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려면 확실하게 망해야 한다”는 말이 정말로 맞아떨어지는 것일까. 가수 ‘비’의 2017년 노래 ‘깡’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불이 붙고 있다. 무척이나 역설적 의미로 말이다.

한동안 한국이 낳은 세계적 ‘월드스타’라는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했던 비는 201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쓴맛을 봤다. 웬만한 중견 가수도 쉽게 발표한 적 없는 ‘실시간 컴백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까지 언론 주목을 모으며 2014년 새 앨범 ‘Rain Effect’를 발표했지만 더블 타이틀곡으로 선정한 ‘30 SEXY’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 Back’을 철이 한참 지나 답습했다는 평을, ‘La Song’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가사와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 구성으로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그나마 ‘La Song’ 후렴구가 태진아 노래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자 발빠르게 태진아를 게스트로 대동하며 음악 방송을 나간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후로도 비는 쓴맛을 계속 맛봤다. 2017년 1월 자신의 반려자인 배우 김태희에게 바치는 콘셉트로 싱글 ‘최고의 선물’을 발표하며 다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새 앨범 ‘MY LIFE 愛’를 공개했지만 앨범은 타이틀곡 ‘깡’에 대한 무수한 혹평과 함께 단 한 개의 수록곡도 어떠한 음원 사이트에서 100위권에 들지 못하며 침몰하고 말았다. 2014년 앨범에서 지적됐던 납득이 가지 않는 가사, 난잡한 사운드 구성, 철 지난 감각이 이번 앨범에서도 답습됐다.

설상가상으로 비의 연기 활동 역시 반향을 만들지 못했다. 2014년 복귀 앨범을 발표했던 시기에 맞춰 출연했던 SBS 드라마 ‘내겐 사랑스러운 그녀’부터 2016년 SBS ‘돌아와요 아저씨’, 2018년 JTBC ‘스케치 : 내일을 그리는 손’, 2019년 MBC ‘웰컴2라이프’는 작품 평가와 상관없이 모두 인상적 흥행을 거두는 것에 실패했다.

결정적으로 2019년 개봉한 주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연출, 각본, 연기, 시대고증, CG 등 모든 부분에서 결함을 드러내며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한때 말은 많았어도 ‘월드스타’라는 말이 마냥 아깝지는 않았던 비는 이렇게 2020년 현재 연이은 노래와 출연작 흥행 실패로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는 현재 연예 활동의 큰 위기를 맞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닥까지 떨어진 인기가 기묘한 관심을 받는 원동력이 됐다. 2017년 ‘깡’은 큰 실망감 속에서 바로 대중들 앞에 사라졌지만, 2018년 하반기 즈음부터는 유튜브나 SNS를 중심으로 ‘깡’의 ‘악명’을 확인하거나 네티즌 자신의 ‘인내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 또는 너무나도 빠르게 몰락한 비의 현 상황을 직접 대면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유튜브에 올라온 ‘깡’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그 열풍은 2020년 5월 현재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2019년 하반기부터는 ‘1일 1깡’이라는 ‘밈’(meme)이 생기면서 더관심이 붙고 있다. ‘깡’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활동을 통해 공개된 기묘한 안무를 따라하는 움직임이 2020년 초부터 불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유행으로 대다수 활동들이 어려워지자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을 응원하는 영상이 점차 제작되는 상황에서, ‘1일 1깡’ 유행을 활용해 ‘깡’ 안무를 커버한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마치 여러모로 처참하게 망해서 오히려 미국의 오래된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로부터 “못 만든 영화계의 시민 케인”(The Citizen Kane of bad films)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지금도 컬트적 인기를 끌고 있는 2003년 토미 웨소(Tommy Wiseau)의 영화 ‘더 룸’(The Room)과 같은 상황에 처한 셈이다.

▲비의 '깡'.
▲비의 '깡'.

그런데 이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1일 1깡’ 열풍에 참여하려는 ‘미디어’가 있다. 다름 아닌 KBS청주방송총국(이하 ‘KBS청주’)이다. KBS청주는 자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케비넷’을 통해 지난 4월14일 ‘1일1깡 교과서 (이거보고 따라하세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했다. 비가 신곡 ‘깡’을 발표한 2017년 12월, KBS 음악방송 ‘뮤직 뱅크’에 출연했던 방송분을 그대로 올린 것이었다. 이미 비가 ‘깡’ 활동을 할 당시 음악 방송은 굳이 KBS청주 ‘케비넷’이 아니어도 볼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다. 하지만 ‘1일 1깡’을 강조한 제목이 눈길을 끈 덕분이었을까. 영상은 5월9일 현재 조회수가 약 140만회를 기록하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후 KBS청주는 어떻게든 ‘1일 1깡’으로 얻은 인기를 계속 유지하려 관련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하는 상황이다. 4월 28일에는 ‘1일 1깡 비 청주에 오다’라는 영상을 공개해 5월9일 현재 조회수는 약 25만회를 기록했다. 다만 제목은 비가 2020년 ‘1일 1깡’ 유행이 계속 되자 KBS청주에 방문했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과 달리, 실제 영상 내용은 2014년 KBS ‘연예가 중계’의 인기 코너 ‘게릴라데이트’ 녹화 장소를 청주로 잡아 겸사겸사 KBS청주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을 다룬 것이었다.

무려 6~7년 전 영상을 ‘1일 1깡’ 붐에 편승하기 위해 과장된 제목을 사용하면서 다시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그 다음날인 4월29일에는 ‘깡’의 가사 일부인 ‘나, 비 효과’라는 제목을 쓴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 내용은 2014년 ‘연예가 중계’의 ‘게릴라데이트’를 녹화하기 위해 청주 성안길에 방문한 모습을 재편집한 영상이었다. 이미 한 번 ‘낚시’에 당했으니 두 번은 안 속겠다는 심산이었을까. 이 영상의 조회수는 5월9일 현재 약 1만4000회로 다른 두 영상에 비해 낮다.

KBS청주 이외에도 지역 방송사들이 ‘1일 1깡’ 열풍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KBS전주방송총국은 KBS청주보다 4일 빠른 4월10일 ‘1일 1깡 리스너분들께 드리는 레전드 비 무대 모음’이라는 제목으로 비가 2006년 당시 KBS의 심야 음악 라이브 프로그램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한 영상을 게시했다. 울산MBC도 별도의 음악 전문 유튜브 채널 ‘울산MBC 뮤직’을 통해 비가 MBC 음악 방송인 ‘음악캠프’, ‘쇼! 음악중심’ 등에 출연했던 과거 영상을 계속 업로드하고 있다.

지역 방송사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유행 따라잡기’에 나서는 것은 이번 ‘1일 1깡’ 열풍이 처음은 아니다. 유튜브가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후반 이후 각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자사 영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지역 방송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TV를 볼 때 서울 ‘본사격’ 채널 프로그램이 나올 시간대 지역 방송사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편성되면 많은 실망감을 드러내는 시청자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게시하는 지역 방송사의 유튜브 채널에 관심도가 높을 리가 만무했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1일1깡' 관련 콘텐츠.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1일1깡' 관련 콘텐츠. 청주 KBS의 콘텐츠도 인기 콘텐츠다. 

유튜브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만든 지역 방송사 유튜브 채널들이 점차 관심에서 사라지자 지역 방송사들은 어떻게든 유튜브 채널 관심도를 늘릴 수 있는 콘텐츠 확보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유튜브 콘텐츠에 큰 제작비를 투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각 지역 KBS와 MBC 방송사들은 민영 방송사와 달리 서울 본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방영분을 저작권이나 콘텐츠 사용료 걱정 없이 올릴 수 있다는 ‘네트워크’ 특성을 활용했다.

여수MBC가 적극적으로 음악 전문 유튜브 채널 ‘여수MBC Music+(Kpop&Trot)’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지역MBC 방송사들이 연합해 제작하는 공개 트로트 음악방송 ‘MBC가요베스트’를 비롯, MBC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방송된 음악 프로그램 클립을 계속적으로 올린 결과 2020년 5월 현재 구독자 32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히트한 선례도 다른 방송사로 하여금 경쟁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큰 기대를 하게 했다.

이미 여수MBC라는 선례가 생긴 MBC 지역사에서 경쟁적으로 별도 음악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있으며, KBS 지역국의 경우는 MBC 만큼 별도 음악 전문 채널을 만들고 있지는 않으나 계속 자사 공식 유튜브 채널에 지금 유행하는 가수나 연예인의 과거 출연 영상을 올리는 식으로 조회수 올리기에 열중한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유행을 따라잡고,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결과 앞서 언급한 여수MBC를 비롯해 KBS청주 등은 괄목할만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이 성공을 곧바로 지역 방송사 미래가 아직은 밝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KBS청주 ‘케비넷’의 ‘1일 1깡’ 영상은 모두 KBS청주가 자체 제작한 영상이 아니라 서울 KBS 본사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KBS 본사와의 협의 하에 탄생할 수 있는 영상들이었다. 기타 지역 방송사들이 ‘1일 1깡’을 말하며 올린 영상들 모두 마찬가지다. ‘1일 1깡’ 외에도 지역 방송사들이 각사 자체 유튜브 채널이나 별도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영상 상당수가 마찬가지다. 설령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과 ‘내일은 미스터트롯’ 열풍 등 서울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부랴부랴 과거 방송분을 뒤져 후다닥 올리는 식이다. 지역 방송사 유튜브 채널들의 중심에는 역설적으로 ‘지역’이 없는 것이다.

KBS청주에서 ‘1일 1깡’을 강조하지만 그 영상들은 딱히 청주를 기반으로 한 방송사 활동과 상관이 없다. 다른 지역 방송사 공식 유튜브 채널들도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 예술 활동과는 큰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저 지금 당장 조회수를 올리고 구독자수를 늘려 점차 어려워지는 미디어 환경에서 생존하고 싶다는 욕구만이 계속 발견될 따름이다. 철저히 유행에만 편승하는 흐름은 지역 방송의 장기적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인가.

물론 지역 방송사들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모든 자원이 서울에 쏠린 한국은 미디어 환경 역시 서울에 집중돼 있다. 방송 광고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역 방송사들이 받는 광고 수주액도 계속 큰 폭으로 줄고 있다. 그러나 ‘공동의 생존을 목표’로 하는 대신 철저히 사측 입장을 내세우며 콘텐츠 기획 개발 대신 ‘싼 맛’에 인력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얼마나 지역 방송사 생존에 도움이 될까?

최근 1~2년 사이 지역 방송사 노동 행태에 대한 지적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진정이 인용돼 주목 받은, 1990년대부터 계속된 채용 성차별 문제를 제기한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를 비롯해 6년 간 메인뉴스 앵커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작가, 기획, PD 업무까지 수행했지만 정작 퇴사할 때가 돼서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현실을 폭로한 TJB 김도희 前 전 아나운서, 날이 갈수록 고용 형태가 사측에 유리한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한 언론노조 대구MBC지부 다온분회, 그리고 사측의 폭압적 행태에 죽음으로 항거한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까지. 지역 방송사 노동 현실은 이미 처참하다는 폭로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자사 인력을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방송사는 과연 얼마나 프로그램을 진정성 있게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을까. KBS, MBC 같은 공영방송의 지역방송조차 공영성과 크게 상관없는 유행에만 의존한 채 유튜브 인기와 광고수익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한국 방송 현실 그 자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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