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의 시대라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매체로 글쓰기를 한다. 1인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현장성, 속보성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전문성, ‘글빨’까지 갖춘 고수도 수두룩하다. 그럼 레거시 미디어(기존 매체)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1인 미디어들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까? 혹시 이름만 남은 빈껍데기 아닐까?

바로 그 유일하게 남았다는 이름이 큰 자산이다. 미우나 고우나 기존 매체는 브랜드파워가 있다. 역사와 전통을 통한 권위가 브랜드에 녹아있다. 그 브랜드파워를 유지하는 교육과 에디팅 시스템이 있다. 다시 말해 레거시 미디어는 1인 미디어보다 책임성 측면에서 우월하다. 반면, 1인 미디어는 잘못된 뉴스를 전해도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속되게 말하면 장사 하루 이틀 하다 접지 않는 매체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책임성 있는 자세다. 그리고 책임성은 신뢰성으로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미디어는 단어나 표현 하나하나 정확한 개념을 써야 한다. 정확한 단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신뢰성의 기본이다. 뻔한 말이라고? 열심히 취재하고 확인해서 정확한 개념을 쓰자는 것은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히 해서 전국 수석됐어요”라는 말처럼 식상하다. 그러나 개념을 잘 몰라서 단어를 잘못 쓸 때도 있지만, 정해진 결론에 억지로 단어를 밀어 넣다가 잘못될 때도 많다. 즉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좀 힘을 빼야 할 때도 있다는 뜻이다.

최근 3차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를 전하는 기사들을 보면 안타깝게도 개념을 틀리게 쓴 기사들이 많다. 많은 언론에서 이번 추경을 통해 투입하는 예산 규모는 35.3조원이라고 한다. 기재부가 밝힌 이번 추경 규모는 35.3조원이다. 그러나 추경 규모가 35.3조원이라고 해서 그 돈 전체가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기재부가 보도자료에서 잘 밝힌 대로 추경 규모 35.5조원 중에 세수 예측치를 바꿔 정하는 세입경정(更正)규모가 11.4조원이다. 실제 확대되는 세출 규모는 그 차액인(35.5조원-11.4조원=23.9조원) 23.9조원이다. 즉, 세입경정은 결산 때 반영될 세수 결손분을 미리 인식하는 행위다. 그만큼 국채를 추가 발행해야 하니 추가로 ‘조달’한다는 말은 맞아도 ‘투입’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런데 35.3조원이 투입됐다고 표현하는 언론들은 역대 최대 규모라는 35.5조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 지난 4일자 한국경제 10면 톱기사
▲ 지난 4일자 한국경제 10면 톱기사

 

한 언론은 “세수 줄어드는데 또 적자국채 23.8조…나랏살림 112조 펑크”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23.8조원은 적자국채가 아니라 국채규모다. 그리고 ‘펑크’난 나라 살림 규모는 112조원이 아니라 76.4조원이다. 적자국채는 국채와 다른 개념으로 일반회계가 공자기금(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려온 돈을 뜻한다. 그냥 국채는 국채라고 표현하자. 국채의 부정적 뉘앙스를 주고자 굳이 국채를 적자국채라고 표현하지 말자.

또한, 정부 전체 재정 수입과 지출의 차이인 재정수지는 -76.4조원이다. 이 개념의 공식 명칭은 통합재정수지이지만 이를 문학적(?)으로 ‘나라 살림이 펑크’났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목에서 쓴 112조원이란 숫자는 ‘관리재정수지’ 규모다. 관리재정수지는 실제 나라 살림의 펑크 규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국가회계 중, 지출보다 수입 규모가 월등히 많은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기금을 제외해 재정 관리 목적으로 쓰이는 개념이다. 현재 지출대비 수입이 지나치게 많은 기금을 제외한 나머지 회계 ‘펑크’ 규모를 전체 나라 살림 펑크 규모처럼 표현하면 안 된다. 그냥 드라이하게 ‘관리재정수지 112조원 적자’도 좋고, 아니면 촉촉하게(?) ‘나라 살림 76.4조원 펑크’도 좋다. 그러나 ‘나랏살림 112조 펑크’는 잘못된 개념이다.

언론은 딱딱한 데이터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스토리를 넣어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스토리를 단순화하거나 너무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날 때가 있다. 이때 개념이 꼬이게 되곤 한다. 좀 힘을 빼고 드라이하고 편하게 쓰는 것은 어떨까? 자극적인 기사는 어차피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특히, 레거시 미디어의 생존은 책임성 있는 자세로 꾸준한 신뢰를 얻는 거 말곤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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