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터뷰 전문 언론사 [AVEC G]의 편집장이자 수석기자이다. [AVEC G]의 최대 장점은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기에 정치적 외압이나 언론탄압이 없으며, 제3의 입장에서 국내의 사회적 흐름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AVEC G]를 창간하며 가장 우선순위로 둔 것은 ‘정치적인 견해는 무조건 중립 유지’였다. 나는 야당의 인물을 인터뷰 기사를 출고하게 되면, 무조건 여당의 인물도 인터뷰 기사를 출고하였고, 소수정당과 만 19세 이하의 고등학생 신분으로서 정치 활동을 하는 인물도 찾아 인터뷰하여 기사를 출고하였다. ‘무당무파’인 내가 어느 당파에 치중하지 않으면서, 오직 ‘인물’을 ‘취재’함에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도 한 달여가 넘어간다. 제21대 총선 전과 후와 비교해, 극과 극으로 나뉜 국회의원 후보와 당선자들의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를 에피소드로 나누어 풀어놓는다. 아주 진솔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당시에는 격한 감정이 있었을지언정 지금은 훌훌 털어놓고 담담한 심정으로 말이다. 이 글을 통해 곧 개원을 앞둔 제21대 국회는 지난 제20대 국회와는 또 다른 발전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 ‘AVEC G’ 로고. 사진=AVEC G 홈페이지
▲ ‘AVEC G’ 로고. 사진=AVEC G 홈페이지

# 에피소드 1. “퍽 난감하군.” (feat. 김신)

[AVEC G]의 편집장으로 그리고 국내 언론사들의 프리랜서 기자로 해외에서 취재하면서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두 가지였다. 지금도 추천하고 싶은 두 가지는 전화와 페이스북 메신저의 사용이다.

일단, 전화는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전화하면 전화번호가 보이스피싱일까봐 의심을 한다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엔 모순이 있다. 정치인이 선거 유세 때 자주 하는 공약이 있다. 바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 그리고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인터뷰를 위해 여러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무실에 전화하였다. 그런데 받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나는 이들이 ‘해외번호’라서가 아니라 ‘바빠서 안 받는 것’, ‘이유가 있어서’이기를 바랬다. 만약 단순히 해외에서 전화해서 받지 않는 것이라면 너무 절망적일 것 같기 때문이다.

지역구에도 수많은 해외 유학생이 있을 수 있고, 해외 방문 중인 여행자가 있을 수 있으며, 재외 교포도 있을 수 있고, 해외에 살지만, 지역구에 주소지를 둔 국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개인의 상황이 있어 국내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해외전화 번호’라며 ‘보이스피싱 가능성’의 이유로 전화 수신을 차단당한다면 안될 일이다. 그리고 알려주는데, 전화 받는다고 돈 들 일 아니고 (오히려 전화를 거는 해외에서 국제전화비가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보이스피싱 당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 해외에서 전화가 와도 지역구 국민의 소중한 안건과 도움이 필요한 일일 수 있으니 꼭 전화 받아주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비롯한 SNS의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이다. 댓글은 공개된 공간에서 개인의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것을 부담스러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댓글을 썼는데,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비방하면 그것은 정신적 고통이 된다. 페이스북 포스팅의 댓글에 누군가 개인의 사연을 구구절절 밝히며 지역구에 대한 불만과 의견을 올리는 것도 할 수 있겠지만 누가 그렇게 나서겠는가.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메신저 메시지를 대체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취재를 해보니 이메일 주소를 밝힌 국회의원은 드물었다. 페이스북 계정이 있는 국회의원 중 노골적으로 ‘페이스북 메신저는 확인하지 않습니다’라고 프로필에 밝힌 의원들을 몇몇 보았다. 그러면서 이메일 주소도 밝히지 않는다. 전화번호는 있으나 받지 않는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는 이유는 왜지?’ 혹여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누군가가 지하에서 감금되어 구조 요청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메신저 메시지 수신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국민을 위해 쉽고, 빠르고, 가능한 모든 소통의 창구를 열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해외에서 발신되는 전화를 받기를. SNS 메시지도 확인하기를. 어디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보내는 절박한 메시지 일지 모르니 말이다.

# 에피소드 2. “제게 포기하고 적당히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feat. 박새로이)

내가 처음 제21대 총선을 위해 인터뷰를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수많은 페이스북 메신저 메시지와 이메일이 오갔다. 나는 가장 먼저 ‘일 많이 하는 정치인’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떠올랐다. 먼저 여당의 박주민 의원에게 인터뷰 협조 공문을 이메일로 보냈다. 며칠 되지 않아, 그는 인터뷰 거절 의사를 보내왔다. 공손하다고 느꼈고, 앞으로 ‘내가 거절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배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박주민 의원이 정말 ‘신사적이었다’라는 것은 후에 더 많이 깨닫게 되었다.

‘야당에서 어떤 인물이 인터뷰이로 적합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5선 의원인 정병국 의원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시 [AVEC G]는 창간하지 얼마 안 되어 창간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법한데도 불구하고 페이스북 메신저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인터뷰하겠다’라고 하여 내가 ‘협조 공문을 보내주겠다’는 말에 이메일 주소도 친근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답변이 오지 않아 내가 메신저를 보냈고 그는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며 사과를 하였다. 나는 그의 친근한 메시지가 5선 의원이라고 하면 멀게 느껴질 것 같지만, 친화적으로 다가왔달까?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그 다음 날 나는 그의 사무장에게서 ‘당의 상황이 있어 인터뷰가 불가하다’는 거절의 답변을 받았다. 바로 어제 대화를 나누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너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자! 이메일도 여기 알려줬으니 공문을 줘!’ 하지만 공문의 서신은 거절이라니…. 지금도 황당하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총선의 열기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세 다른 당에서 세 명의 젊은 국회의원 예비후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장경태 후보, 미래통합당의 정원석 후보, 정의당의 박창진 후보를 섭외했다. 세 명의 인터뷰가 모두 같은 날 출고 될 수 있도록 기획을 했다. 그런데 이 세 명의 대응은 너무나 달랐다.

먼저 나는 프로필과 사진 등의 자료를 세 후보에게 똑같은 기한에 맞추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개인의 일정상 기한 내 못보내게 되면 ‘미리’ 알려달라고 이메일에 공지했다. 정원석 후보는 내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미리 ‘기한 안에 자료를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며 사과의 메시지와 함께 보내줄 수 있는 날짜를 고지해줬다. 반면, 장경태 후보와 박창진 후보는 기한이 넘어서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일단 ‘수신오류’인지, ‘아직 보내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확인 이메일을 보냈다. 박창진 후보는 아직 보내지 않았다며 사과의 이메일 보내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정원석 후보, 박창진 후보에게서 각각 프로필과 사진을 받았다.

장경태 후보는 기한을 한참 넘었지만, 답이 없었다. 나는 ‘공동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이니 일정을 맞춰줬으면 좋겠다’라고 여러 번 이메일을 보낸 후에야 자료를 받았다. 자료를 받고 나서 그 자료를 기반으로 세 명의 인터뷰는 모두 공통질문과 개인질문으로 이루어진 서면 인터뷰 질문을 보냈고, 답변의 기한은 프로필 및 사진의 자료와 같이 모두 같은 날로 정했다.

그런데 답변 기한 사이 정원석 후보가 미래통합당의 공천에서 최종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무엇이든 간에 열정적으로 임하던 정원석 후보였기에 열심히 인터뷰 질문에 답변을 작성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 공천 탈락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바로 미안함과 유감을 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당시 공천 결과를 번복하는 일명 ‘호떡 공천’을 진행 중이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최종 출마자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일단 정원석 후보를 제외한 장경태 후보와 박창진 후보만 인터뷰를 속개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답변을 주기로 한 기한이 지났는데 두 사람 모두 답변이 없었다. 박창진 후보는 일주일이 훨씬 지난 후에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는 ‘박창진 후보가 단 한 편의 [AVEC G]에서 내가 출고한 기사나 내가 과거에 쓴 인터뷰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언론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너무 달랐다. 그의 답변은 단조로웠으며, 단답형으로 채워져 있었다.

장경태 후보는 더 가관이었다. ‘수신확인’이라 읽고 ‘재촉’이라 부르는 이메일을 몇 번이나 보냈다. 한 번은 사무장에게서 답변이 왔는데 ‘수신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며 ‘질문지를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질문지를 다시 보내줬다. 며칠 후 나는 답변을 받고 어이없는 실소가 나왔다. 답변엔 공통질문과 개인질문의 답변은 고사하고 ‘지역구에 출마한 이유’, ‘지역구 분위기’, ‘지역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점’, ‘공략’ 등 [AVEC G]에서 서면 인터뷰 질문지를 보낸 것의 답변이 아닌 일방적인 자문자답을 만들어 보내왔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질문지 답변이 아니다.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몇 번 더 이메일을 보냈지만, 명절에 밤 까이듯 까였다. 내가 인터뷰를 끝내기를 원하며 사흘에 한 번, 기다렸다가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 이메일을 보냈다. 시간은 흘렀다. 그 사이 장경태 후보, 박창진 후보는 일명 ‘메이저 언론사’, ‘빅네임 기자’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으며 장경태 후보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E-Mail. 사진=gettyimagesbank
▲ E-Mail. 사진=gettyimagesbank

난 그가 당선되는 순간을 보며, 작은 언론사와의 약속도 책임감 있게 지키지 못하는 그를 보며, 아찔함을 느꼈다. 난 그가 당선된 후에도, 당선 축하 인사와 끝끝내 인터뷰를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의견을 밝히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역시 아직도 답변이 없다. 이제 당선이 되었으니 알려지지 않은 작은 언론사와의는 답변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책임감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앞으로도 그의 이메일은 누구에게나 쭉 ‘수신오류’일까?

# 에피소드 3. “모른다는 건 좋은 거니까” (feat. 남세희)

나는 올해 2월부터 국내 인터넷 신문 [슬로우뉴스]에서 올림픽 특집 인터뷰 기사 연재를 하고 있다. 원래는 올해 7월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연재로, 1~2주마다 올림픽 레전드와 함께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고, 도쿄 올림픽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 예상 성적 등의 내용으로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재를 처음 시작한 복싱의 이옥성 선수 기사가 나가자마자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었다는 것이 공식 발표되었다. 그 후, 편집팀과 협의하여 ‘도쿄’라는 단어는 제외하고 ‘올림픽 특집’만 넣어서 각 종목의 레전드 선수와 심판, 행정가 등 올림픽과 관련된 여러분들의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지난 4월 초,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였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의 이용 감독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와의 대화 분위기는 활기찼다. 이용 감독은 나와 [슬로우뉴스]에서 함께 인터뷰할 것을 약속했다. 개인이 자신을 직접 추천하여 면접 등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선발과정을 거치고 발탁된 것은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스포츠인으로서도 멋진 도전이라고 생각했기에 인터뷰이로서도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제21대 총선에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임오경 당선자와 함께 체육계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니 많은 스포츠인이 함께 기뻐하며 수많은 댓글로 축하 인사를 남겼다. 이용 감독에게 앞으로 체육계에의 발전과 환경 변화를 기대하며 응원하는 댓글도 많았다. 그의 삶에서 최대의 신분 변화가 생긴 만큼 많은 축하와 연락이 갈 것이라 생각했고,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을 기다렸다.

일주일 후,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인터뷰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가 인터뷰할 수 있다는 의사가 있어, 그가 알려준 이메일 주소로 정식 인터뷰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인터뷰가 간단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배려해달라’는 답변을 보냈다. 그에게 그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걸린다는 것을 의미할까?

만약 인터뷰어의 입장에서는 인터뷰이 섭외가 가능하지 않다면 다음 후속 주자를 섭외해야 하거나 이미 섭외된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해서 다음 기사 출고가 늦어지지 않도록 취재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용 감독에게 나의 이런 취재 상황을 설명하며 ‘언제쯤 인터뷰 답변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나의 메시지에 답변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벌써 연락이 끊겨 간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당선 된 지 한 달 채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나의 메시지에도, 이메일에도 더는 답변이 없다. 오히려 몰랐으면 좋았을까? 총선 전 대화 분위기가 좋았기에 내 마음을 들떴고 그래서 더 실망이 큰 것 같다. 그가 당선된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을 텐데...

# 에피소드 4. “함부로 속단하지 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feat. 차유리)

나는 제21대 총선에서 무언가 ‘터트릴’ 것 같은 ‘촉’이 꽂힌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당시 정치계 입문 전인 인물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전 MBC 문화방송의 아나운서이자 새로지음발전소의 한준호 이사장이었다. 나는 그의 배경과 경력도 그렇지만, 특별히 그가 SNS를 통해 이사장으로 있는 ‘새로지음발전소’와 관련된 사업이나 경력, 행적보다 여러 다양한 사회단체 및 부처의 행사와 모임 등에 참가하는 것을 부각하는 것에 주목했다. 나는 당시 한준호 이사장이 무조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한준호 이사장에게 인터뷰 의뢰를 하였고, 활발하게 언론 취재에 응하던 그는 나와의 인터뷰도 흔쾌히 수락하였다. 나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정치 입문’에 관한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그와 관련된 질문을 빼달라고 내게 정중히 부탁해왔다. 한준호 이사장은 정말 일정이 많았고, 바빴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마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끝내 서면 인터뷰 기한을 약속한 마지막 날 답변을 보내왔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뷰 답변을 작성했다’라고 했다.

정치에 관한 인터뷰가 제외된 기사가 출고되었으며 이 인터뷰는 ‘성지’가 되었다. 그가 내게 기사 지면을 위해 건넨 MBC 문화방송 재직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사진을 비롯한 가족사진 등은 모두 그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선거운동을 하던 당시 카드뉴스 템플릿으로 만들어져 홍보하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한준호 이사장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고양(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아쉬운 점은 그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으며 정치에 입문하면서 페이스북에 이미 있던 ‘Juno Han’이라는 계정에서 또 다른 ‘한준호’라는 계정을 만들면서 가끔은 연계하여 소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한준호’라는 계정에서는 오직 정치와 관련된 활동을 올리는데 속히 말하는 ‘메이저 언론’의 언론인과 ‘빅네임 기자’들이 ‘친구’로 포진하여 있다는 점이다. 나도 ‘친구’ 신청을 하였으나 매몰차게 ‘거절’ 당했으며 한번 거절당한 계정에 대해서는 ‘친구 신청’의 버튼도 뜨지 않기에 언론사 간의, 그리고 기자 간의 차별을 둔 것 같아 더 서글프게 느껴진다. 아니면 그저 내가 싫은 건가…?

# 에피소드 5. “덕질하다 탈덕하면 안티보다 무섭다던데” (feat. 윤세리)

한준호 당선자처럼 예상했다면, 전혀 반대의 길을 걸어 나를 놀라게 한 인물도 있었다. 34살의 젊은 나이를 지닌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대변인 출신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정국진 정당인이었다. 당시 정국진 위원은 북한대학원 북한학 석사를 졸업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단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매일 보도된 정치 현안에 대해 SNS에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며 개인의 정치적 소신과 의견을 올리니 20·30세대를 위주로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가끔 견해 차이를 보이거나 욕설이 담긴 댓글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상대방의 계정을 차단하지도 않았다. 그는 늘 침착하게 모든 댓글에 의견을 남겼다.

나는 그가 꾸준하게, 한 문장이라도 매일같이 글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서 보기 드문 고집과 지구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그에게는 갈망과 목마름이 있어 보였다. 제21대 총선에서 무언가 해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인터뷰를 의뢰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인터뷰에서 나는 ‘청년 정치인’의 의미와 학사장교 출신인 그에게 ‘국위선양하는 BTS에 군 면제를 주는 것이 마땅한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내게 ‘인터뷰 질문이 참신하다’며 자기 생각이 담긴 인터뷰 답변을 정성껏 작성해 보내왔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SNS에서 ‘키배’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SNS를 들어갈 때마다 한숨 먼저 쉬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게시판은 난장판 같았다. 언제나 ‘더불어민주당에서 탈퇴하시죠’라던가 ‘더불어민주당이라는게 부끄럽습니다’라는 여당 지지자들의 댓글이 있었다. 그는 포스팅을 통해 여당의 발전할 길을 외치고 있었고, 여당의 지지자들은 그런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던 것이었다.

제21대 총선이 다가오자 그는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떠나 ‘민생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민생당’ 안에서도 여당에서 야당으로, 그것도 소수정당에 입당하여 비례대표도 아니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정식 출마하려고 하니 지역구를 어디로 해야 할지, 그는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평택(을)에 출마를 결정하였으나 기탁금 1500만 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혼란이 있었고 6분 늦게 입금하는 바람에 출마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가 기탁금 1500만 원을 구하는 과정이 어떻게 그렇게 힘들었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상식적으로 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지지하는 인원이라면 1500만 원이란 금액을 다른 것도 아니고 기탁금으로 쓰겠다는데 당에서 마련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겠지만 1500만 원도 개인이 그만큼도 저축하지도 않고, 1500만 원의 융자를 받을 수 없으면 신용등급이 얼마나 되며, 이자를 평생 갚아도 못 갚는 제3 금융까지 거절을 당할 정도라면 대체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는 걸까? 또한, 국회의원 후보 등록 후에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위해 만만치 않은 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럼 그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려고 했을까?

나는 제21대 총선 국회의원 출마자가 확정된 후, 정국진 위원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슈퍼마켓을 마련해드리려고 채무를 지었는데, 그 슈퍼가 보증금도 회수할 수 없을 정도로 고스란히 망하면서 자신의 부담이 되었다.`며 배경을 알려왔다. 그러면서 ‘손학규, 박주현 의원이 지원을 약속해서 돈 걱정 없이 꿈을 펼치려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글쎄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두 의원이 지원을 약속했다면 기탁금 문제부터 해결을 해주지 않았을까? 정국진 위원의 꿈은 과연 ‘6분’ 때문에 깨진 걸까? 아쉬움을 곱씹는 그에게 아직도 ‘여당을 떠나더니 패자가 되었다’며 비난을 퍼붓는 여당 지지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깨고 새로운 모습,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 그에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 마지막으로…. “내가 바라는 정치는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 (feat. 신미래)

위에 언급한 인물과 있었던 에피소드 외에도 과거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AVEC G]에서 인터뷰 의뢰를 했으나 서면 인터뷰 진행 중 갑자기 연락이 끊겨 결국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선발된 후, 내게 ‘만나고 싶다’는 인터뷰 의사를 밝혀왔던 박은수 후보도 기억에 남는다. 메시지, 전화 등 아무리 연락하고 메시지를 남겨도 답변이 없었던 이낙연 당선자, 인터뷰 의사가 있어 공문을 보내자 그 후 침묵으로 일관한 여영국 후보…. 그 외 수많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이들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절대 누군가를 지탄하거나,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국회의원 후보에게 인터뷰는 선거운동 중 최대한 대중에게 언론 노출로 인해 이름을 알리는 선택이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돌아봐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지금도, 수백의 의뢰 중 하나였을 나의 인터뷰 의뢰를 기꺼이 수락하여 함께 해준 인터뷰이께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인터뷰 수락 후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때 그들이 ‘언론사 측과 취재기자의 입장이 곤란하거나 쌍방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슬기로운 대처 능력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떤 때보다 시국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때에 이루어졌다. 여당은 최다인 국회에서 180석을 확보하여 의결, 국회의장 확보, 대법관, 헌법 재판관, 국무총리 임명 및 동의안 처리 등 국무의 의사결정에 있어 많은 권리를 가져감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번 제21대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성실히 일함으로 떨군 땀과 눈물로 인해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금배지가 은배지가 될 때까지 일한다면, 그리고 당파를 떠나 무엇이 국민의 삶과 치유를 위함인지 함께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제21대 국회는 성공적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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