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기소된 탈북자 이주성씨에게 법원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2017년 자신이 쓴 책 ‘보랏빛호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김일성과 결탁해 폭동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으며 북한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주장했다. 각종 유튜브 방송과 집회현장에서도 김 전 대통령이 북한군의 남파를 부탁한 것처럼 주장했다.

‘보랏빛호수’의 부제는 ‘광주사태 당시 남파되었던 한 탈북군인의 5·18체험담’으로 주인공 이름은 정순성이며, 월간조선은 7년 전인 2013년 5월15일 채널A 시사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해 자신이 광주에 남파되었던 북한군이라 주장한 김명국(가명)과 정순성이 동일인물이거나 동일한 작전에 참여한 인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주성씨는 당시 방송에 출연해 김씨의 주장에 주석을 달며 북한군 개입설을 확산시켰다.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했던 이주성씨와 김명국씨의 뒷모습.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했던 탈북자 이주성(오른쪽)씨와 김명국(가명)씨의 뒷모습. 가운데가 김광현 현 동아일보 논설위원. 

3일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재판부(진재경 판사)는 이날 선고에서 “피고(이주성)는 5·18운동이 북한군과 김 전 대통령이 결탁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허위사실”이라고 밝힌 뒤 “피고는 탈북 이후 10년 이상 대한민국에 거주하며 (5·18 관련) 보편적 인식과 증거를 접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들은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만 책에 기재했다”며 악의성과 고의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본인이 들었던 이야기에만 집착하고, 보편적인 자료를 외면한 채 발언해 고인인 피해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이는 고인의 유족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하면서도 “피고의 행위 때문에 5·18운동이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이지 않고, 피고가 자란 환경과 경험 등을 감안하면 실형을 선고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양형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월8일 공판에서 이주성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단순히 어떤 관점이 있다는 것을 넘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특히 사법부의 판단을 받은 사항, 사회적 파장이 큰 사항이면 더더욱 그런 노력을 해야 했지만 (이씨가) 그런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반면 이씨측은 명예훼손 고소가 친고죄임을 강조하며 고령에 건강도 나쁜 상황에서 이희호 여사가 진정 고소를 원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공소기각을 주장했다. 또 북한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의 연관성이 사실로 알려져 있고 이런 이야기들이 허위라 할지라도 탈북민으로 북한에서 나고 자란 이씨가 이를 사실로 믿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성씨는 최후진술에서 과거 독일 나치를 언급하며 “권력에 앞장서 역사에 대해 진술했던 사람을 법으로 처벌하려 했던 사람들을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법정에서 검사를 향해 “남북이 통일된 뒤 당신과 같은 사람들은 법정 최고형에 처해야 한다”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한편 국내에서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한 허위정보가 본격 확산된 계기였던 2013년 채널A 방송에 등장했던 김명국씨는 이번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앞서 이씨측은 김씨를 증인으로 신청할 것이라 예고했으나, 김씨는 “신변위협이 우려된다”며 출석하지 않았다. 책을 쓴 이씨는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책의 주인공격인 김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셈이다. 김씨는 채널A 방송 이후 5·18단체로부터 고소당했으나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김씨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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