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부의장으로 잠정 확정되면서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21대 국회가 ‘성평등 국회’로 거듭나려면 새롭게 깨어지는 유리천장의 상징성에 환호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는 당부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 여성 부의장’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상당하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73년 동안 국회 의장단에 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2010년대 들어서야 18・19대 국회에서 이미경 전 의원, 20대 국회에서 조배숙 의원이 부의장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국제의회연맹(2020년)이 밝힌 전 세계 여성 국회의장 비율 20.5%, 여성 부의장 비율 25.3%에 한국 국회는 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국제적으로 한 나라에서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판단할 때 대기업 CEO나 선출직 공직자 중 여성이 몇 명인지, 의회 지도부에 여성이 있는지 등을 비교지수값으로 쓴다”며 “원내 리더십에 여성이 들어간 것이 그 국회의 성격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국회 내에서 여성 의원들의 비중이 일정 정도 있고, 발언 파워가 있고, 그래서 그 사람이 원내지도부로 들어갔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국회가 젠더친화적 의제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일종의 상징”이라 해석했다.

국회법에 따른 부의장의 역할은 의장의 직무 대리, 교섭단체들과 상임위원 선임・개선 협의, 국회 전원위원회 위원장(의장이 지명하는 1인) 등이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적인 의회외교 활동에 참여하며 한국 국회를 대표하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서 소장은 “남성 부의장이라면 안 갔을 무대들이 있다. 예를 들어 IPU(국제의원연맹) 여성의회연맹 같은 경우 그동안 평의원 급이 갔다면 이제는 지도부 급으로 참석할 수 있고, 여태껏 남성들이 참여한 아시아지역의 원내 리더십 회의체에 여성 부의장이 한국 국회를 대표해서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부의장 후보로 추대된 김상희 의원. ⓒ노컷뉴스
▲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부의장 후보로 추대된 김상희 의원. ⓒ노컷뉴스

여성운동가 출신 부의장에 대한 기대도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김상희 의원이기에 특별한 점도 있다. 오랜 시간 여성운동을 해왔고 상대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나 젠더문제에 대한 이해가 높기 때문에, 부의장 자체의 역할이 아주 크지 않더라도 성평등과 관련한 나름의 역할을 찾아서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부의장이라는 직위와 권한을 이용해 성평등과 젠더 문제 의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 21대 국회가 젠더・성평등 문제를 다른 안건과 차별 없이 다룰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서 소장은 “국회 전체 의사일정은 의장단이 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결정하고, 위원회 의사일정은 교섭단체 간사들과 논의하는데 젠더 관련 이슈들은 대부분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려왔다”며 “(의원들이) 잘 모르고 낯설기 때문에, 다루면 골치 아프고 말 잘못하면 욕 먹기 때문에, 관련 안건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다른 안건과 동등한 지위에서 상정될 가능성을 높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21대 국회에선 상임위원회 성비가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한 것과 맥락이 닿는다. 여성연합은 25일 논평에서 여성 부의장을 환영하는 한편 “발의된 법안을 논의하고 국회 상임위원회 운영에 실질적 권한은 가진 상임위원장 자리도 남성의원이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대 국회에서 여성 상임위원장 비율은 전반 6.25%(16개 중 1개), 후반 17.6%(17개 중 3개)에 불과하다. 상임위에서 정당 간 이견이나 일정을 조율하는 간사 중에서도 여성은 전반 16.67%, 후반 26.8%에 그쳤다.

여성연합은 “국회를 대표하는 자리 중 하나인 부의장에 여성이 선출됐다는 것은 남성 권력이 공고한 국회 역사에 균열을 내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21대 국회는 이를 시작으로 상임위원회 여성위원장 비율의 대폭 확대,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 해소를 위한 성평등 입법활동을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25일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총회에서 추대된 국회의장 후보 박병석 의원(왼쪽)과 부의장 후보 김상희 의원. 사진=미디어오늘 유튜브
▲ 25일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총회에서 추대된 국회의장 후보 박병석 의원(왼쪽)과 부의장 후보 김상희 의원. 사진=미디어오늘 유튜브

21대 여성 의원들이 소속 정당과 정파를 막론한 연대를 추진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권 대표는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16, 17대 국회에서 지금으로 치면 미래통합당과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여성 의제 관련한 활동을 많이 했다. ‘호주제 폐지’의 경우 보수야당에서도 찬성 의견이 있었고, 상임위에서 여야 여성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여성 할당제’를 요구하거나 공동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며 “여성 의원(당선자)들 중에서도 민주당 소속이 많기 때문에 특히 n번방 사건 같은 성폭력 이슈에 대해 다른 정당의 여성 의원들과 공동 대응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남성의 영역이 워낙 크다보니 여성이나 장애인 등은 항상 ‘첫번째 무엇’이 될 때 주목 받지만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가 계속 나와서 여성 부의장이나 의장이 별 일 아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 의원도 출마 선언에서 ‘유리천장을 깨는 것뿐 아니라 후배 여성, 청년들에게 롤모델이 되겠다’고 했는데 정작 민주당에서 그간 청년 여성 목소리를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제2, 제3의 김상희가 나올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언론에 대해서는 “해외에선 어떤 여성 지도자들이 있는지, 어떻게 우리나라와 다르게 20~30% 이상 여성 비율이 가능했는지 정보들이 제공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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