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대표 이두영·이성덕)이 2017년 고 이재학 PD의 법률상 근로자 지위(노동자성)를 파악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를 분석한 노무법인이 이 PD에 대해 “회사에 종속된 근로자로 볼 여지가 매우 높다”고 권고한 것이다. 청주방송은 이 PD와 소송 당시 법원에서 관련 자료 제출 명령을 받았으나 ‘자료가 없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노무법인 유앤은 2017년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 진단 및 인사규정 정비 컨설팅’ 결과를 청주방송에 최종 보고하며 이재학 PD에 대해 “순수한 프리랜서로 보기 어렵고 청주방송에 종속된 근로자로 판단될 여지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다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PD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2017년 청주방송에 보고된 ‘비정규직 실태 진단 및 인사규정 정비’ 컨설팅 결과 자료 중 이재학 PD 관련 내용 일부를 합친 것. 이재학 PD는 'VJ(Video Journalist)'로 분류됐다. 근로자로 판단될 여지가 높은 '일부 VJ'가 이재학 PD다. 또 이 PD는 노동법 위반 리스크가 높은 순서로 프리랜서를 배열했을 때 총 23명 중 5순위를 차지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2017년 청주방송에 보고된 ‘비정규직 실태 진단 및 인사규정 정비’ 컨설팅 결과 자료 중 이재학 PD 관련 내용 일부를 합친 것. 이재학 PD는 'VJ(Video Journalist)'로 분류됐다. 근로자로 판단될 여지가 높은 '일부 VJ'가 이재학 PD다. 또 이 PD는 노동법 위반 리스크가 높은 순서로 프리랜서를 배열했을 때 총 23명 중 5순위를 차지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 PD는 노동자성 인정 수준(노동법 위반 리스크) 평가에서도 상위권이었다. 전체 프리랜서 23명 가운데 5번째로 순위가 높았다. 앞선 순위의 4명은 모두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분류돼 퇴사한 1명을 제외하곤 정규직 제의를 받았다.

평가만 보면 이재학 PD도 정규직 제의를 받기 충분했다. 정규직 대상이었던 유아무개 작가보다 노동자성 평가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이 PD는 8개 노동자성 판단 기준 중 2개 기준에서 노동자성(법 위반 리스크)이 ‘매우 강함’을, 5개 기준에서 ‘강함’ 판단을 받았다. 유 작가는 1개 기준에서 ‘매우 강함’을, 6개 기준에서 ‘강함’ 판단을 받았다. 이 PD는 당시 근속 10여년 째였고 유 작가는 1년 미만 근무했다.

유앤의 8개 노동자성 기준은 △구속성 △전속성 △대체성 △업무지휘명령 △업무변경권한 △작업도구 조달주체 △보수 성격 △계약서 여부 등이다.

구속성은 업무 내용과 장소 등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를, 전속성은 다른 방송사에서도 일을 하는지 등을 따졌다. 대체성은 제3자가 업무를 대신 맡을 수 있는지를 다뤘다. 보수 성격에선 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회사가 지급 기준을 정하는지 등이 평가됐다.

이 PD는 ‘대체성’만 빼고 모두 노동자성이 강하다고 평가받았다. 어떤 계약서도 쓰지 않고 청주방송에서만 일한 기간이 길어 ‘계약서’과 ‘전속성’에서 ‘매우 강함’ 점수를 받았다.

편집실, 카메라 등 이 PD가 사용한 장비 대부분이 청주방송 소유여서 ‘작업도구 조달주체’에서도 ‘강함’ 진단이 나왔다. 구속성, 업무변경권, 업무지휘명령에서도 ‘근로자로 보일 위험이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시민대책위'가 청주방송 사옥 앞에 걸어놓은 추모 리본. 'CJB 청주방송을 규탄한다' '책임자처벌' 등의 문구가 적혔다. 현재 추모리본은 철거된 상태다. 사진=손가영 기자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시민대책위'가 청주방송 사옥 앞에 걸어놓은 추모 리본. 'CJB 청주방송을 규탄한다' '책임자처벌' 등의 문구가 적혔다. 현재 추모리본은 철거된 상태다. 사진=손가영 기자

 

결과 보고서는 이 PD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중요 증거였지만 법정에 공개되지 않았다. 청주방송은 법원의 제출 명령에 “가지고 있지 않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이 PD는 당시 “노무법인이나 회사가 2년도 안 된 컨설팅 보고서를 폐기할리 없는데 자료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법원은 이를 청주방송에 불리하게 반영하지 않았다. 이 PD는 보고서가 회사 간부들이 공유한 문서였기 때문에 직접 확인할 수 없었고, 법원에 문서 제출 명령을 요청했다.

청주지법은 “제출하지 않았다 해도 원고(이 PD) 근로자성 여부는 법률적 판단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청주지법은 지난 1월22일 이 PD가 부당 해고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2018가단31613)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청주방송은 이와 관련 “(소송 당시) 사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후 (유족 측이 제출을 요청했을 때) 전임 노조위원장이 가지고 있던 걸 찾아서 그대로 드렸다. 회사, 유족, 노조, 시민대책위 등 4자 대표자회의에서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편 결과 보고서 원본 논란은 남아 있다. 컨설팅 결과 보고 때 노무법인이 제출한 책자가 두 종류였다는 증언이 복수의 관계자에게 나와서다. 프레젠테이션(PT)으로 내용이 요약 정리된 책자와 이보다 두꺼운 책자 두 종류가 제출됐고 회사가 이를 보관했다는 내용이다. 회사가 4자 대표자회의 때 제출한 보고서는 프레젠테이션 책자로 알려졌다. 

노무법인 유앤 관계자는 이에 “프레젠테이션이 담긴 책자가 원본이 맞다. 다른 제본 책자는 회사 규정 개정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규정 컨설팅 보고서”라며 “회사에도, (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측에도 이미 설명을 다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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