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전 세계 최고의 드라마를 꼽으라면 HBO가 만든 ‘체르노빌’을 꼽고 싶다. 과장하자면 ‘체르노빌’은 21세기 최고의 드라마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1986년 소련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에 대한 사실주의적 장면 하나하나는 연속적인 절망을 선사한다. ‘체르노빌’은 당장 원자력발전소를 중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극적인 연출로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고를 수습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을 담아내며 오직 하나에 집중한다.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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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드라마 '체르노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 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다.

2019년 말, 한국에서도 ‘체르노빌’만큼 의미 있는 영화가 개봉했다. 뉴스타파가 제작한 ‘월성’이다. 영화관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최근 IPTV에 영화가 올라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한 1986년 당시, 경주에 위치한 월성 1호기는 상업 운전 3년 차였다. ‘체르노빌’이 원전과 함께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월성’은 원전과 함께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원전 인근에 위치한 집에 머문 시간이 많을수록, 삼중수소(방사성 물질) 수치는 여지없이 높았다. 

914m. 월성 원전이 설정한 주민과의 최소 안전거리다. 정작 원전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사택은 저 멀리 지었놨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은 정상 세포를 공격해 유전자 고장을 일으킨다. 그렇게 암의 원인이 된다. 원전 인근 1~2km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모두 암으로 죽어갔다. 한 집에서만 세 명이 갑상선 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원전 앞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은 우리 세대에서 끝냈으면 좋겠다.” 영화 속 등장하는 양남면 산나리 주민들의 목표는 하나다. “진실을 알리고 싶다.” 한빛·고리·월성·한울 원전 인근 주민 618명이 제기한 공동소송의 목표도 결국 ‘체르노빌’의 과학자들이 전하고자 했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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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성' 포스터. 

2015년 박근혜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무리하게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을 허가했다. 안전성이 떨어지자 이용률이 떨어졌고, 설비 보강에만 수천억 원이 소요됐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1호기 발전단가(2017년 기준)는 석탄은 물론 LNG(액화천연가스)보다 비쌌다. 더욱이 월성 1호기의 내진 설계는 국내 최저 수준으로 알려졌다. 경주지역은 몇 해 전 대규모 지진을 겪었다. 노후 원전이라 체르노빌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24일 월성 1호기에 대해 영구정지 결정을 내렸다. 2017년 고리 1호기에 이어 두 번째였다.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12월25일자에서 조선일보는 “멀쩡한 월성 1호기를 억지 폐쇄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대표적인 親원전 매체다. 대표적인 親원전론자인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장이 쓴 12월26일자 조선일보 칼럼 제목은 “월성 1호기 폐기, 그 역사적 범죄행위의 공범들”이었다. 영구정지를 범죄행위에 빗댄 것이다.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주장을 해왔던 월성 주민들은 졸지에 범죄행위를 사주한 공모자가 되어버렸다. 

오죽 답답했으면, 영화 속 주민들은 직접 기차를 타고 서울대를 찾아가 주한규 센터장을 만난다. 물론 그들은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다시 돌아선다. 영구정지 결정은 났지만, 월성의 싸움은 현재진행이다. 자유한국당은 월성원전 1호기 영구정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경주에는 조만간 사용후핵연료를 담아낼 핵폐기물 저장소가 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는 “지금 첫 삽 떠도 늦는다”며 건설을 재촉한다. 조선일보는 월성 원전으로부터 300km 떨어져 있다. 영화 속 주민들의 외침을 그대로 조선일보에 돌려준다. “핵폐기물의 도시, 경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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