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당선인과 정의연에 대한 지금의 과도한 몰아가기는 군국주의, 성폭력, 가부장제에 맞서서 역사적 성과를 이뤄온 운동에 대한 중요한 백래시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특히 이것은 국제적 차원의 백래시(반동)라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지금 몰이꾼들은 일본군 전시 성폭력 피해자와 그 조력자들, 심지어 해외의 연대자들뿐 아니라 콩고, 우간다, 베트남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까지 계속 연락을 해서 잘못된 정보를 전하면서 원하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 짜깁기하고 취사선택해 윤미향 사냥에 이용하고 있다. ‘위안부’ 운동만이 아니라 각국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국제 네트워크까지 파괴중인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시달림을 겪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90이 넘어서 온갖 지병을 앓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들쑤시고 이간질하면서 생의 마지막을 최악으로 만들려는 것을 보면 참담하기만 하다. 40년이 넘게 침묵을 강요해 왔고, 나중에는 ‘외교의 걸림돌’ 취급해 온 우리 사회가 이 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이것이라니…

갑갑함과 참담함을 추스르며 이번 주말에 영화 <주전장>을 다시 봤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가 만든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정의연 운동의 의미와 지금 벌어지는 백래시의 맥락을 짚어보기에 아주 적절한 영화다. 이 영화의 앞부분에 윤미향 당선인의 인터뷰가 나온다. 지금 파렴치한 취급당하며, ‘민족주의적 편향으로 이 운동을 망쳤다’고 비난받는 윤미향은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

▲ 영화 ‘주전장’ 포스터.
▲ 영화 ‘주전장’ 포스터.

‘수요집회에 태극기를 들고 오는 분이 있으면, 내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이 투쟁은 반일이 아니고,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다. 우리 중에 누구도 한국 국가의 책임과 가부장제의 문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대한 강간제도를 만든 일본정부의 책임을 비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감독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책임 문제를 제기하고 베트남의 피해자들과 연대를 시작한 것도 정의연이었음을 지적한다. 더구나 이 영화를 보면 ‘위안부’ 운동이 일본과 한국의 활동가들이 국제연대를 통해 건설한 운동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정부의 범죄를 고발하며 사과를 주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바로 일본인 학자와 활동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정부는 이미 여러번 사과했다’는 주장이 왜 허구인지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일본에서 백래시가 본격화한 것은 1997년이라고 지목한다. 그 패턴은 지금과도 매우 비슷하다.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으로 모는 것이 극우세력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피해자들을 돕던 사람뿐 아니라 그 딸까지 공격당한다.

극우세력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 영화이기에 그들의 반여성적, 반인권적인 본색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페미니스트들은 얼굴도 마음도 못 생겼다. 그런 여성은 머리에 봉투를 씌우고 섹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소녀상에도 봉투를 씌우는 것이다.’

전시 성범죄도 난징대학살과 부정하는 이 일본우익들(‘일본회의’)의 논리는 한국우익들의 논리와 유사하면서 더 위험하다.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포르노에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머지않아 중국이 붕괴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이제 자연스럽게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다.’

결국 이 영화를 보면 진짜 ‘민족주의적’이고 ‘종족주의적’인 것은 바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부정론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정의연 등의 투쟁이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에 맞서는 투쟁’이었다는 감독의 평가에 동의하게 된다.

▲ 영화 ‘주전장’ 스틸컷
▲ 영화 ‘주전장’ 스틸컷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평화비(소녀상)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일부 사람들은 ‘피해자를 순결하고 힘없는 어린 소녀로 대상화했다’고 부정적으로만 본다. 그것은 평화비에 담긴 다양한 예술적 장치(어깨의 새, 들린 발꿈치, 그림자 등)를 삭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지나친 단순화다. 영화는 피해자의 증언과 총독부 기관지 광고를 통해서 소녀들까지 동원의 대상이 됐는가가 중요한 역사적 쟁점이었음을 보여 준다.

더구나 영화의 막바지에는 함께 손잡고 달려나가려는 듯한 3명의 성인여성과 그들을 바라보는 김학순 선생님의 모습을 그린 센프란시스코 평화비가 나온다. 감독은 전 세계 곳곳에 세워진 평화비가 ‘이제 일본에 세워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칼바람 속에서 앞 길은 어두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미 일본 밖에 세워진 평화비도 위협받고 수난받고 있다. 수요집회의 지속도 흔들리고 있다. 이제 피해자가 사망해도 누가 섣불리 나서서 통장을 만들고 조의금을 모으겠다고 나설 것인가. 누가 이 운동을 이어가며 수십 년을 헌신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김학순, 김복동 선생님들이 지금 이 처참한 광경을 보지 않고 먼저 가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주전장>과 함께 다시 볼만한 영화는 김복동 선생님과 정의연 활동가들이 어떻게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기록한 <김복동>이다. 그 영화에서 길원옥 선생님이 “잊어버리는 약을 먹었나. 기억이 안 나”하시면서 김복동 선생님을 기억 못하던 그 아픈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김복동 선생님은 일본정부를 향해 ‘우리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반성만 하면 된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반성은커녕 반격(백래시)이다. 그것도 가장 지독한 형태의. 그래서 <김복동>은 차마 다시 볼 용기가 안 난다.

▲ 영화 ‘주전장’ 스틸컷
▲ 영화 ‘주전장’ 스틸컷

영화 <주전장>의 마지막에 ‘일본회의’ 핵심리더인 카세 히데야기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다.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은 정말 귀엽지 않나. 참 정감이 간다.’ 지금, 이용수 선생님과 피해자들의 고통과 증언에 별 관심도 없던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이 주동하고 검찰이 잽싸게 거들고 나서면서 나라 전체가 휘말리는 이 굿판을 보면서 ‘저것봐라. 얼마나 시끄럽고 귀엽냐’는 저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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