태프에게 직접 효과가 있는 현장영화인직업훈련을 통한 훈련비용 지급 사업은 대상 인원을 720명으로 한정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언급된 2만명의 고용불안 위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한편 노동조합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74%에 달하는 사람이 이런 지원 사업을 모른다고 응답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그간 영화 정책은 양적성장에 머물렀다. 한국영화의 점유율, 한국영화관객수, 한국영화의 매출규모, 시장규모로 언급돼 왔다. 영화현장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나중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간과되고 시장만 언급된 것이다. 영진위는 문체부 산하 기관으로 영화 관련 지원 사업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고용위기가 피부로 와닿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현장의 스태프는 상시고용되지 않은 고용불안 상태에 놓였다. 1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해온 사람도 “영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가능하느냐”고 고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제작현장이 줄어들고,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임시 일자리라도 찾는다. 생계에 쫓겨 영화를 도모했던 시간은 사라진다. 일할 기회가 없었는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노동조합 설문에서 응답자 72%는 코로나19 같은 위기에서 영화산업에 맞는 소득감소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회사를 통한 지원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피해 노동자에게 직접 지원 해달라는 요구다. 영화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신호를 보여달라는 요청이다. 영화 만드는 일은 우리의 직업이다. 직업을 유지할 적극적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2만명의 고용위험을 감지했다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영화는 사람이 만든다. 기업을 살리는 일만으로 한국영화가 지속될 수 없다. 영화 산업을 만들어온 사람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정부는 스태프가 어떻게 고용돼 일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영화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능력을 언급하기 앞서 이들이 살아남도록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정부의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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