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이후 정치 보도의 키워드는 ‘김종인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다. 언론에선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할지, 찬·반 의원이 각각 누군지, 미래통합당 결정 과정과 이에 대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김종인)의 반응 등을 스포츠 경기처럼 전달하는데 그쳤다. 선거 운동기간, 어떤 후보가 앞서는지 전하던 경마 중계식 보도와 다르지 않은 행태다. 

한국 주류가 교체됐다거나 50대까지 보수진영을 외면했다는 사회구조적 분석이 나오는데 숲이 아닌 변두리에 심은 나무에만 치중한 모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종인 비대위’는 현 사태 해결책일 수도 없으며 제대로 검증도 안 된 김종인이란 인물이 블랙홀처럼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는 게 시민들에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온통 ‘김종인 비대위’ 기사

총선 직후 선거 결과와 분석을 다룬 기간을 제외하고,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총 11일간 한겨레와 조선일보 지면을 살폈다. 정치면이나 종합면에서 ‘김종인 비대위’를 톱기사로 배치한 날이 한겨레는 9일(4월20일·21일·22일·23일·24일·25일·29일·30일·5월1일)이었고, 조선일보는 6일(4월23일·25일·27일·29일·30일·5월1일)이었다. ‘김종인 비대위’ 보도는 1순위였다. 

“통합당 ‘비상대권’ 김종인 손에…임기도 스스로 정한다”(4월25일 한겨레 종합면톱)
“김종인 비대위, 내일 통합당 전국委 넘을까”(4월27일 조선일보 정치면톱)
“‘회의장 나오지 마라’ 전화…조경태·김태흠 ‘김종인 저지 작전’”(4월29일 조선일보 정치면톱) 
“결국 김종인호? 조기 전당대회?…갈팡질팡 혼돈의 통합당”(4월30일 한겨레 정치면톱)

▲ 4월29일 조선일보 정치면
▲ 4월29일 조선일보 정치면
▲ 4월21일 한겨레 정치면 톱기사
▲ 4월21일 한겨레 정치면 톱기사

 

이처럼 대부분 통합당과 김종인의 핑퐁게임을 기록한 기사다. 대표로 두 신문을 모니터링했지만 다른 매체들 보도 내용도 비슷했다. 이는 김종인에 대한 검증과 분석이 부족한 상태로 언론이 김종인을 과대평가한 탓도 있고, 근본적으론 정치권 이슈를 따라가는 데 바쁜 정치 보도 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김종인식 해법, 새 시대 리더십인가

주목할 보도는 조선일보가 지난달 25일 1면과 정치면에 보도한 김종인 인터뷰다. 김종인은 ‘지난 대선 후보들을 배제하고, 40대 경제전문가를 차기 주자로 내세우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종인으로선 현 정부가 경제로 실패할 것이란 예측과 당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섞어 내놓았을 방안이지만 이 역시 낡은 관점일 수밖에 없다. 보수진영에선 그나마 낫다는 김종인 역시 새 시대를 설계할 인물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진=노컷뉴스
▲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진=노컷뉴스

 

보수진영의 화수분이었던 ‘반공주의’와 ‘경제성장’ 담론은 통하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안보보수’와 ‘시장보수’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고 최근 10년간 민생 이슈가 전국단위 선거 중심에 놓인 만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다른 말로 ‘박정희식 리더십’이 더는 21세기 시대정신일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종인이 던진 ‘40대 경제전문가’는 박정희를 떠올린다. 박정희는 만 43세에 쿠데타로 권력을 점령해 장기독재로 경제를 살린 인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동아일보를 보면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동아시론’ 칼럼에서 통합당 실패를 진단하며 “서민적 보수와 젊은 보수의 길을 가야한다”고 조언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온갖 반대에도 1977년에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 정책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제를 채택했다”고 했다. 이 주장은 지난달 20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미 꺼냈던 얘기다. 의도와 관계없이 박정희에서 답을 찾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통합당 안팎에선 당의 외연을 넓히고 세대교체가 절실하다는 진단으로 수렴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현재 국민 눈높이에 맞는 리더를 찾아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통합당과 김종인이 추구하는 리더십 형태가 낡아 회생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따라서 김종인이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다. 해당 진영 화두로 삼거나 정치 보도 메인을 장식하기엔 소모적이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당을 비판 중인 김세연 의원은 ‘자강론’에 비해 김종인 비대위가 낫다면서도 김종인 비대위가 ‘희망고문’이 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아예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하는 것 자체도 실패라고 봤다. ‘40대 경제통’ 제안이 낡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특정분야 전문가)로서 권위주의형 지도자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모델이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산업화시대가 아니라서다. 이제 국민은 ‘기꺼이 따를만한 지도자’를 원한다. ‘리더’라기보단 ‘허브’에 가까워야 한다는 뜻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아는 사람)가 적합한 시대라는 주장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네르바 사건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홍가혜씨 구속사건 등 통합당 계열 정당은 권위주의형 리더십으로 이견을 묵살해왔고, 이들 대통령의 연관검색어는 ‘불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을 강조했다. 본인이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집권 만 3년에 회고적 투표를 넘겼는데도 대통령을 뽑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이미 많은 국민이 전문가이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리더’가 아닌 ‘허브’가 필요하다는 진단의 좋은 예시다. 특정 시점에 하나의 이슈가 사회를 지배하기보단 모두가 제각각 이슈로 떠든다. 이를 서로가 확인하고, 20만이 넘을 때까지 정부도 지켜본다. 정부가 원론적 답변을 내놓더라도 이미 시민들이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때론 위로와 공감도 받는다. 주요 현안을 정부·여당 플랫폼에서 소통하는 반면 통합당은 이 시국에도 다수 시민 관심 밖인 투표 조작설과 김정은 사망설을 의제로 던졌다. 

김종인은 총선 전날인 지난달 14일 “총선이 다가오자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고 있는데 선거 끝나면 폭증할 우려가 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했다. 통합당 다른 후보자들의 막말을 비판했지만 무책임하긴 김종인도 마찬가지였다. 김종인을 ‘구원투수’로 포장하고 그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언론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성찰 없이 김종인 말과 주변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또 경제 살릴 전문가를 찾는 김종인의 주장은 당직에서 물러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 리더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황 전 대표는 박정희를 유산으로 한 박근혜 정부 인물이면서 대표 시절 박정희식 리더십을 실현했다. 한국당의 많은 의원을 삭발시키고, 무리하다는 지적에도 장외투쟁을 이끌었으며, 불법 위험을 감수하며 ‘패스트트랙’을 물리력으로 막게 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을 외쳤고 대통령과 친문, 그 지지자들까지 묶어 독재·패권주의로 몰았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리더십 추구하는 황교안과 김종인

유능한 지도자를 세우고 구성원들이 이를 따라가면 잘될 거라는 ‘박정희식 리더십’을 제시한 김종인은 황교안만큼 낡았다. 김종인이 지난 3월 말 통합당을 맡으며 처음 내건 총선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무려 1956년 대선 때 야당이 내놨던 말이다. 

통합당과 통합당을 보도하는 언론이 차라리 김세연 의원이 말한 것처럼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어 보수진영 입장이라도 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니면 여당에서 길을 찾는 게 더 나은 방법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단지 한 인물의 출세나 특정 정당 승리를 넘어, 그 당시 사회의 시대정신을 의미한다. 이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게 알권리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소통·공정을 말한 문 대통령의 당선,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린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리더십 사이 어디쯤 오늘날 시대정신이 있다. 대선 지지율 2위로 올라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모습에도 국민 열망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다. 통합당 만큼이나 정치 보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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