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숨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만 13년 근무기록을 살펴본 결과 그는 정직원의 2~3배 일하면서도 급여는 근속 1~3년 차 수준에 머물렀다. ‘14년 차’ 팀장급 PD였던 그가 퇴사 직전까지 받은 인건비는 회당 40만원이었다. PD들은 “업무량부터 인건비까지 이런 식으로 일을 시키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종훈 의원실(민중당)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이 PD 참여 청주방송 프로그램 내역 등을 보면 그가 2011~2017년 맡은 프로그램 평균 개수는 한 해 9.5개였다. 연도별로 ‘4개(2011년)-9개-7개-9개-14개-12개-11개(2017년)’ 순이다. 절반가량은 음악회 등 행사 연출이었지만 같은 시기 고정 편성 프로그램만 2개 넘게 연출했고 동시에 조연출도 2개 이상씩 맡았다.

2011년은 이 PD가 연출 PD로 일을 시작한 해다. 일을 쉰 2010년을 제외하면 2004~2009년까진 조연출을 주로 맡았다. 조연출일 때도 고정 주간 프로그램에 1~2개씩 참여하면서 ‘박달가요제’, ‘청주 직지 가요제’ 등 각종 행사도 여러 개 맡았다. 그는 2004년 5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듬해 10개, 7개(2006), 10개(2007) 등으로 프로그램 수를 늘렸다.

▲[표2] 2015~2017년 이재학 PD가 참여한 프로그램 목록. 청주방송에서 일한 13년 중 퇴사 직전 3년치만 정리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표2] 2015~2017년 이재학 PD가 참여한 프로그램 목록. 청주방송에서 일한 13년 중 퇴사 직전 3년치만 정리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 PD 연출 내역을 본 팀장급 PD 5명은 “말이 안 되는 기록”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출·조연출 구분을 막론하고 프로그램을 2개 넘게 맡는 경우는 드물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 1회 60분’ 편성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는 기획, 사전작업, 촬영, 편집, 각종 행정처리 등의 업무도 감당해야 해 다른 프로그램을 맡기 불가능하다.

이 PD는 2016년 6개월씩 주 1회 방영되는 50분 길이의 여행 교양 프로그램 ‘아름다운 충북’을 연출했다. 2주에 한 번 녹화해 매주 방영하는 음악프로그램 ‘쇼 뮤직파워’ 연출도 병행했다. 이와 동시에 3개 프로그램 조연출을 맡았다. 이 업무 구조는 2017년에도 똑같이 이어졌다.

한 지역방송사 PD A씨는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이 PD 업무량은 정규직 PD의 2배 정도”라고 밝혔다. 14년 차 독립PD B씨도 “이렇게 일하는 프리랜서 PD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B씨는 “원칙적으로 프리랜서라면 특정 프로그램 연출만 계약한다. 우연히 회사가 제안해 응하면 잠깐 2개를 할 순 있지만 회사 지시대로 다 맡는 경우는 없다”며 “이 PD는 정규직처럼, 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 노동 강도는 프리랜서 PD인 나도 믿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이 PD의 과중한 노동은 주 단위로 보면 더 눈에 띈다. 아래(표1)는 이 PD가 남긴 방송 구성안과 촬영 일정표, 그의 동료 직원들 진술을 종합한 내용이다. 5개 프로그램을 병행한 2016년 상반기 그는 1주일에 6~7일을 일했고 야근도 잦았다.

[표1] 2016년 이재학 PD 업무내용을 1주 단위로 재구성한 표. 2016년 방송 구성안, 대본, 촬영 일정표 등과 동료들 진술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표1] 2016년 이재학 PD 업무내용을 1주 단위로 재구성한 표.

 

일요일엔 ‘아름다운 충북’ 1박2일 야외 촬영 일정이 시작된다. 오전 7시 제작진들이 회사에 모여 촬영지로 이동한 후 촬영을 진행하고 월요일 저녁 6시경 회사로 돌아온다. 이 PD는 정리를 하다가 매일 아침 15분씩 방영되는 전문가 대담 프로그램 ‘청풍논객’ 촬영본을 편집한다. 자정 무렵 퇴근할 때가 잦았다.

화요일엔 매주 토요일 방영되는 ‘TV닥터 건강클리닉’(50분 편성) 녹화를 2시간가량 하고, 6~7시간 동안 청풍논객 녹화와 편집, 아름다운 충북 가편집을 한다. 동시에 격주 녹화되는 ‘쇼 뮤직파워’ 준비 회의와 섭외도 진행한다.

수요일엔 아름다운 충북 가편집 마무리와 다음 촬영 준비 회의에만 7~8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청풍논객 편집도 1~2시간 진행한다. 목요일, 금요일에도 각종 프로그램 준비·촬영·편집이 뒤섞여 진행된다. 서류 기안, 지자체 공문 발송, 정산 등 행정업무도 같이 챙긴다.

토요일에 ‘쇼 뮤직파워’ 야외 촬영이 잡히면 그 주는 쉬지 못한다. 오전 7시부터 촬영을 준비해 오후 4시께 녹화가 끝난다. 이 PD는 직후 일요일 ‘아름다운 충북’ 1박2일 일정을 위해 장비를 챙기거나 종합 편집을 완성해 업로드 후 디스크를 제작한다. 이 작업에도 서너 시간이 걸린다.

출근 시간은 오전 7시로 일정한 편이었다. 편집기가 부족해 편집실을 미리 잡지 않으면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없어 퇴근이 늦어졌다. 2017년 이 PD의 ‘아름다운 충북’ 팀은 제작국 내에서 ‘편집실 깡패’라고 불렸다. 선배 직원에게 비켜달라는 말을 하기 힘드니 이 PD와 조연출 2명은 오전 7시에 회사를 나와 편집실 3칸을 선점했다.

▲팀장급(근속 10여년차) 이상 PD들은 고 이재학 PD가 받은 프로그램 연출료가 터무니 없이 적고,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맡았다고 지적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팀장급(근속 10여년차) 이상 PD들은 고 이재학 PD가 받은 프로그램 연출료가 터무니 없이 적고,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맡았다고 지적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일은 2~3배, 급여는 정규직 절반

이렇게 일해 받은 임금은 ‘정규직 4년 차’보다 적었다. 한 해 수입이 가장 높았던 2016년 4670만원을 벌었고 2017년엔 4090만원을 벌었다. 2016년엔 정규 직원 5년 차 연봉과 비슷했고 2017년엔 정규직 3년 차 연봉과 비슷했다. 같은 경력의 정규직 PD라면 2017년 5900여만원을 받게 된다. 정규직보다 2~3배 일하고 급여는 60% 수준이다.

청주방송 프리랜서 PD 인건비는 외주 PD보다도 적다. 2017년 청주방송이 이 PD에게 입금한 내역을 보면 ‘아름다운 충북’(주1회 60분) 인건비는 회당 40만원이었다. ‘쇼 뮤직파워’(격주 촬영)는 한 달 75만원이 지급됐다. 조연출을 맡은 ‘TV닥터 건강클리닉’(주1회 60분)은 회당 30만원, 청풍논객(매일 주중 20분)은 10만원이 찍혔다.

한 지역방송사 PD C씨는 “프리랜서라도 경력이 10년 넘은 PD는 회당 100만원은 번다. 아무리 못해도 70만원 이상”이라며 “요새는 유튜브 편집만 해도 회당 20~30만원이다. 편집은 조연출에게 맡기지도 않고, 편집PD란 직함도 따로 있다. 20분이라도 10만원 책정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은 “방송사들이 외주제작사에 맡기는 ‘6시 내고향’이나 ‘생생정보통’만 해도 10분짜리 코너에 250~300만원 예산을 쓴다. 연출료는 적어도 80만원 선”이라며 “60분짜리를 통으로 연출하는데 40만원은 말이 안 된다. 10년차 PD라면 프로그램당 월 3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청주방송의 2002년 및 2017년 호봉표에 근거해 2004~2017년(2년마다 2.8% 기본급 인상) 이 PD의 누적 급여를 추산했다. 이 PD가 2004년 정규직으로 고용됐다면 최저 호봉 ‘4급1호’부터 계산해도 13년간 누적 급여는 5억원을 넘는다. 김종훈 의원실이 방통위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하면 13년간 누적된 이 PD의 실제 인건비는 3억3700만원으로 추정된다.

▲ [그래프1] 청주방송 정규직원 연봉과 이재학 PD 실제 인건비 추정치 연도별 비교. 이재학 PD 인건비는 김종훈 의원실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지급 내역, 이재학 PD가 보유한 입금 내역 및 지출 내역을 종합해 추정했다. 2009년 경우 이 PD가 중도 퇴사해 차이가 크다
▲ [그래프1] 청주방송 정규직원 연봉과 이재학 PD 실제 인건비 추정치 연도별 비교. 이재학 PD 인건비는 김종훈 의원실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지급 내역, 이재학 PD가 보유한 입금 내역 및 지출 내역을 종합해 추정했다. 2009년 경우 이 PD가 중도 퇴사해 차이가 크다

 

▲2017년 청주방송이 이재학 PD에 입금한 인건비 기록. 위에서 첫번째, 두번째 사진은 주 1회 60분 편성된 '아름다운 충북' 연출PD 인건비로 40만원이 입금된 내역이다. 마지막(세번째)은 2017년 맡았던 각종 프로그램 인건비 지급조서 중 일부 갈무리.
▲2017년 청주방송이 이재학 PD에 입금한 인건비 기록. 위에서 첫번째, 두번째 사진은 주 1회 60분 편성된 '아름다운 충북' 연출PD 인건비로 40만원이 입금된 내역이다. 마지막은 2017년 맡았던 각종 프로그램 인건비 지급조서 중 일부 갈무리. 왼쪽에서 5번째 칸이 세전 인건비다. 

PD들 입 모아 “착취다”

이 PD는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프로그램 하나만 해선 먹고 살 수 없으니 자연히 일을 많이 했다”며 “내가 청주방송에서 가장 프로그램을 많이 뛰었을 거고, 프리랜서 중에 수입도 가장 높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스태프들에게 매번 점심을 샀다. 이 PD와 1년 넘게 일했던 D씨는 “본인도 프리랜서면서 수입이 턱없이 적은 자기 식구들 챙긴다고 자기 돈으로 항상 점심을 샀다”고 말했다.

PD들은 이 상황을 ‘착취’라고 말했다. 독립PD B씨는 “외주제작사 PD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액수를 이 PD에게 주고 직원처럼 부린 것”이라며 “지역방송사 사정이 열악하다는 건 들어봤지만 청주방송 경우는 도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방송사 PD C씨도 “100원짜리 일거리 3개를 3명에게 주면 300원이 드는데 1명에게 몰아 150~200원을 쓴 셈”이라며 “막말로 싸게 후려치는 구조에서 희생을 당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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