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올해 대구 MBC에서 일한지 22년째다. 편성국 소속인 그는 자막CG 작업을 한다. 편성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과 외주제작사 프로그램에 자막을 넣는 일이다. 프로그램 작가로부터 ‘자막지’를 받아 자막을 입력하고 영상 편집자에게 넘긴다. 자막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면에 넣은 자막에 수정할 내용은 없는지 확인하고 오타를 걸러내는 작업을 한다. 프로그램 제작이 최종 완료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야간 근무는 하기 일쑤다. 주말에 프로그램이 편성되면 꼬박 주말은 반납해야 한다. A씨는 정규직이 아닌 상시 고용 근로자다.

A씨는 대구 MBC에 처음 입사했을때만 해도 월급을 받았다. 수년 전 월급제는 주급제로 바뀌었다. 주42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2월 대구MBC는 A씨를 포함한 두 사람에 대해 ‘건당 바우처’로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건당 바우처’는 프로그램 단위로 대가를 지급하는 개념이다. 주급 42만원을 받았는데 이젠 프로그램 제작 1건당 책정된 돈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야 한다. 프로그램이 없으면 수입도 줄어들어, 고정 수입이 없어지는 셈이다. 설과 추석 같은 연휴 기간 프로그램 제작이 이뤄지지 않거나 기존 프로그램이 결방되면 고스란히 A씨의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에 따르면 지난 2일 A씨는 편성국장을 찾아 건당 바우처 전환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두 사람이 법인을 만들든, 건당 바우처로 돌리는 것에 합의하든 결정하라고 통보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협의하지 않겠다는 통보다.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는 “사측은 분회 조합원 생계를 볼모로 강제적인 선택지를 주며 칼날을 겨누고 있다. 편성국에서 자막 업무하는 해당 조합원 근속연수는 올해로 22년이다. 22년을 일한 조합원을 바우처로 전환하는 게 사측이 그동안 말해 온 비정규직 처우개선인가”라고 비판했다.

다온분회는 건당 바우처 지급은 비정규직 노조를 교섭 대상으로 보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대구MBC 내부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속 늘어, 노조를 만들었는데 사측은 전혀 교섭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서 A씨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 대구MBC 홈페이지.
▲ 대구MBC 홈페이지.

지난해에도 대구 MBC 비정규직 노동자는 시련을 겪었다. 경영국 정책심의실 소속으로 웹진을 만들고 유튜브 채널을 제작하던 인력 2명이 사실상 퇴사 당했다.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다온분회에 따르면 퇴사한 두 사람은 퇴직금과 야간·휴일, 연차, 주휴 등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임금을 체불했다며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다온분회는 “대구MBC는 노동청 진정 사안만 조용히 체불 임금을 지급할 뿐, 현재 성실히 근무하는 사내 비정규직 문제 개선은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다온분회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비정규직 처우개선 조치를 기다렸으나 그 결과는 고정급을 없애거나(바우처 방식 전환), 법인을 만들어 사장이 돼 일하라는 식이었다”며 “회사가 재난으로, 파업으로 비상 상황일 때마다 방송국 종사자라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해왔다. 그럼에도 대구MBC는 우리에게 건당 바우처 지급과 법인 설립이라는 칼날을 겨누며 더이상 조율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런 회사의 일방적 통보는 서로 간 믿음을 져버리는 일로 다온분회는 분노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온분회는 “사측이 말해왔던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함께 논의할 교섭”을 요구했다.

다온분회는 지난해 1월 결성됐다. 분회를 만들자 대구MBC에 입사한 횟수로 2년 차부터 22년 차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5년 이상 일해왔다. 보도국 영상편집, 보도국 자막CG, 기술국MD 주조실, 편성국 자막CG, 편성국 사무보조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윤미영 분회장은 “노조 결성 이후 회사와 면담을 한번 한 적이 있지만 비정규직 처우개선에는 진전이 없다”고 전했다. 다온분회는 “사측은 이 오랜 기다림에 답을 해야 한다”며 “다시는 우리를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버릴 생각하지 말고 다온분회의 교섭요구에 즉각 응하라”고 요구했다.

미디어오늘은 건당 바우처 지급 문제와 다온분회의 요구에 입장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대구MBC는 답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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