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로 가고 있는 지금, 대학이 보이지 않는다. 대학은 건물이 아니다. 학생, 교직원뿐 아니라 인근 지역주민까지 사람과 사람의 대화와 교류가 오가는 공간이 대학이라면 2020년 3월. 대학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만 않을 뿐 ‘온라인 비대면 강의’라는 이름으로 대학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공간에서 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 있다.

교육부 권고로 연기된 대학 개강은 각종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한 화상 강의로 대체되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대학 당국, 동영상 제작 및 운영에 서투른 교원들, 입시 학원의 인터넷 강의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학생들까지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고 있다. 한 학기 전체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겨우 두 주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영상 제작에 힘겨워 하는 교원들의 한숨과 화상 강의를 보는 시간보다 더 많은 과제에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의 불만을 낳고 있다. 게다가 실습과 실험처럼 대면 수업이 반드시 필요한 전공 강의는 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막막한 지경이다.

▲ 지난 2월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교내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월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교내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불현듯 닥친 온라인 비대면 강의는 강사들에게 더욱 큰 불안으로 다가온다. 동영상의 제작 지원이 부재하거나 저작권이 어디로 귀속될지 모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대학 강의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강사의 강의들이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강의 등 미디어 테크놀로지 플랫폼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그래서 더욱 저렴한 지식 소매상이 될 것이라는 불안이 그것이다.

몇 년 전 알파고의 등장으로 노동시장 곳곳에서 우려했던 인공지능의 일자리 대체는 이렇게 코앞의 현실이 되었다. 비단 대학 강의 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터넷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이용한 재택근무, 순환근무, 유연근무 등의 ‘긴급조치’는 기업과 기관에 예상치 못했던 업무 분장과 성과 측정의 기회가 되고 있다. 효율성만을 고려할 때, 조직의 경직성과 비대함이 우연한 시기에 드러난 셈이다. 테크놀로지의 장미빛 미래로 그렸던 ’4차 산업혁명’은 정부의 ICT 진흥 정책이나 규제완화로 도래하지 않는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외 상태가 불러온 노동 과정, 투입 산출, 시장 경쟁의 변화는 대학 온라인 강의의 확산과 같이 테크놀로지 효율성 이상의 변수들로 4차 산업혁명의 환상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중이다. 

벌써부터 온라인 강의 시스템이 미래 대학의 모습이라며 대학의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과연 ‘대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학은 지식과 정보의 서비스업이 아니다. 초중등교육을 마친 학생이라면 교실과 강의실 수업이 단지 시청각 정보의 전달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강사의 손글씨와 목소리, 학생들의 몸짓이 보이는 반응, 강의 전후 강사와의 대화뿐이 아니다. 이미 손에 익숙해진 태블릿·스마트폰, 손으로 끄적이는 낙서, 앞자리 학생의 반응까지 모든 감각과 의식이 동시에 작동하고 경험되는 시공간이 바로 강의다. 

오래 전 마르크스는 당대 유물론이 신체의 감각기관을 그저 외부 자극을 신호로 변환하는 경로로만 보았다고 비판했다. 그에게 감각이란 의식과 분리된 유기체의 기능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 사회적 교류, 기술 환경의 변화와 함께 동반되는 감성적 인간 활동, 즉 ‘실천’이었던 것이다. 한 사회의 교육체제와 물리적 환경이 만들어낸 적극적 활동으로서의 강의 출석은 그래서 단순히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청각 정보를 전달하는 화상 강의로 대체될 수 없다. 화상 강의는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교환을 어설프게 흉내낸 모사(simulation)일 뿐이다.

▲ 인공지능. 사진=gettyimagesbank
▲ 인공지능. 사진=gettyimagesbank

준비 없이 닥친 대학의 낯선 개강. 지금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앞세운 혁신 교육을 외치거나 오래된 교육 시스템의 향수에 젖을 때가 아니다. 코로나19로 닥친 예외 상태는 도리어 일률적인 화상강의 ‘권고’가 아니라 지금껏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강의에 실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모든 대학이 오랫동안 외치던 대학의 자율권은 입학정원 확대나 등록금 인상의 자율권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때 새롭고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자유롭게 실험하고 대학이라는 관료제를 반성할 기회를 구성원들과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코로나19 이후의 대학이 살 길이다. 그래서 나는 1학기 강의교재로 내 강의방식 자체를 택했다.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