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금산분리 원칙 훼손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기업형 벤처캐피탈(CVC·Corporate Venture Capital) 도입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2일 국회에서 ‘경제 활력과 혁신 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를 열고 “규제 혁신”을 거듭 강조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주최자인 김경만, 김병욱 의원 외에도 권칠승, 박정, 변재일, 양경숙, 이용선 의원 등이 자리를 채웠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진형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정식 토론자도 아닌 의원님들께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참석하시는 건 처음 봤다”며 “2020년 6월22일이 바로 훌륭한 결과가 도출돼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여당 의원들을 반겼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축사를 통해 “시대에 뒤처져 있거나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규제와 제도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혁신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경제 활력과 혁신 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경제 활력과 혁신 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들은 규제완화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 김경만 의원은 “혁신시장이 규제로 인해 공유경제 모델이나 원격의료 모델 등 출발 자체를 못하거나 뒤늦게 출발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유망한 벤처가 자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김병욱 의원은 “현행법은 ‘금산분리 원칙’ 취지에서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원칙도 불변하는 최고의 가치일 수는 없다”며 “이제는 CVC를 경제력 집중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에는 투자를 다양화하고 대기업에는 기술혁신을 가져다주는 ‘상생’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7월 중 벤처지주회사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김병욱 의원은 3일 ‘CVC규제개선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CVC는 대기업이 벤처투자를 위해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금융회사를 의미한다. 삼성물산, LG, SK 등 일반지주회사들이 금융회사 주식을 갖지 못하도록 한 현행법에서 ‘벤처 캐피털은 가능하다’는 예외를 두겠다는 게 법안 골자다. 같은 당 이원욱 의원과 미래통합당 송언석 의원 등도 같은 취지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토론회에서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미국에서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 기업이 탄생한 배경에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없었고 산업 발전에 무해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발전을 정부가 주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특정 정부부처에 권한을 주기보다는 걸림돌을 제거해주는 방식의 입법으로 전환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효상 숭실대 교수는 “유휴자본 자금력은 대기업에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시장으로 끌고 나올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CVC 외에도 다양한 촉진책을 써야 한다. 일단 세제혜택을 적극 검토해야 하고,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를 활성화 해야 한다”고주장했다.

▲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 활력과 혁신 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진=노지민 기자
▲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 활력과 혁신 벤처 생태계 발전 토론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진=노지민 기자

그러나 CVC 도입이 벤처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큰 효과가 없을 뿐더러 재벌 특혜에 악용될 거란 우려도 상당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 자료에서 “벤처회사에 대한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총수 일가가 사익을 편취하거나 편법적 경영 승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또 “지주회사의 CVC 지배를 금지한 것이 대기업 벤처 투자의 핵심적인 제약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되레 “기존의 체제 밖 CVC가 체제 내로 편입되는 효과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22일 통화에서 “개혁적이지 않은 공정위 같은 주무부처도 반대하는데 (정부 여당이) 규제완화를 찬성하는 쪽으로만 어설프게 끼워맞춰서 논리를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국장은 “우리나라에 벤처자금이 없는 게 아니다. 경쟁이 심하고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기는 등 워낙 재벌대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구성돼 스타트업 등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금산분리 완화를 공론화하고 허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번 인터넷전문은행법을 허물고 이번에는 공정거래법에 예외를 넣으면서 금산분리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김태년 원내대표가 금산분리 등 이슈에 친재벌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상임위를 전부 가져가서 재벌 규제완화 쪽으로 의석을 활용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와 정의당 민생본부, 배진교·장혜영 의원 등은 23일 국회에서 정부·여당의 벤처 규제완화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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