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우려 속에 무사히 총선이 끝났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의 사회 기능이 마비됐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66.2%’의 높은 투표율로 총선을 마쳤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자 외신도 주목했다. 투표소에서의 방역 절차부터 높은 투표율까지, 외신의 극찬이 쏟아졌다. 

흥미로운 부분은 외신이 한국 방송사들의 개표 방송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부터 본격 도입된 CG 등 화려한 구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개표방송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지상파 3사 개표방송 모두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장애인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으며, MBC의 경우 여성 후보들의 경합에 적절치 못한 표현을 써 지탄 받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개표방송이 그 외에 어떤 문제점을 드러냈는지, 향후 더 나은 선거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모니터 대상은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이며, 유튜브에 실시간 방송 전체가 올라와 있는 KBS와 MBC는 전체 영상을 대상으로, 그렇지 않은 SBS의 경우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 영상을 대상으로 모니터했다.

1. ‘개표방송’도 거대 양당 중심?

개표방송엔 나오지 않는 ‘8.22%’

21대 총선 개표방송에서 아쉬운 점 첫 번째는 ‘사라진 8.22%’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후 첫 선거로 과거 선거보다 많은 비례정당들이 후보자를 내고 표를 얻었지만 개표방송에서 그 소수정당들은 거의 등장하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33.35%)‧미래한국당(33.84%)‧정의당(9.67%)‧국민의당(6.79%)‧열린민주당(5.42%)‧민생당(2.71%)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의 득표율은 ‘8.22%’다. 앞서 나열한 정당들의 득표율 총합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엄연히 투표권자 한 명이 행사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은 수라 하더라도 그들의 권리와 표심을 외면한다면 ‘8.22%’에 해당하는 유권자는 무력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정당의 총합이기는 하나 이들의 득표율 8.22%는 잘 알려진 국민의당이나 열린민주당, 민생당 각각의 정당 득표율보다 많다.

한 표의 가치가 4700만 원이라며 투표를 장려했던 방송사에서 그들의 ‘한 표’를 어떻게 다뤘을까. 이번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정당은 총 35곳. 그러나 지상파 3사 개표방송에서 35곳 하나하나를 소개하거나 설명해주는 부분은 없었다. 종전 선거보다 대폭 늘어난 정당 수, 편집 등 방송 구성상의 현실적 한계 등을 감안해도,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정당이 개표방송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군소정당’ 묶어 ‘기타’로 표시, 이대로 괜찮을까

흔히 개표방송에선 정당별 선거상황실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는 정당은 손에 꼽는다. 일반적으로 개표방송에서 다뤄지는 정당은 거대 양당과 원내 정당 일부뿐이기 때문이다. KBS의 경우 원내정당 중에선 민주당‧통합당‧정의당‧민생당을, 비례정당 중에선 열린민주당‧국민의당의 선거상황실을 보여줬다. MBC는 민주당‧통합당‧민생당‧정의당을 찾아가는 것에 그쳤다(개표방송 풀버전이 유튜브에 게시되지 않은 SBS는 확인이 어려움). 4~6개 정당 외에 다른 군소정당들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선거 기간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에서도 군소정당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춰볼 때, 시청자들은 선거의 마지막인 개표방송에서조차 군소정당을 만나볼 기회가 없다. 올림픽 개막식을 예로 들어보자. 개막식에는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국가가 차례대로 행진한다. 방송사는 이를 카메라로 담으며 국가별로 소개해준다. 이때 어떤 방송사도 우승이 유력한 국가만 소개하지 않는다. 개표방송은 왜 출전한 모든 정당을 다뤄주지 않을까. 개막식에서 우승이 유력한 국가만 소개해주는 꼴이나 다름없다. 

MBC의 경우 개표 초반, MBC가 예측한 정당별 의석수를 소개하면서 주요 정당 이외의 정당은 ‘기타’ 처리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시민당, 통합당과 한국당, 민생당,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까지만 이름이 있었다. 의석이 적을 것으로 예측되는 무소속 후보나 기타 정당은 말 그대로 ‘기타’로 분류됐다.

이후로도 나머지 정당들은 이름 한 번 내보이지 못했다. 지역구에서 1, 2위를 다투지 않는 이상 소개되는 일은 드물었다. 당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화면 구성상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개표방송에서 많은 정당들을 배제한다면, 과연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한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선거 당일, 관심이 쏠리는 개표방송에서 군소정당을 다뤄준다면 다음 선거에서나마 그들이 쉽게 유권자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한계로 35개 정당 모두의 선거상황실을 보여줄 수 없었더라도, 최소한 출마한 정당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정당별 이름이나 주요 후보 및 정책, 공약 등을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지난 4월15일 민주당‧통합당‧정의당‧민생당의 선거상황실 보여준 MBC 개표방송
▲ 지난 4월15일 민주당‧통합당‧정의당‧민생당의 선거상황실 보여준 MBC 개표방송

거대 양당 득표 상황만 소개하는 개표방송?

개표가 시작되면 개표방송에서는 실시간으로 개표 상황을 보여준다. 이번 개표방송에서 MBC와 SBS는 화려한 그래픽을 동원해 지역구 후보자들의 득표율을 보여주며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거대 양당 중심이었다. 개표 현황을 보여줄 때 군소정당이 배제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MBC의 경우 개표방송 초반엔 모든 지역구에서 1, 2위만 보여줘 그 밖의 후보자들 득표율은 알 수 없었다. 개표방송이 진행된 지 6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삼파전 양상을 보이는 지역구를 소개하며 1, 2위 외의 후보자 득표율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KBS‧SBS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두 방송사는 개표방송 초반부터 경기 고양갑이나 인천 연수을처럼 쟁쟁한 후보가 세 명 이상 있는 지역구에서 3위 후보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KBS는 개표 후반에 이르러서야 주요 관심 지역의 경우 폭넓게 후보자들 득표 상황을 보여줬다. 특히 거대 양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손꼽히는 이낙연‧황교안 후보가 나온 서울 종로는 다른 후보자 득표 현황까지 소개하며 주목도를 높였다. KBS는 1위를 하던 민주당 이낙연 후보부터 6위를 달리던 국가혁명배당금당 박준영 후보까지 득표율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또한 주요 관심 지역에 국한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MBC에서 소수정당 후보가 등장한 경우도 있었다. 개표 초반, MBC의 당선 확률 예측 시스템인 ‘적중’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알려주며 전남 화순에 출마한 민중당 안주용 후보가 언급됐다. MBC는 그가 ‘농민운동을 했다’는 짤막한 소개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당선 확률 예측 시스템 결과 그가 ‘2위’여서 일뿐, 소수정당을 배려하는 차원은 아니었다. 이어지는 전남 화순 지역구 후보 인터뷰에서는 1위를 할 것으로 예측된 민주당 신정훈 후보만 등장했다.

지상파 3사의 개표방송 모두 애초 기획 단계부터 소수정당 득표율도 보여준다는 체계는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소수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2위를 달리고 있을 경우에만 잠깐 보여줬을 뿐, 거대 양당에 비하면 등장한 시간이 매우 미미하다. 투표 이전 선거 관련 보도 역시 거대 양당 소식만 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언론은 선거의 주요 행위자인 소수정당을 선거 기간 내내 철저히 배제하는 셈이다.

▲ 지난 4월15일 개표 초반 인천 연수을 개표 상황 보여주는 MBC(위), 개표 후반 서울 종로 개표 상황 보여주는 KBS(아래).
▲ 지난 4월15일 개표 초반 인천 연수을 개표 상황 보여주는 MBC(위), 개표 후반 서울 종로 개표 상황 보여주는 KBS(아래).

소수정당이 나왔으면 좋았을 개표방송 속 ‘코너’

거대 양당 위주의 방송은 개표방송 속 ‘코너’에서도 이어졌다. 후보별 득표율 현황의 경우 지역구 1‧2위가 거대 양당인 경우가 많았고 거대 양당에서만 후보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수많은 지역구의 득표 현황을 빠르게 보여줘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코너’에서는 충분히 소수정당만 조명할 수 있다. 득표 현황에서 놓친 부분을 ‘코너’를 통해서 만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 3사 모두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

KBS와 MBC는 ‘13일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인 13일 동안 후보자들이 거리를 돌며 유세하는 현장을 조명했다. 역시나 거대 양당 후보의 유세만 보여줬다. 거리와 시장을 돌며 유세한 소수정당 후보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지상파 3사 중 그들의 유세 현장까지 담아낸 개표방송은 없었다. 

SBS는 후보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이용한 ‘젊은 날의 한 컷’이라는 코너를 선보였다. 득표율과 함께 후보자들의 젊은 시절 사진과 현재 후보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코너였다. 여기서도 소수정당은 배제됐다. 이 코너에 등장한 후보들은 이낙연‧황교안‧나경원‧박주선 후보 등 유력 정치인이다. 대부분 당 대표를 지내거나 5선에 도전하는 ‘유명한 후보’들이다. 이렇게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후보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흥미 위주 방송’으로 그칠 위험이 크다. 초선에 도전하거나 소수정당 출마 후보들을 다각도로 조명했다면 시청자들 흥미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후보를 유권자에 알려주는 언론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지난 4월15일 유명 후보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준 SBS
▲ 지난 4월15일 유명 후보들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준 SBS

2. 선거보도‧개표방송에서 모두 사라진 ‘정책‧공약’

후보에 대한 설명도 주요 정책 이야기도 없다면 ‘중계방송’ 아닌가

국회의원의 역할과 권한은 지역구를 넘어 국정 전반의 4년을 책임지는 데 이른다. 따라서 언론은 투표 전 선거보도는 물론이고, 개표방송에서도 후보들의 정책적 비전과 해소되지 못한 의혹을 다룰 필요가 있다. ‘검증’은 비단 선거 전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당선자의 향후 행보를 국민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의 후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후보의 정보는 알기도 어렵다. 선거 보도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개표방송에서라도 그러한 갈증을 해소해줘야 한다. 아쉽게도 후보 개개인을 조금이나마 다뤄준 방송사는 KBS뿐이었고 정책이나 공약을 소개해준 곳은 없었다.

KBS는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를 내세워 총선 주요 관심 지역을 소개하며 당선이 유력한 후보들을 분석했다. 서울 동작을의 이수진 후보는 ‘블랙리스트 판사’, 같은 지역 나경원 후보는 ‘강성 원내대표’라고 키워드 중심으로 언급하는 식이다. 이 밖의 경합지 후보들에 대해서도 관련 키워드가 무엇이었는지, 선거 기간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를 언급하며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주었다. 물론 이 또한 주요 관심 지역 중심으로만 소개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MBC에서는 후보에 대한 설명 없이 화려한 CG 위주의 1‧2위 간 득표율만 보여주는 개표방송만을 반복됐다. 그 안에서 후보의 이력, 논란, 공약을 설명하는 내용은 없었다. ‘주요 격전지’라며 관심 지역의 후보들만 도돌이표처럼 등장했다. SBS 또한 앞서 언급한 ‘젊은 날의 한 컷’ 코너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린다’는 취지의 소개말 외에 정책이나 공약을 소개하지 않았다.

‘선거의 본질은 정책’… 이 상식을 개표방송에서도 보여줘야 

결과적으로 지상파 3사의 개표방송 모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정책을 다루지 않았다. 개표방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득표 현황 화면에서 후보자들 옆에 대표 공약을 하나만이라도 작게 표기하는 식의 대안은 어떨까? 일례로 서울 은평갑 박주민 후보의 경우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국회의원 수당법’을, 서울 서초을 박성중 후보의 경우 ‘주택 거래세 인하’와 고가주택 기준을 조정하는 ‘1가구 장기보유세대 종부세 면제’ 공약을 내세웠다. 이런 공약은 유권자가 관심이 많은 이슈와 관련된 동시에 국정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짧은 단어에 그 의미가 잘 축약되어 있기도 하다. 이 정도의 표기로도 유권자를 배려한 개표방송으로 한 걸음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 있어 정책과 공약이 핵심이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진 상식이며 이를 언론사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 지난 4월15일 SBS 개표방송 중 ‘재재의 스쿨어택’ 코너 일부.
▲ 지난 4월15일 SBS 개표방송 중 ‘재재의 스쿨어택’ 코너 일부.

SBS는 개표방송 중 ‘재재의 스쿨어택’이라는 코너에서 첫 투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투표하는 기준’을 물었고, 한 학생이 “인물에 따라 (투표를) 하면 너무 그 사람이 무슨 공약을 내는지에 신경을 안 쓸 수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선거법 개정으로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된 ‘새내기 유권자’도 선거의 본질을 알고 있다. 심지어 이를 개표방송으로 직접 방영한 방송사가 그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3. 개표방송의 ‘전문가 패널 대담’, 전환이 필요하다

화려한 출연진 내세운 KBS‧MBC의 ‘선거 해설 대담’

개표방송의 목적은 거대 양당의 승패를 전달하는 데만 있지 않다. 단순히 누가 이기고 지는지만 알려준다면 선거 보도가 아니라 ‘중계방송’에 가깝다. 개표방송을 ‘유권자 친화적 선거 보도’의 연장선으로 본다면, 여기엔 필수적으로 유권자들을 위한 ‘선거 해설’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 해설도 선거의 승패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 결과가 정국에 미칠 영향을 예측해 보거나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와 정당의 메시지 및 정책 비전이 어떠했는지 분석하는 등 심층적인 해설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번 4‧15 총선에서 패널을 등장 시켜 해설을 제공한 지상파 방송사는 KBS와 MBC였다. KBS는 2019년 11월부터 6개월간 방송한 총선 파일럿 프로그램 <정치합시다>와 함께 개표방송을 구성했다. <정치합시다>의 주요 출연자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박형준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이 개표방송에 나와 해설하는 방식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 등 <정치합시다>의 전문가 패널도 대담에 참여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나 유발 하라리도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 마디를 던졌다. MBC는 과거 MBC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원책 변호사를 불러 ‘10분 토론’ 코너를 진행했다. 개표 상황을 전하는 코너에서는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도 출연했다. 유명 평론가와 정치인, 전문가들로 꾸려진 화려한 출연진에 KBS‧MBC 스스로도 깊이 있는 총선 판세 및 결과 분석을 자신했다. 시청자들의 관심도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충실한 ‘선거 해설 대담’이 이뤄졌을까? 

‘승패 위주’‧‘거대 양당 중심’의 ‘판세 해설’이 두드러진 KBS

요컨대 KBS‧MBC 모두 큰 아쉬움을 남겼다. 화려한 패널들을 두고도 ‘판세와 결과’만 깊이 있게 분석한다면 유권자 중심의 선거 방송이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KBS‧MBC의 선거 해설 대담은 대부분 개표 상황별로 더불어민주당 계열과 미래통합당 계열 중 어떤 쪽이 더 많은 의석을 가질지 예측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이는 ‘정치권을 위한 해설’에 가깝다. 선거상황실에 앉아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야 1분 1초의 판세를 아는 게 절실하겠지만 시민은 그렇지 않다.

<정치합시다>와 함께한 KBS가 그러했다. KBS는 ‘디시전K’라는 당선자 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해 개표 상황별 거대 양당의 예상 의석수를 읊어준 뒤, 패널에게 해설을 요구했다. 말 그대로 ‘상황별 판세 분석’ 수준에 그친 것이다. 질적으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으나, 기본적으로 선거 보도와 개표방송 내내 반복된 ‘거대 양당 중심’이라는 문제가 또 노출됐다. 물론 워낙 검증된 패널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대 양당 중심의 판세 분석으로도 깊이 있는 분석이 나오기는 했다. 다만 대담 자체가 판세 분석에 집중되면서 해설의 질적인 내실은 유시민 이사장과 박형준 선대위원장의 개인 기량에 기댄 측면이 있었다. “(개표가 7%밖에 안 된 상황에서) 양당의 지지율 합계가 75% 정도이나 의석을 95% 가진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못 내지만 일정 수의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당이 국회에 들어가질 못해 국회의 대표성이 약화된다”(유시민 이사장),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취지가 실패했다. 다음 선거제 개편 때 다당제를 구조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양당제에서 소수 정당을 병립하는 게 괜찮은지 다양하게 논의해야 한다”(박형준 선대위원장) 등 판세를 토대로 정치 제도의 문제까지 나아간 대목들이 있다. 유권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 중 하나이나 이런 내용을 이런 주제만으로 편성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누구 이기는지’를 살펴보다가 산발적으로 양질의 대담이 나온다면 시청자에게 그리 유익한 방송은 아니다.

특정 정당 위한 정치 컨설턴트? ‘정파적 해설’ 노출한 MBC

MBC ‘10분 토론’도 KBS 대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진행자의 질문은 중계방송의 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출연자의 일부 발언은 ‘선거 해설’이 아니라 특정 정파를 위한 정치 컨설턴트에 가까웠다. 

‘10분 토론’ 코너의 진행자로 나온 박혜진 아나운서는 초반에 ‘관전 포인트’나 ‘높은 투표율이 어느 쪽에 유리한가’ 등을 질문했다. 선거 해설 대담을 시작할 때 던지기 마련인 질문들인데, 역시 선거를 후보자와 정당 중심으로만 보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답변도 특정 정파의 시각에서 선거를 바라보는 식으로 나왔다. 전원책 변호사는 ‘수도권 승부가 중요하므로 야당이 수도권에서 50석 이상 가져가는지가 중요하다’거나 ‘높은 투표율은 여당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야당에 유리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설을 제공해야 할 패널이, 미래통합당에 유리한 판세 분석에 매달린 것이다.  

MBC의 선거 해설 대담 ‘10분 토론’은 한두 시간 간격으로 이뤄졌는데 이러한 문제점이 반복됐다. 개표방송 중간 즈음, 왕종명 앵커가 현재 개표 상황을 분석해달라고 출연자들에게 요청하자 전원책 변호사는 “미래통합당을 편들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라면서도 “근본적인 실수는 자신들이 우세한 지역에 전략 공천을 한 것”, “우세한 지역일수록 경선을 붙여서 흥행을 유도했어야 하는데 여기서 이미 인물 경쟁에서 밀렸다”, “또한 이슈를 잡는데 있어서 통합당이 실패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뒤늦게 와서 이슈를 못 만들었다”고 답했다. 이는 미래통합당 내부 회의에서나 요긴하게 쓰일 분석이다. 개표방송의 대담이 이렇게 특정 정당의 승패와 그 승패의 요인에만 치우친다면 유권자들이 이 방송을 볼 이유가 없다. 유권자들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왜 그 선택을 하게 됐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은 개표방송에서의 ‘대담’은 어차피 긴 시간 득표 현황을 방송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다. 이를 고려하면 다양한 대안이 가능하다. 정책‧제도‧21대 국회의 과제 등 다른 본질적 측면을 중심 주제로 잡고 ‘관전 포인트’, ‘승패 예측’과 같은 요소를 대담 도중에 한 번씩 짚고 넘어가는 전환도 필요하다. 방송사들이 ‘관전 포인트’ 등 ‘판세’ 중심의 보도, 해설을 무의식적으로 습관화한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늘 보던 패널들의 평론… 개표방송 대담의 대안 고민해야

SBS의 경우 패널들의 대담을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다. <8뉴스>의 김현우 앵커나 <뉴스브리핑>의 주영진 앵커 등 자사 언론인들을 내세워 개표 현황에 따른 판세를 분석했다. 분석의 방향은 KBS‧MBC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사의 AI 기술을 강조하며 선거 판세 분석, 개표 상황 분석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제작자 입장에서 개표 방송을 보면 AI 기술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와 시청자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삶에 도움이 될 만한 21대 국회가 구성됐느냐’일 것이다. 

한편, 각 방송사 패널 면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4060, 남성, 정치인‧법조인‧언론인 중심의 패널 구성이 두드러졌다. 대부분 오랜 기간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치 평론을 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익숙한 인물들의 어디선가 들어본 정치 평론은 굳이 개표방송이 아니어도 항상 볼 수 있다. 시청자로서는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도 높다. 방송사들이 정치 컨설팅에 가까운 대담보다는 민심을 대변하는 선거 해설을 개표방송에 편성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화려한 CG와 시청률은 개표방송의 본질이 아니다

이번 개표방송에서 MBC‧SBS는 화려한 CG로 주목을 받았다. KBS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차분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최고 시청률을 지켜냈다. 선거가 끝나고 개표방송 성적표를 대조한 여러 보도에서도 보통 화려한 CG와 시청률의 우열을 주목했다. ‘개표방송’을 향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지나치게 겉보기에 매몰된 것은 아닐까. 시청자에게 시시각각 변하는 개표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흥미롭게 전하는 것만큼, 유권자에게 꼭 필요한 ‘선거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선거방송’으로서의 기본적 의무도 잊어서는 안 된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4월15일 KBS, MBC, SBS 개표방송(KBS‧MBC는 유튜브 실시간 영상 전체, SBS는 유튜브 클립 전체)
※ 정리 :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김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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