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주검 위 칼질을 멈춰라
주검 위 칼질을 멈춰라
[ 기고 ] 손영미 님을 추모하며

슬픔과 분노를 참기 어렵다. 이번 사태 내내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얼마 전에 나는 페이스북에 “언론의 조리돌림과 몰아가기에서 ‘누구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가보자’는 살의와 살기까지 느껴”진다고 포스팅을 했었다.

<조선일보>의 ‘윤미향 딸 김복동 장학금 받았다’같은 뉴스가 대표적이었다. 윤미향의 페이스북 몇년치 뒤지다가, 오해보다는 의도로 이런 ‘가짜뉴스’를 만들어냈을 <조선일보>는 윤미향이 분명한 사실로 그것을 반박하자, 그걸 또 조리돌림에 이용했다. 계속 윤미향의 가족(남편·딸)을 끌고와서 같이 조리를 돌렸다.

윤미향 의원의 남편인 김삼석 씨는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다. 그가 당한 일은 끔찍하다. 1993년에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까지 당했고, 여동생까지 끌고 가 ‘남매간첩’으로 엮었다. 수사관들은 임신한 부인(윤미향)도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했고, 고통과 절망 끝에 그는 자살 시도까지 했다. 그후 4년이나 감옥에 갇혔다.

그 시절에 간첩조작의 바람잡이였던 보수언론은 이번에는 이 사람들을 ‘파렴치한 가족사기단’으로 만들려고 또 물어뜯었다. 그리고 그것은 먹히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했다. ‘너도 운동한다고 그러고 다니더니 혹시 윤미향처럼 그런 짓 한 것은 아니지?’ 이미 사회적으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은 파렴치한 사기, 도둑집단이 돼 있다.

수구언론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진보언론’들도 은근히 방조했다. 검증도 안 된 의혹을 퍼나르고 새로운 의혹을 찾아내 ‘단독’ ‘속보’로 올렸다. 몰아가기와 ‘동조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고 클릭수 경쟁에 동참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6월6일, 대부분의 언론들이 홈페이지 대문에 이용수 님의 발언을 따옴표쳐서 '정의연이 우리를 팔아먹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린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다음날 손영미 님의 비극적 소식이 날아들었다.

▲ 정의기억연대 활동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 정의기억연대 활동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사회운동 활동가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경제적 어려움도, 권력의 탄압도, 심지어 감옥도 아닌 경우가 많다.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쳤던 활동의 정당성과 명예가 부정되고 불신의 대상이 됐을 때 활동가는 무너진다. 그렇게 손영미 님은 무너졌으리라. 비통한 마음으로 장례식장과 추모의 밤에 갔다 왔다.

내가 간다고 하니 주변 여러분들이 조의금이라도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 조의금을 모을 계좌도 올라오지 않은 것은, 앞서간 이의 조의금 모금마저도 ‘비리와 횡령 의혹’으로 만들어버린 수구언론들이 만들어낸 ‘성과’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슬픔과 추모의 마음을 모으고 나눌 통로조차 빼앗겼다.

모여든 사람들로 꽉 차서 추모의 밤 행사는 식장 밖에서 유튜브로 볼 수밖에 없었다. ‘유투브’로 손영미를 검색하니 가장 많이 뜨는 것은 극우 유튜버들이 올린 악랄하기 짝이 없는 영상들이었다. ‘미스터리, 자금세탁, 차명계좌, 타살 의혹…’ 평화의 우리집 앞으로 몰려와 계속 벨을 누르고 욕설 막말 방송을 하던 그들이, 주검 위에 또 칼을 꽂고 있었다.

손영미 님의 3일장 동안 <조선일보>가 계속 쏟아낸 보도들도 고인을 두 번, 세 번, 네 번 죽이는 것이었다. 온갖 억지 트집을 잡고 흠집을 내며 정의연에게 구정물을 뒤집어씌우며 ‘이것봐라. 이런 더러운 범죄소굴에서 뭔가 구린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돈을 빼돌려 삼겹살 파티를 하고, 집을 사고, 배를 불린 사기꾼이자 범죄자’가 돼버린 활동가들은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마음에 피멍이 들어서 지옥같은 불면과 악몽의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결국, 조직과 운동이 붕괴하면 수구언론은 만족할 것인가.

얼마 전 윤미향 의원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래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했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시선과 불빛과 기자들과 질문들 속에서 온몸에 비처럼 쏟아지는 진땀을 보면서도 억지로 희망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땀이 아니라 눈물이었고, 그것도 피눈물이었던 것이다.

수구언론들은 ‘화형대에 올라선 마녀가 진땀을 흘리니 역시 마녀가 맞다’고 했다. 정의연의 활동가들은 그 ‘화형대’ 위에 자기 자신도 서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과 고통에 누구보다 가장 공감하고 감정이입한 사람이 결국 먼저 쓰러졌다. 자부심과 보람이 좌절감과 고통으로 바뀌고, 꿈과 희망이 악몽과 절망으로 바뀌면서 끈을 놓아버렸다.

이 죽음 앞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참을 수 없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마녀사냥만이 아니라 책임전가이고 희생양 삼기로 보인다. 손영미 님과 그 동료들이 지난 30년 동안 좌충우돌과 우여곡절 속에 힘겹게 한걸음씩 나아가 왔을 때, 사실 한국사회와 우리들은 별로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힘을 실어주지 못해 왔다.

피해자의 말을 선택적으로 들어온 것도, 정해놓은 피해자상에 어긋나면 외면한 것도, 진영에 따라서 이 운동을 평가하고 태도를 취한 것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사고하지 못해온 것도, 무엇보다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것도 바로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와 우리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한계를 그나마 누구보다 고민하고 애써온 사람들에게 ‘이 모든 약점과 한계가 다 당신들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며, 수구언론들의 십자포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명줄이 아니라 작은 돌 하나라도 더 던지려고 했다.

특히, 사회운동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없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그런 시선보다도, 자신들을 이해하고 사회운동을 함께하는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런 의심과 차가움을 발견할 때 더욱 힘들 것이다. 말이 칼이 되고 시선이 비수가 되면서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논란과 종북몰이 때도 비슷했다. 나도 차가운 불신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같이 돌을 던졌다. ‘NL은 원래 이런 저런 게 문제’라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든 것은 박영재 당원이 억울함에 목숨을 끊었을 때였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언론과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그랬던 게 아닐까 돌아보게 됐다. 알아볼수록 왜 그랬을까 후회하게 됐다. 왜 나서서 우박을 막아주지 못했는지, 옆에 있다가 같이 돌 맞을까봐 선을 그은 것이 너무 미안했다.

노회찬 의원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에서 의혹들이 쏟아질 때 막연히 뭔가 있겠지 싶었다. 노선도 다르고 앙금도 있던 사람인데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때도 또 뒤늦었고 후회했다. 어느 방송인도 후회했다. ‘인터뷰 때, 정말로 무슨 잘못한 것은 아니시죠? 라고 물었던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그런 의심의 시선, 말 한마디가 모여서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그 처지라면 마음이 어떨까하고 상상해봐야 한다.

▲ 지난 6월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443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고 손영미 소장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6월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443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고 손영미 소장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수구언론과 정치검찰은 멈칫하겠지만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뭐든 꼬투리를 잡아내려 할 것이고, 별건수사를 통해서라도 뭐든 걸어서 기소하려 할 것이다. 채널A 압수수색은 무산되지만 정의연 압수수색은 막지 못하는, 삼성 이재용의 드러난 거대한 부정보다 윤미향 의원의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더 크게 비난받는, 공안조작과 고문수사의 책임자였던 곽상도가 윤미향 마녀사냥에 앞장서고 있는,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러니 정의연 운동과 지금의 사냥을 강 건너에서 불 보듯이 ‘터질 게 터졌다’, ‘이게 문제였고 저게 문제였다’, ‘나도 이런 문제를 느껴왔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말자. 물론 비판도 필요하고, 토론도 필요하며, 있는 사실과 문제를 말할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상대가 비판과 토론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비판이고 토론이다.

그렇다고, 이용수 선생님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물론 활동가로서 이용수님을 존중한다면 이 사태의 불씨를 제공한 책임을 물으며 비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일부 SNS나 댓글에서 나타나는 이용수님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비난, 음모론과 배후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윤미향 의원이나 정의연의 입장과도 다르다.

“무엇보다 이용수 인권운동가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제발 멈춰주세요. 이것이야말로 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의 실태를 알리고 스스로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30년이란 세월을 딱 그만큼 후퇴시키며, 우리 모두를 다시 1990년에 서 있게 하는 행위입니다.”(정의연)

‘가부장적 한국사회에 침묵을 강요당할 때 목소리내고 30여년 동안 몸소 세계 각지를 돌며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이 분에게 돌 던질 수 있는 사람은 한국사회에 없습니다’(윤미향 기자회견)

이렇게 거듭 제지하는데도 계속 ‘윤미향 대 이용수’의 구도를 만들며 ‘정의연 대 수구언론’이라는 본질적 구도를 흐리는 사람들은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또 마치 정의연과 윤미향이 이용수님에 대한 공격을 부추긴 것처럼 왜곡하는 일부 언론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제발 다 같이 이 지독한 인격살해를 막아서고 멈추게 하자. 인권을 말하고 차별에 반대하던 사람들일수록 침묵하지 말자. 윤미향 의원이 올린 손영미 추모사를 보라. ‘악몽’이고 ‘지옥’이라고 한다. ‘피가 마르고 영혼이 파괴’되고 있는데 ‘피할 곳도 없다’고 한다. 그건 엄살일 리가 없다. 수구언론과 정치검찰이 계속 먹잇감을 옮겨가는 이 연쇄 고리를 끊어야 한다.

며칠 전 추모의 밤에서 듣고 본 것들이 기억난다. 최근에, 발이 부어서 원래 신발을 싣기 힘들어진 길원옥 선생님을 위해서 손영미 님은 더 큰 신발을 사와서는 흐뭇해하셨다고 한다. ‘고향이 같아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준다’는 김복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활동가는 ‘그게 아니라 손영미 님은 모든 할머니의 까다로운 입맛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챙기셨다’고 회고했다.

식장에 길원옥 선생님이 부른 ‘바위처럼’ 노래가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대한 인권운동가로 우뚝 서는 과정에서 위대한 치유자였던 손영미 님의 돌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돌봄과 보살핌은 이처럼 중요하고 위대한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와 수많은 남성들이 외면하고 무시하는 동안 여성 피해자, 활동가, 연구자들이 주도해 그렇게 만들어낸 역사적인 운동과 성과가 위협받고 있다.

그것을 만들어 온 소중한 분들이 지금 ‘분노하다가 지쳐서 눈물만 삼키고 있다’고 한다. ‘이 고통의 끝에서 여전히 함께 손잡고 서있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지치지도 주저앉지도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공감의 시선, 같이 아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몰아쳐도,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 서서, 마침내 올 해방세상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바위처럼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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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6-11 12:37:59
대법에서 법을 위반한 일탈이 있다면,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전에 수많은 보도와 선택적 수사로 사람을 죽이는 건 옳지 않다. 이 패턴은 검찰과 법조기자들의 오래된 습관이다. 그대들이 죽인 것이다. 이러면서 정의와 헌법을 운운하며, 언론사 징벌적 손해 배상제 도입에 반대하는 것이 사회적 공기로서 기자가 할 일이 맞는가. 법적 판단을 받기 전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