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가 활동한 지 30년이 흘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와 인연도 한 세대가 지났다. 최근 사태는 하루이틀새 일이 아닌 해묵은 문제가 곪아 터진 쪽에 가깝다. ‘위안부’ 운동진영 내 자정작용과 사회적 목탁으로서 언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어도 ‘위안부’ 운동방식에 대한 치열한 토론마저 소멸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이 운동을 열심히 보도한 언론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진영논리는 ‘위안부’ 운동을 이해하는데 장벽이 됐다. 정대협을 비판하면 친일보수, 정대협을 지지하면 합리적 진보처럼 분류된다. ‘위안부’ 피해자들도 정대협의 주장을 따랐는지 여부로 나뉜다. 정대협은 배상금 형태가 아닌 어떠한 일본의 돈(위로금·보상금 등)도 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일본 측 돈을 받으면 자존심을 판 사람이 돼 목소리를 잃고, 그렇지 않은 이들만 대중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진보언론도 정대협 주장 외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물론 정대협의 30년 운동성과를 충분히 인정해야 하듯 진보언론의 꾸준한 관심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점이라는 걸 전제한다. 보수언론은 ‘위안부’ 문제에 상대적으로 덜 적극적이었고, 큰 논조차이를 보이지않았다. 다만 지난 정부 때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슈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최근 보도의 신뢰나 진정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1992년 12월25일자 한겨레 사설을 보면 취재원과 거리감이 감지되지 않았다. 한겨레는 “일본 정부는 ‘모집과정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없다’며 피해자들 생활을 돕는 기금을 창설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뻔뻔스런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또 한겨레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부축해가며 ‘수요집회’를 이끈 정대협의 존재는 부끄러운 이 시대의 작은 위안”이라며 “정신대 문제를 국제문제로 부각한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응원보다 비난이 컸던 운동 초기를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취재원과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강하게 비판할 수 없더라도, 취재원 주장에 이견을 다루는 정도는 가능하다. 사안에 밝은 한 연구자는 미디어오늘에 “정대협의 문제는 아시아여성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받는 걸 반대한 일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권리를 누군가가 막는 게 폭력”이라서다. 

언론에선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묻는 정대협의 주장을 주로 전했을 뿐, 정대협과 다른 운동방식이나 다양한 피해자 목소리를 공론장에 가져오지 못했다. 1996년 8월8일 한겨레 사설 “‘위안부’문제 일본 정부가 풀라”를 보면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이들(일본 내 양심세력)이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라는 핵심을 빗겨간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여성기금은 헛된 노력을 거두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1997년 정대협 대표가 피해자에게 ‘모금을 받으면 화냥X’이라고 얘기한 사실이 알려졌다. 정대협이 일본에서 성금을 모아 국내 피해자들에게 전달한 우쓰키 게이코씨 입국금지할 것을 주장했고 실제 법무부는 그를 1997년부터 2년간 입국을 금지했다. 이후에도 보도의 논조는 유지됐다. 1998년 1월7일 한국일보 “일 ‘위안부기금’의 함정”을 보면 아시아여성기금 수령을 알리는 일간지 광고를 비판하며 “찬찬히 뜯어보면 모두 허울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대협의 강한 신념은 문제해결의 유일한 관점으로 자리잡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위안부’ 피해자를 확인하면 생활지원금을 주기로 했는데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은 사람을 제외했다. 정부와 정대협의 이런 태도로 기금을 받은 피해자들은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피해자 통계는 이 생활지원금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남산 ‘기억의 터’엔 이들 명단과 정의연이 제안한 미등록 피해자들 이름을 새겼다.

최근 동아일보를 보면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이 ‘기억의 터’에 일부 피해자 명단을 배제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억의 터’ 설치 당시 “‘위안부’ 피해자 중 생활지원금 수급자 등 일부만 기록했다”는 정확한 정보전달이 없었다. 역시 언론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역사왜곡이다. 사실 피해자들이 보상금을 받으면 일본의 가해행위가 없어진다거나, 위로금을 받지 않으면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논리적 근거는 없다. 

최근 피해자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무궁화회)’의 2004년 성명이 회자된다. 최근 이용수씨의 정의연 비판과 판박이다. 뉴스분석서비스 빅카인즈나 포털에서 당시 무궁화회 성명에 대한 기사는 찾기 어렵다. 대신 2005년 극우인사인 지만원씨가 외면받은 무궁화회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지씨가 접촉하면 피해자들의 주장이 허위로 변할까. 역시 근거가 부족한 진영논리다. 무궁화회 구성원들은 일본 정부도 인정할 수밖에 없던 ‘확실한’ 피해자들이다.

진보언론은 다시 정대협을 취재원으로 택했다. 2006년 3월21일 경향신문은 윤미향 당시 정대협 사무총장의 기고를 실었다. 정대협의 성과를 언급하며 일본정부의 법적책임을 추궁하는 내용이다. 이런 모습은 지난 정부때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반복했다. 

▲ 소녀상. 사진=이치열 기자
▲ 소녀상. 사진=이치열 기자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는 박 교수의 글이 “검토대상이 모호하고 개념을 이해가능하게 정리하진 않았다”고 진단했다. 다만 해결이 요원한 채 점점 피해자들만 세상을 떠나는 현실에서 몇 가지 쟁점을 던졌다. 정대협 등의 공격으로 박 교수는 친일파로 비난받았다. 

보수매체 ‘펜앤드마이크TV’의 박 교수 인터뷰를 보면 ‘순결한 소녀 이미지가 아닌 피해자도 있다’, ‘정대협 중심의 민족주의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조선인 업자도 책임이 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성격과 의미’ 등을 다뤘다. 진보언론에선 이런 논쟁보다는 박 교수나 저서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둔 게 사실이다. 박 교수 비판과 그가 던진 의제를 다루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정의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일제의 피해자인 이용수씨까지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30년째 같은 주장을 반복한 취재원과 언론의 관계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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