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40년 만에 사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경향신문은 “광주의 5월 제대로 담지 못한 기사, 40년 만에 바로잡습니다” 기사를 내고 과거 자사 기사를 사과하고 정정해 눈길을 끌었다.

경향신문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며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원인은 언론에도 있다. 대다수 언론은 계엄군이 1980년 광주 시민들을 폭력 진압했을 때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언론이 스스로 당시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야 했지만 현장 취재가 부족했다. 계엄사령부 등 당국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썼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한 자사 보도 108건을 분석했다. 계엄군의 폭력 진압 등 당시 광주 실상을 다룬 보도는 0건이었다. 계엄군의 집단발포, 광주 진압작전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최소 27건의 기사는 계엄사, 정부 등 당국 자료나 계엄사령관 등 관계자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서 작성했다. 계엄군에 비판적인 사설은 찾기 어려웠다. 

▲ 18일 경향신문의 정정보도 기사. (클릭하시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18일 경향신문의 정정보도 기사. (클릭하시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당시 경향신문 보도는 신군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언론통폐합 이후 경향신문 경영권은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가 가졌다”며 “보안사 장교들은 경향신문 보도를 수시로 검열했다. 경향신문이 지금처럼 독립언론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사원주주회사로 출범한 1998년부터”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1980년 5·18 당일 “국민 여망에 부응”한다는 정부 성명만 다룬 기사를 “아침부터 공수여단은 광주 학생을 연행했다”로 정정했다. 5월21일 경향신문은 “군경 5명 민간인 1명 사망”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를 “도청 앞·금남로에서만 최소 54명 죽었다”로 정정했다.

5월23일 경향신문은 “광주는 치안 부재 상태” 기사를 내고 군은 발포도 못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5·18 기간 중 광주에 출동한 육군 헬기 40여대 중 일부가 5월21·27일 시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사격했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전하는 식으로 정정했다. 5월29일 광주 치안 상황을 전하며 썼던 “완전한 무질서”라는 표현은 “당시 광주 치안은 안정적”이라는 내용으로 정정했다.

조선·중앙만 5·18 40주년 사설 없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가 사설을 통해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관련 사설을 내지 않았다. 
 
사설을 낸 언론사들은 진상규명을 강조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역사왜곡 처벌법 도입을 촉구했다. 한겨레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당 일각의 과거 5·18 폄훼 발언을 사과한 일을 언급하며 “빈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21대 국회에서 5·18역사왜곡 처벌법을 제정하고 헌법에 5·18 정신을 담는 일에 초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겨레는 역사왜곡 처벌법 도입의 필요성을 여러번 강조해왔다. 

이는 경향신문과 온도차를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에서 주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언급했는데 “진상규명 작업에 적극 협력하고 5·18 민주유공자 예우법 등 관련 법안 처리에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유공자 예우법’을 전면에 내세우고 ‘처벌법’은 강조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5·18만을 대상으로 별도로 법제화하는 것이 다양한 해석을 억제할 우려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며 역사왜곡 처벌법에 우려를 나타냈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의 도입 취지는 의미가 있지만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부정을 법으로 처벌하는 방식은 논쟁적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면, 다음 정부에서 누가 어떤 법을 만들지 알 수 없다.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나 2010년 천안함 폭침은 물론 정부수립이나 6·25에 대해 어떤 사실을 공식화해서 그것을 도구로 삼아 어떤 주장을 탄압할지 알 수 없다”며 역사를 부정하는 일을 처벌하는 법이 오남용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중요한 역사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처벌해야 한다는 접근은 문제가 있다. 그렇게 보면 상대 진영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향한 모욕을 금지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서 “표면적으로는 역사왜곡이지만 이 발언이 사회적으로 5·18 유가족과 해당 지역 사람들, 즉 소수자에게 차별을 야기한다면 혐오표현 범주에서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역사를 부정해서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5·18 관련 망언을 혐오표현 측면에서 접근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의연 할머니 ‘쉼터’ 언론 앞다퉈 지적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경기도 안성에 마련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18일 9개 종합일간지는 모두 위안부 쉼터 논란을 보도했다.

앞서 한국일보가 정의연 쉼터에서 음주 자리가 이어져고, 윤미향 전 대표 아버지를 관리인으로 둔 데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여러 언론이 △지나치게 비싸게 매입한 후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 △할머니들이 쉼터 용도로 이용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 △워크숍 등 다른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 △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라는 지적 등이 제기됐다. 특히 고가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이규민 21대 민주당 당선인이 엮여 있어 정치적 사안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조중동’은 18일 1면에 관련 기사를 냈다. “정의연 고가매입 논란 위안부 쉼터, 여 당선자가 소개”(동아일보) “시세 3배 주고 샀다, 위안부 쉼터 이상한 거래”(조선일보) “정대협, 안성 위안부쉼터 3억 이상 비싸게 샀다”(중앙일보) 등 기사를 냈다. 

▲ 18일 한겨레 기사
▲ 18일 한겨레 기사
▲ 18일 조선일보 기사.
▲ 18일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익명의 위안부 할머니와 자녀의 인터뷰를 1면에 내세웠다. 윤미향 전 대표가 제대로 지원은 하지 않고 자신들을 이용만 했다는 내용으로 욕설을 한 대목도 ‘X’표시를 하고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위안부 운동 빙자 비즈니스”로 사안을 규정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단순 회계 부실이나 실수 수준이 아니다”라며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악취 나는 정의연 의혹”이라고 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으로 부각하지는 않았지만 관련 사안에 의문점이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정의연은 제기된 의혹 중 일부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의구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을 내고 “정의연과 윤 당선자가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투명하고 겸허하게 설명하고 제도 개선과 내부 감시 기능 강화 등 구체적인 후속 대책을 내놓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겨레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진실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세계적으로 전시 성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을 발전시켜온 성과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1만호 맞은 한겨레, “작은 허물도 인정하겠다”

한겨레는 이날 1만호를 맞았다.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는 ‘독자들께 보내는 편지’를 통해 “우리가 비판하던 기득권 언론의 행태를 우리 스스로 닮아가고 있지 않은지, 약한 이들의 소리에 멀어지고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는지, 뼈아프게 돌아보겠다”며 “초불신 초연결 시대에 ‘신뢰의 연결’로 한겨레 르네상스를 열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최근 취재보도 준칙을 보완하고 수사·재판보도 세칙을 공개했다. 

▲ 18일 한겨레 1면 대표이사 편지글.
▲ 18일 한겨레 1면 대표이사 편지글.

김현대 대표이사는 “작은 허물이라도 독자와 취재원의 입장에서 정직하게 인정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일부터 실천하겠다”며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 같은 세계적 정론지들은 ‘정정보도와 사과를 잘한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다. 기레기 언론과 가짜 뉴스가 판치는 대한민국 언론 지형에서 한겨레가 이 길을 먼저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현대 대표이사는 “본격적인 방송에 도전하는 꿈도 꾼다”며 “신문-디지털-방송을 망라해 건강한 진보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지금 시대 한겨레의 소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현대 대표이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종합편성채널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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