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방송(대표 이두영·이성덕)이 고 이재학 PD 사망을 둘러싼 진상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가 답보 상태다. 청주방송은 “진상조사위에 사측이 배제됐다”고 이유를 대지만 위원회는 “스스로 참여하지 않고 있으면서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김혜진)는 당초 지난 20일께까지 청주방송의 제출 자료를 확인하고 직원 면담 조사도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청주방송이 자료 제출 요구와 조사 협조 요청을 모두 거부해서다. 이에 따라 23일 열린 3차 회의는 별다른 논의 진척 없이 끝났다.

▲고 이재학 PD 49재가 23일 오전 충주 창용사에서 엄수됐다. 사진은 고 이재학 PD 영정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49재가 23일 오전 충주 창용사에서 엄수됐다. 사진은 고 이재학 PD 영정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태고종 진화스님이 23일 열린 추모 결의대회에서 이재학 PD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49재를 올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태고종 진화스님이 23일 열린 추모 결의대회에서 이재학 PD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49재를 올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진조위는 지난 11일 2차 회의에서 3월 말께 진상조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신속히 추진했다. 진조위는 지금까지 네 차례 넘게 청주방송에 고 이재학 PD 근무 실태 자료를 포함해 직원 명단 및 연락처 등 자료를 제출해라고 공문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료를 받지 못했다. 청주방송은 지난주 공문을 통해 ‘사측 조사위원이 배제된 상황에서 조사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진조위는 청주방송 주장이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진조위 간사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23일 열린 고 이재학 PD 대책위 49재 추모 결의대회에서 “청주방송이 위원을 구성할 의무를 방기하면서 스스로 배제됐다고 주장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진조위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다 됐지만 청주방송이 추천하는 사측 조사위원은 공백 상태다. 할당된 세 명 가운데 두 명만 추천했고 두 위원마저 모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측 위원이었던 최아무개 변호사는 지난 11일 “합의서 내용의 구속력이 막강해 부담스럽다”며 사퇴했다. 이미 지난 2월27일 청주방송, 이재학 PD 유족, 언론노조, 시민사회(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4자 합의서가 체결돼 진조위가 출범했는데도 2주 후 합의서 내용에 다시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퇴한 것이다. 

남은 사측 위원 조아무개 변호사는 결격 사유가 있다. 고 이재학 PD가 억울하다고 남긴 유서엔 ‘회사가 거짓말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PD는 생전 지인들에게 ‘회사 간부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고 나를 돕는 직원을 회유·협박했다’고 토로했다. 조 변호사는 이 PD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청주방송을 대리했다. 진상조사 대상이 조사 주체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 조 변호사도 최근 청주방송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측 추천위원이 모두 사퇴한 상황에서 청주방송은 다른 위원을 추천하지 않고 있다. 청주방송 관계자는 지난 12일 “청주 시내 노무사·변호사에게 물어봤으나 모두 추천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청주방송은 진조위에 ‘4자 대표자 회의를 다시 열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에 따라 진상조사 요구를 이행할지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내달 3일 4자 대표자 회의가 열린다. 윤 변호사는 “회사는 ‘구속력이 강한 합의서에 합의한 만큼 진상규명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같은 얘길 반복하지만 정작 뒤로는 조사 요구에 ‘4자 대표자 회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모순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족 이대로씨(위)와 김영석 언론노조 충북MBC지부장이 23일 이재학 PD 추모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유족 이대로씨(위)와 김영석 언론노조 충북MBC지부장이 23일 이재학 PD 추모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유족, 이두영 회장에 “진상조사 방해 말라”

유족도 청주방송의 비협조를 비판했다. 이 PD의 동생 이대로씨도 이날 결의대회에서 “(청주방송은) 지금 사측은 조사위원도 제대로 선정하지 못해놓고, 그걸 핑계 삼아 파행으로 몰고 가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이두영 회장이 진상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이 회장이 지난 16일 직접 아침 조회를 주관해 직원들에게 ‘유족에게 협조하지 말라’며 재갈을 물리고 협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 16일 “지금 저들(대책위)이 요구하는 건 청주방송 흠결 내는 것밖에 없다”거나 “회사 와해시킨 사람(내부 고발자)은 조직에서 제거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씨는 이 회장이 ‘대책위가 회사와 유족의 만남을 방해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유포하고 있다”며 “직원들은 거기에 또 현혹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청주방송 직원들에게 “진상조사라는 마지막 기회, 저희 형에 대한 미안함과 용서를 구하는 마지막 기회마저 저버린다면 저희도 도와줄 생각이 없다”며 “형은 청주방송 동료들을 위해 혼자 외롭게 싸웠다. 지금부터라도 형이 외롭지 않게, 억울함을 풀고 편히 쉴 수 있게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고 이재학 PD 대책위 주최로 열린 49재 추모 결의대회는 23일 오후 3시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열렸다. 언론노조, 민주노총 충북본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대책위 소속 단체에서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PD 유족 3명도 함께 했다. 청주방송은 집회 시작 후 건물 정문을 폐쇄했다. 

집회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와 태고종 진화스님이 이 PD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49재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고 이재학 PD 대책위 49재 추모 결의대회 끝나고 대회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추모 글귀를 적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대책위 49재 추모 결의대회 끝나고 대회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추모 글귀를 적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조종현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은 “우리는 당신을 차별에 맞서 싸운 방송 노동자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재학 PD와의 황망한 이별과 같은 비극이 없도록 하겠다. 당신의 뜻이, 못다 이룬 꿈이 방송노동자 이재학 이름으로 이뤄지도록, 함께 하는 우리가 약속한다”고 추모했다. 

김영석 언론노조 충북MBC지부장은 “이 문제(비정규직 남용)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언론인들이 했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공정방송 쟁취, 지배구조개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 등의 이름 아래 수없이 투쟁했지만 막상 내부 노동 문제엔 소홀하고 스스로에게 관대했다”며 “치열한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도 말했다. 

49재를 올린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해찬스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다. 억울하다”는 이 PD의 유서 내용을 읊으며 “억울하다는 한마디는 이 땅의 많은 비정규직 가슴 속에 있는 단어”라며 “억울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 고 이재학 PD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같이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PD의 49재는 23일 오전 9시 가족,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충주 창용사에서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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