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모여 모회사가 일방 주도하는 의사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방송사 경영 악화 국면에서 자회사에 불리한 사업 결정이 심화할 뿐 아니라 갑을 관계에서 비롯한 불합리한 인사‧사업계약‧통폐합 문제가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KBS‧MBC‧SBS‧EBS 등 지상파 4사의 12개 자회사 노조가 꾸린 ‘지상파자회사 노동조합협의회’는 25일 “지상파 모‧자회사 갑을관계에 대한 호소”란 제목으로 첫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모회사와의 수직구조 아래 △검증 없는 자회사 임원인사 △불합리한 사업위탁협약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는 자회사 통폐합 등의 문제를 공통으로 겪는다고 밝혔다.

지상파자회사 노조협의회는 모‧자회사의 사업위탁협약이 모회사에 일방으로 유리하도록 조정돼 왔다고 호소한다. 일례로 EBS 자회사 ‘EBS미디어’는 2012년 이후 캐릭터 사업을 담당해왔으나 ‘펭수’ 이후 모회사가 거둬들였고, 단행본 출판사업도 모회사로 이관됐다는 것. ‘SBS I&M’은 웹 운영 적자를 일부 콘텐츠 광고 매출로 메워왔으나 SBS가 콘텐츠 사업을 가져가면서 적자 상황을 맞았다. ‘MBC C&I’는 콘텐츠 사용 요율이 해마다 모회사에 유리하게 책정돼 내부 적자 개선 노력도 물거품이란 입장이다.

모회사가 일방 주도하는 자회사 통폐합이 고용불안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왔다. MBC의 사회공헌 업무를 맡는 ‘MBC나눔’은 모회사와 통폐합을 앞둔 가운데, 소속 직원들은 MBC플러스로 옮기게 됐다. 김종원 전국언론노조 MBC C&I지부장은 “본사의 어려움을 알기에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지만, 고통 분담 국면에서 자회사 그리고 자회사 노조와도 소통과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지웅 MBC 기획조정본부장은 28일 서울 상암동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회사 구성원과) 소통 없이 (통폐합을) 일방 추진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상파 방송4사.
▲지상파 방송4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모회사가 자회사 임원을 검증 없이 인사하는 관행도 지적했다. EBS미디어는 모회사 내부 공모로 취임한 직전 대표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돼 노동자들이 홍역을 치렀다. 서보배 언론노조 EBS미디어지부장은 “어느 자회사이든 내부 자체 승진이나 모회사 외부 공모로 임원인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회사에서 정년을 앞둔 이들을 ‘한 자리 준다’는 차원으로 내려보내고, 이 과정에 검증이 없어 사달이 난다”고 했다.

협의회는 성명에서 임원인사와 사업 배분, 자회사 통폐합 등 과정에서 자회사 노동자와 협의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자회사는 오로지 모회사의 수익 다각화 등의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도 조직 미래에 희망을 건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상파 자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아픔을 나누며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보배 EBS미디어지부장은 “지상파 자회사 노동자들이 본사의 부당한 사업위탁 계약과 인력 배치 문제를 공통으로 겪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으나 처음으로 상설 협의회를 꾸려 정보를 공유하고 부당한 의사결정에는 연대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매달 정기모임을 열어 현안을 공유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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