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국사회를 강타한지도 한 달 이상 지났다. 실내 밀집한 공간일수록 바이러스가 잘 퍼지는 전염병 특성은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렵게 만들었다. 야외 활동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많은 문화·예술 활동이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뮤지컬이나 연극, 콘서트를 비롯한 공연 프로그램은 줄줄이 중단된 지 오래다. 대다수 미술 전시도 연기되고 있으며 3월 이후 개봉이 잡혀 있던 작품들은 최대한 5월 이후로 미루거나 무기한으로 개봉일을 연기한 상황이다.

극도로 위축된 문화·예술 환경은 영화관으로 하여금 이전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을 만들게 했다. 가장 대표적 광경은 특정 영화에 관이 쏠리는 독과점 현상이 큰 폭으로 준 것이다. 3월27일 금요일 기준 각 멀티플렉스를 대표하는 상영관 4곳(CGV 용산아이파크몰,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메가박스 코엑스, 씨네스테이션Q 신도림)의 경우 같은 주 개봉한 영화(‘주디’, ‘사랑하고 있습니까’, ‘온다’ 등) 에 상대적으로 많은 상영관을 배정했지만 소위 ‘마을버스 시간표’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해 상영회차를 압도적으로 몰아주는 모습은 아니었다. 개봉작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작품은 4회차 내외, 그렇지 않은 작품은 2~3회차 내외로 상영회차를 편성하는 모습이 감지됐다.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미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2010년대 이후 극장을 소유한 대형 배급사의 영화, 또는 극장을 소유하지 않았더라도 흥행이 될 것으로 보이는 영화들에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밀어주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한국에 급속도로 확산되기 전에도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아닌 한 대다수 극장들이 관객이 많이 찾는 대형 블록버스터나 헐리우드 대작을 주로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지만, 단관 극장들이 서서히 2~3개 상영관을 설치한 멀티플렉스로 바뀌며 ‘몰아주기’ 현상은 심화됐다.

본디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종전의 단관 극장과 달리 극장 한 곳에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홍보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상영관이 늘어난다는 것. 이와 관련해 극장이나 영화 배급사 입장에서는 ‘상영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늘어난다는 점보다 ‘극장 하나에서 상영할 수 있는 총 회차의 수’가 늘어난다는 점이 중요했다. 종전 단관 극장 시절에는 아무리 많은 영화를 틀어도 5~6회만 상영할 수 있었지만 멀티플렉스에서는 극장 하나에 족히 10~20회 이상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 CGV 영화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 CGV 영화관 홈페이지 갈무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단관 극장들이 속속 멀티플렉스로 바뀌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영회차는 결코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았다. 흥행이 될 것으로 보이는 영화에는 최대한 많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영화는 제대로 관을 배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2000년대 초반 드러났다.

소위 ‘와라나고’ 프로젝트라고 알려진, 개봉 1~2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의 안정적이며 지속적 개봉을 촉구했던 관객 운동이 일어난 것은 무려 2001년이었다. 이 관객 운동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관객이 스스로 영화 감상 권리를 요구한 운동이자 영화계에 만연한 상영관 배분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는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전부터 상영관의 영화 배분은 불균등했지만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MK픽쳐스, 싸이더스, 시네마서비스를 비롯한 1990년대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기획영화 프로듀서들이 세운 영화 제작·투자·배급사가 본격적으로 몰락하고, CJ엔터테인먼트나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 계열 영화사가 입지를 단단하게 굳히며 상황은 더욱 심화됐다.

특히 2013년과 2014년은 절정에 달했다. 2013년 개봉한 마블 영화 ‘아이언맨 3’, 2014년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개봉한 ‘명량’이 개봉할 때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간표에는 단 2~3개 영화 밖에 없었다. 대다수 상영회차를 ‘아이언맨 3’ 또는 ‘명량’에 배치하고, 이들 작품을 보기 어려운 영유아나 아동 관객을 위한 작품 하나, 그리고 운 나쁘게 이 두 작품과 동시기 개봉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작품 하나 정도가 소수의 상영회차를 배치받았을 따름이었다.

공정거래위가 조치에 나서자 멀티플렉스는 이전보다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크게 관객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행위는 계속됐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영화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고, 대형 영화사를 통해 배급을 기다리던 작품들이 속속 개봉을 무기한으로 연기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극장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물론, 새롭게 개봉하는 작품 자체도 줄었다. 개봉을 강행하는 영화는 평상시 관객이나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기 어려운 독립·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상당수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지난 2월 말부터 3월까지 개봉한 국내외의 독립·예술영화들은 이전보다 많은 상영관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CGV아트하우스, 콘텐츠판다(NEW) 같이 대형 영화사가 배급하거나 직접 관여한 독립영화가 아니었는데도 첫 주에 확보한 상영관은 중규모 상업영화와 비슷한 수준인 241개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관객수도 25일 2만 명을 돌파하며 독립영화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관객이 영화를 감상했다.

몇 차례 연기 끝에 25일 겨우 개봉한 정승오 감독의 독립영화 ‘이장’도 첫 주 74개관을 확보했다. 일본에서 인기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결코 많은 편이 아니었던 일본 영화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의 26일 개봉 신작 ‘온다’는 전작들보다 3배나 많은 규모인 163개관을 확보하게 됐다. 많은 영화인들이 오랜 시간 요구한 ‘상영관 배분의 공정성’은 영화관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시기에 실현된 셈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코로나19 유행은 작은 규모 영화들에 숨통만 틔워준 것은 아니다. 영화관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변화는 흥행에 성공했던 구작들의 ‘재개봉’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관객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자 이미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들을 다시 한 번 극장에서 만나자는 컨셉으로 각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경쟁적으로 구작 재개봉에 나서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 CGV는 ‘인생영화’, 롯데시네마는 ‘로씨네Pick’, 메가박스는 ‘명작 리플레이’ 같은 이름을 붙이면서 일종의 ‘큐레이션 상영’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본질은 결국 이미 큰 폭으로 감소한 극장 수입을 어떻게든 늘리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코로나19 장기화가 확실하자 각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더욱 경쟁적으로 구작 재개봉을 늘리고 코로나19 국면에서 개봉을 결정한 작품의 상영을 줄이고 있다.

코로나19는 불평등한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영화관이 확실한 수입원일 때는 온갖 무리수로 중소규모 영화, 독립·예술영화를 폭력적으로 배제하면서 블록버스터를 배치했지만, 코로나19로 관객수가 감소하고 블록버스터도 극장에서 사라지자 이제야 선심 쓰듯 작은 영화들에게 상영관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작 재개봉을 상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며 다시 작은 영화를 극장에서 몰아내려는 기미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다시 사회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멀티플렉스는 코로나19 국면의 모습을 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영화관들이 보인 모습은 영화인들은 물론 전염병 감염 공포를 뚫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결코 잊기 어려운 순간이 될 것이다. 이 순간을 그저 ‘한 때의 해프닝’으로 넘기는 대신 앞으로 필요한 영화계의 새 규칙과 제도를 정하는 하나의 초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