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태규씨(당시 25세) 주변 청년들은 건설현장을 일상적으로 찾았다. 태규씨는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하청업체에 다녔다. 업체와 계약이 만료되자 다른 업체에 원서를 넣은 사이 일할 곳이 필요했다. 그는 지난해 4월8일 형을 따라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건설현장에 나섰다. 출근 3일째인 10일 5층 높이에서 문이 열려 있는 화물용 승강기에서 떨어졌다. 가족은 그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당일 경찰과 최초 보도는 ‘단순 실족사’라고 전했다. 하지만 태규씨 가족은 직접 캐물어가며 알게 됐다. 회사는 안전모와 안전화, 안전벨트를 지급하지 않았다. 태규씨는 자신의 운동화와 공사장에 굴러다니던 헬멧을 썼다. 사고 난 승강기는 안전승인 받지 않은 미준공 상태였다. 화물용승강기안전규칙상 화물용 승강기는 사람 1명만 탈 수 있지만 사고 당시 인력업체 소속 1명 이상이 함께 탔고, 규정을 위반해 문이 열린 채 운행됐다. 

가족이 태규씨의 죽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수사기관과 싸움이 됐다. 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30)는 그의 1주기가 다가오는 9일 미디어오늘과 전화 인터뷰에서 “원청을 비롯한 진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진실이 밝혀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현씨의 SNS 프로필 사진은 “김태규 청년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이다.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수원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사진=김도현씨 제공
▲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수원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사진=김도현씨 제공

발주처‧시공사 대표 불기소… ‘동생 죽음 아는 과정은 수사‧사법기관과 싸움’

도현씨는 “사고 직후부터 이상했다”고 했다. “인력업체 관리자는 태규 형에게 전화해서 태규 얘기는 안 하고, 태규 방에서 ‘건설안전 필증’ 가져오란 얘기부터 했어요. 죽은 지 40분이 지났는데.” 고용노동부 조사가 시작되자 승강기는 사고 당시와 달리 1층에 내려져 있었고 추락 흔적은 사라졌다. 도현씨는 이후 인력업체가 동생에게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고, 안전교육 확인서와 계약서에 대신 서명한 사실을 알았다.

유족의 요구 끝에 재수사가 진행됐다. 경찰은 그 결과 지난해 11월 은하종합건설 법인과 이사, 승강기제조사 대표 등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의견 송치했다. 발주처인 반도체기업 ACN과 시공사인 은하종합건설 대표이사는 제외했다. 검찰은 그 가운데서도 이사를 불기소하고, 현장 소장과 차장 등을 불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 유족 측은 항고했고 검찰은 다시 기각했다. 이들은 재정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지난 1일 기소된 4인의 첫 재판이 열렸다.

도현씨는 사실 동생 죽음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자명하다고 했다. “건설업체도 일부만 기소됐지만, 이 업체가 안전관리 책임을 질 주체의 전부도 아니에요. ACN에서 주문한 건설현장에서 ACN 소유 승강기에서 일하다 사고가 났고, 인력업체는 가짜로 계약서와 안전교육 확인서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꼭대기 원청이 노동자 안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고 김태규씨 생전 모습. 사진=김도현씨 제공
▲고 김태규씨 생전 모습. 사진=김도현씨 제공
▲김도현씨가 지난해 10월16일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와 위험의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노동자 생명안전제도 개악 분쇄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도현씨가 지난해 10월16일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와 위험의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노동자 생명안전제도 개악 분쇄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용균법엔 용균이도 태규도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말하는 이유

그가 동생 죽음의 규명 요구에 그치지 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다. 도현씨는 지난해부터 산재피해가족모임 ‘다시는’에서 산재발생 사업장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안전관리 공무원을 처벌하도록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을 하고 있다. 현행법은 안전보건 규정 위반행위만 처벌하도록 해 처벌이 미미하고, 형사상 책임도 현장 실무자 선에 그친다. 

지난 1일엔 경기 지역에 출마한 총선 후보들을 비롯해 지역구 정치인에게 사건 진상규명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뜻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200명 중 20명이 답변서를 보냈다. 그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이 가장 선명한 답변을 했다고 했다. 이 의원실은 “중대재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교육 강화와 안전관리 주체를 강력 처벌하는 법안들의 제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사위 위원을 통해 고 김태규님 사건 절차와 결과에 적극 문제 제기하겠다고 했다.

그는 “산재 피해를 겪으면서 어떻게 헤쳐갈지 방법을 몰랐다. 그 때 용균님 어머니께 도움과 위로를 굉장히 많이 받았고, 지금도 유가족과의 자리가 가장 편한 자리다. 우리만 이해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최근에는 마사회 비리를 고발하고 숨진 고 문중원 기수의 가족과 만났다.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가 지난해 5월28일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가 끝난 뒤 동생에게 써 붙인 메시지. 사진=김예리 기자
▲고 김태규씨 누나 도현씨가 지난해 5월28일 구의역 김군 3주기·김태규 건설노동자 49재 추모제가 끝난 뒤 동생에게 써 붙인 메시지. 사진=김예리 기자

태규씨가 숨진 현장은 작업중지가 풀려 공사가 재개됐다. 완공 건물은 최근 ACN 본사가 됐다. ACN는 지난해 경기도가 수여하는 유망중소기업상을 받았다. 그는 “ACN의 본사가 될 자리였다면, 엘리베이터 소유주인 원청의 책임은 더 커진다”며 “법적 검토를 해보려고 한다. 다시 새 싸움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도현씨와 ‘다시는’, 지역 시민노동단체가 꾸린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님 산재사망 대책회의’는 고인의 기일을 포함한 추모주간을 맞아 사망현장 다이인(die-in) 퍼포먼스와 장지 참배, 수원검찰청 규탄대회 등을 진행했다. 오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엔 수원역 앞에서 경기지역 살인기업 선정식과 1주기 추모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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