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가면서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다. 언론에서 일해보면 언론개혁을 잘할까?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은데 검찰개혁이 해묵은 과제이듯, 대표자와 그 대표를 선출한 유권자의 열망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21대 총선에서도 ‘언론개혁’을 말한 후보들이 있었다. 이들이 언론개혁을 할 수 있을지, 더 근본적으로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개혁은 민주화 이후 꾸준히 나온 과제다. 문민정부 시기 언론이 또 하나의 권력으로 성장했다며 이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고, 국민의 정부 들어 대대적인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참여정부 당시 과반을 얻은 여당에선 언론개혁법안을 제안했다. 언론개혁 필요성이 여전히 제기되는 걸 보면 당시에 성공하지 못했거나 영원한 과제란 뜻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언론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야당인 한나라당에 ‘국회 언론발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신문법 제정, 방송법 개정, 언론피해구제법 제정 등 언론개혁법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반대했고, 여당에선 보수진영 반발과 위헌론을 이유로 신문사 소유분산 문제를 배제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런 여당을 향해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진정 ‘언론개혁’이 필요한가

당시 시민사회계는 조중동 등 족벌신문 일부가 신문시장을 과점한 상황에서 다양한 신문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론다양성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언론개혁의 목적은 하나의 목소리만 용인하던 군부독재시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보수신문들 반발의 주요 논리는 언론개혁이 곧 ‘상대편 죽이기’라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언론개혁안을 ‘언론장악법’이라며 반대했다. 보수정당의 언론개혁 주장에도 명분이 실리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이 2000년 발의한 ‘언론발전위원회 구성결의안’에는 언론인·시민단체·정치인 참여방안이 있지만 2004년 여당이 언론개혁을 주장하자 언론인·시민단체 참여를 반대했다. 정치권의 언론개혁 주장이 상대진영 언론을 개혁하자는 메시지로 오해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개혁 시도는 두 가지 면에서 실패했다. 언론개혁 원안 그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언론개혁이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대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후 언론개혁은 ‘상대 스피커 공격’ 정도로 그 의미가 축소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고 현 정부 들어서도 언론개혁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문제로 통용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여당이 날치기로 미디어법을 통과한 것도 정치권이 말하는 언론개혁이 얼마나 사회적 합의나 명분이 없는지 보여준다. 이젠 언론개혁의 방향이 과연 타당한지, 성찰조차 사라졌다. 

▲ 2009년 7월22일 미디어 관련법을 통과하는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노컷뉴스
▲ 2009년 7월22일 미디어 관련법을 통과하는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노컷뉴스

 

정파성 확인된 언론인의 정계 진출 

이번 총선에서 언론개혁을 강하게 주장한 곳은 여당의 위성정당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이다.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오보방지법 도입 △언론중재위원회 폐지, 언론소비자보호원 신설 △종편 막말 방송 규제 강화 등 4가지를 공약했다. 왜곡보도가 판치는 혼탁한 언론을 바로잡자는 취지지만 현 권력에 반대하는 언론을 응징하겠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언론개혁을 외친 열린민주당 후보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청와대에서 물러나 민주당 공천을 희망했지만 결국 좌절되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스스로 이를 번복하며 “언론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마음”과 “언론과 권력의 관계 재정립”이란 이유를 댔다. 

한겨레 기자 시절 썼던 최서원(최순실) 관련 기사는 청와대로 가는 발판이 됐고, 대변인 지위를 이용해 사익추구를 이어가는데 ‘언론개혁’이 명분으로 사용됐다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론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며 내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이미 열린우리당 시절 당내에서 검토하다가 폐기한 정책이다. 

‘언론개혁’은 언론의 공적 역할을 언론인 개인이 편취 할 때 올 비난을 피하는 방패막이 되기도 했다.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이 더불어시민당으로 가면서 역시 ‘언론개혁’을 말했다. 그로 인해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했던 KBS가 아니라 민주당 정권을 바랐던 KBS가 됐다는 비난도 나온다.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는 민주당 정권의 피해자 입장으로 야당에 자리를 잡았다. 조수진 전 동아일보 기자는 스스로 ‘현 정권 공격수’를 자처했다. 

▲ 언론인 출신 정치인은 자신의 언론활동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정치권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인지도와 정파성을 이용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번 총선 결과 국회에 입성할 배현진 당선인(위)과 고민정 당선인. 사진=각 당선인 페이스북
▲ 언론인 출신 정치인은 자신의 언론활동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한다. 동시에 정치권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인지도와 그들이 보인 정파성을 이용하는 효과가 있다. 이번 총선 결과 국회에 입성할 배현진 당선인(위)과 고민정 당선인. 사진=각 당선인 페이스북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계 진출’이라는 행위 자체로 공영언론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신뢰를 상당히 무너뜨릴 수 있는데 이걸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언론개혁이 무엇인지 그 선택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언론인 시절 성과를 정치권에서 보상받는 식의 정계 진출은 양쪽 다 망가뜨릴 수밖에 없다. 

언론개혁 의미 달라져야 

이런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언론개혁 주장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정파성에 따라 속 시원한 목소리 내는 언론을 ‘해장국 언론’이라며 “해장국 언론으론 언론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유시장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언론개혁은 비민주적인 정책이다. 사회는 점차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산업화(통합당)vs민주화(민주당)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균열을 국회 의석에 반영하길 원하고, 더불어시민당의 플랫폼정당화는 이를 일부 입증한다. 선거법 개정 취지 역시 다양성을 보장하자는 뜻이었다. 언론개혁만 반대로 가고 있다. 

▲ 미디어 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미디어 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더구나 매체가 다양해지며 어떤 올드미디어도 패권을 잡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특정매체의 영향력을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시도는 정치권으로서도 역풍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보다 중요한 건 왜곡·허위보도를 언론 상호비평으로 바로잡고, 더 다양한 관점의 보도로 편파보도의 부작용을 희석하는 일이다. 

문제는 주요 방송·신문 출신 언론인들이 이런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주류매체 특성상 이 분야에 전문성도 없어보인다는 점이다. 1인 미디어나 지역언론 지원법률은 공약으로만 머물고 있고, 미래세대를 위한 미디어교육지원법 역시 논의 속도가 미디어환경 변화속도보다 느리다. 언론개혁의 의미부터 변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