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 대부분을 부인했다. 앞서 짧은 입장문만 낭독할 것으로 알려졌던 윤 당선인은 20여분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약 15분간 취재진 질의에 응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윤 당선인의 첫 공개석상 입장표명이란 점에서 언론 관심이 뜨거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 시민단체인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 윤 당선인은 지난 7일 피해자 중 한명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정의연 시절 기부금 운용·회계 관련 의혹을 받아왔다. 초반에 일부 언론과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던 윤 당선인은 최근 들어 침묵을 유지했다.

회견 시작은 오후 2시로 예고됐지만 해당 장소 안팎과 회견장이 위치한 소통관 2층 및 1층 출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진·영상 촬영을 위해 자리를 맡은 매체가 상당했다. 오후 들어서는 기자회견장 단상 주변에 촬영을 위한 카메라와 삼각대, 사다리 등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취재기자들도 취재석 뿐 아니라 바닥 곳곳에 주저앉아 발 디딜틈이 없었다.

회견장 좌우 입구에도 취재진이 일찍이 진을 쳤다. 보통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선 짧게 입장을 밝힌 뒤 왼쪽에 마련된 (백)브리핑 장소에서 추가 입장을 밝히거나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윤 당선인은 기자회견에 앞서 질의응답 여부나 장소, 동선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회견장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취재진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회견장 출입구에서는 방호과 직원들이 취재증을 발급받은 기자들에 한해 출입을 허용했다.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29일 국회에 기자회견장에서 입장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29일 국회에 기자회견장에서 입장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오후 1시47분경 회견장 좌측 입구에서 누군가 “지하에서 엘리베이터 탔답니다”라고 윤 당선인 도착을 알리자 긴장감이 맴돌았다. 윤 당선인이 등장하기 전 일부 취재진이 카메라 앞을 지나가자 ‘앞에 지나가지 말라’ ‘곧 올라온다, 나오라’는 일부 기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정된 시각인 오후 2시를 1분 남겨두고 윤 당선인이 들어섰을 땐 취재진 모두 포토라인에 따라 입장하는 윤 당선인을 조용히 지켜봤다.

윤 당선인이 입장문을 읽는 사이 회견장 좌측 입구에서 백브리핑이 있을 거라는 공지가 전해졌다. 취재 기자들은 온라인 중계시스템으로 윤 당선인의 회견을 들으며 질문을 준비했고, 다른 장소에 있던 사진·영상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윤 당선인은 2시24분께 입장문 발표를 마치고 백브리핑 장소로 이동했다. 송갑석 민주당 대변인이 윤 당선인 우측 뒤편에 배석했다.

윤 당선인은 우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용수 할머니에게 제가 배신자가 됐다. 1992년부터 이용수 할머니와 활동해왔음에도 30년 세월과 다르게 신뢰를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할머니께 지금이라도 사죄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여러 차례 사과를 시도했지만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지금이라도 진심을 전하려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이 할머니가 비례대표로 출마하려 할 때 만류한 이유에 대해서는 “녹취가 있다는 것은 기사로 접했다. 그때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께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내게 전화를 했고, 내가 만류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정황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마 할머니가 진짜로 국회의원을 하고자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 할머니에 대한 비난을 중단해달라는 호소도 이어졌다. 그는 “할머니들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아픔만으로도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다. 한국 사회가 보수적이어서 피해자들이 억압될 때 목소리를 낸 것만으로도 용기 있게 평가받고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3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침묵한 일을 세계 곳곳에서 말하며 여성인권운동 중심에 섰던 분들”이라며 “그분들에게 돌팔매 던질 분은 한국 시민사회 내에서도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 등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3월 정의연에 사표를 냈다. 정의연에서 적극적으로 토론·논의하며 할머니께서 제안한 말씀을 경청하고 반영할 거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 할머니가 말한 미래세대 교육, 한일청소년 교육,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 등은 할머니들의 책임, 한국시민사회의 책임이 아니고 한국 정부와 국회, 일본 시민사회와 정부, 국회가 모두 함께 노력해 이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일부 모금을 본인 명의 계좌로 한 것과 관련해선 ‘전체 할머니를 위한 일에는 단체 명의 계좌를 썼고 일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금은 본인 계좌를 사용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본인 부친이 안성 쉼터를 관리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주택을 빈집으로 놔둘 수 없어 최소한의 급여를 지급했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전한 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했다. 2015 한일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출연하겠다고 밝힌 10억엔을 피해자들에게 ‘받지 말라’고 권유했다는 지적에는 ‘합의의 문제점을 피해자들에게 설명한 뒤 (1인당) 1억원을 받는 건 할머니들의 자유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면서 불체포 특권을 받게 된다. 향후 검찰 소환 등에 제대로 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피할 생각 없다. 검찰 수사 과정 등에서 모든 책임에 대해 성실하게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부 취재진은 윤 당선인의 사퇴 여부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당내 사퇴 권유가 없었다고 밝힌 윤 당선인은 ‘국민 70%가 사퇴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는 지적에 “앞으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조사들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좁은 공간에 취재진이 모여들어 더워진 공기에 윤 당선인은 중간 중간 땀을 닦아냈다. 질의응답이 시작된 지 10여분쯤 지나자 송갑석 민주당 대변인은 “계속 이렇게 (질의응답을) 진행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내일부터 임기가 시작되지만 처음 국회를 찾은 상황인데 보시다시피 땀도 많이 흘리고 계속 질문 받기는 어렵다”고 자리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취재석에선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한 이유가 뭔가’, ‘기부금 사적 유용은 전혀 안 한 건가’, ‘아파트 구입과정에 대해 해명해 달라’, ‘잠행 기간이 길었는데 사퇴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느냐’는 등 질문이 이어졌다.

윤 당선인은 “이미 입장문에서 말씀 드렸듯 30년을 되돌아보기 벅찼다. 하나하나 지난 세월의 장부와 통장 기록을 뒤져보고 기억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지난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검찰 조사에서 남은 숙제는 30년 기억 떠올리는 것이고, 왜 오늘인지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저를 변호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는데, 계속 오류와 의혹을 낳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제 자신이 어떤 답변으로 제가 처한 상황을 잘 답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오늘은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있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가 소명할 것을 피할 생각이 없고 제 직을 핑계로 피할 생각도 없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답변을 마쳤다.

일부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 한 채 윤 당선인은 건물 밖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한 영상 기자가 ‘(당선인 나갈 때) 안 따라붙기로 하지 않았느냐. 다 (화면에 기자들이) 걸리지 않았느냐’며 목소리 높여 항의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이 나가는 모습을 찍어야 하는데 취재기자들이 카메라를 가렸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퇴장한 뒤에도 따져묻는 상황이 이어지자 일부 취재기자들은 ‘취재는 해야 할 거 아니냐’ ‘따라붙은 기자들 찾아서 말씀하시라’고 반박해 잠시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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