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이채훈(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비상임이사)을 처음 만난 건 약 4년 전이었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관련 기사를 준비하기 전, 그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가 MBC의 역사 교양프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반민특위 편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상파에서도 현대사를 말하기 시작한 의미있는 프로그램이다. 1화인 제주 4·3편 역시 그가 연출했다. 현대사에 무지한 터라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이 방송들을 수없이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를 MBC 시사교양 PD로 기억했다. 

그는 시사문제에 많은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속세에 왈가왈부하지 않고 싶은 눈치였다. 통상 언론인들을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낯선 분위기였다. MB정권 당시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과 공정방송을 주장했던 일이 그땐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MBC의 봄날이 오기 전 회사를 떠났기 때문으로 이해했다. 

그를 다시 우연히 만난 건 재단법인 ‘진실의힘’ 어떤 행사였다. 진실의힘은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모임이다. 그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도 연대해온 것으로 보였다. 묵묵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끊지 않았지만 그가 주로 말한 건 클래식이었다. 사회문제를 직접 말하기보단 클래식을 통해 비유하거나 음악을 통해 피해자들에 공감하는 게 그의 소통방식이었다.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이채훈 지음/ 혜다 펴냄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이채훈 지음/ 혜다 펴냄

 

최근 그가 또 책을 냈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부제는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았다’이다. 한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한 사람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의 글이 다르게 읽힌다”. 이 책은 이채훈이 자신의 관점에서 클래식을 해석해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팟캐스트 ‘이채훈의 킬링클래식’ 애청자라면 더 특별하게 책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은 1600년대 바로크 시대(비발디, 헨델, 바흐)부터 고전주의(1700년대 중반이후)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낭만주의(19세기)의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를 지나 쇼스타코비치, 윤이상 등 현대음악까지 약 400년의 시기의 약 30여명의 음악가를 다루며 작가 자신의 서사를 녹여낸다. 사실 음악을 하려는 많은 이들은 자유를 찾았고, 자유로 가는 길엔 각종 사회현실이란 장벽이 있었다. 그 안에서 음악가들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포착해 설명하기도 한다. 

올해가 베토벤이 태어난지 250년이다. 이에 ‘이채훈의 킬링클래식’에선 베토벤의 곡들을 다 들어보고 있어서, 함께 하는 것도 좋다. 그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부분 역시 모차르트 아버지와의 관계 등을 다루며 비중 있게 할애했다. 

▲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선정해 고른 유튜브 링크가 QR코드를 책 곳곳에 심었다.
▲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선정해 고른 유튜브 링크가 QR코드를 책 곳곳에 심었다.

 

이 책은 들을 수 있다. 음악가와 작품에 대해 글로 소개하고 그 곡을 바로 들을 수 있도록 곳곳에 QR코드를 달아놨다. 책을 읽다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읽으면 유튜브로 연결된다. 마치 미술작품을 보면서 해설을 동시에 듣는 느낌이다. 

같은 곡도 유튜브에 여러 버전이 있을 텐데 그 중에 작가가 왜 그 링크를 선택해 QR코드로 담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한곡씩 듣다 보면 책의 진도는 빨리 나갈 수 없다. 동시에 이를 하나씩 선정한 작가의 성의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아픔도 녹아있다. 

“해고된 직후,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을 경험했다. 나 혼자 힘든 건 괜찮았지만 가족들이 생활고에 직면해야 하는 현실은 견디기 어려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동안 MBC에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는지도 깨달았다. 상처 입고 쓰러졌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지인들이 내밀어 준 도움이 손길이었고, 거기에 음악의 힘도 함께 했다. 

(중략) 음악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해고된 뒤였다. 굶어 죽을 리는 없으니 내가 평생 사랑해 온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나는 작곡도 연주도 할 줄 모르지만, 책을 읽고 쓸 수 있으니 ‘음악사’를 주업으로 삼아보자고 생각했다.”(351~352쪽)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누나, 누나의 유산인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MBC에서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당시의 뒷이야기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출자로 처음 그를 대면했던 내겐 흥미로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차르트를 생각하고 세상에 희망이 모두 사라져도 모차르트가 있기에 세상은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는 그는 모차르트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의 선곡과 해석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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