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5일에 실시될 총선 시계가 이제는 분침 단위로 똑딱이고 있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몇몇 동네 지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에서 준비하는 활동은 없나요?” 한 분의 대답이 뒤통수를 때렸다. “글쎄, 뭐가 달라지겠어? 똑같지 뭐.” 지인들의 “똑같다”는 대답은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었다. 앞으로 80일 정도 남은 시간 동안 벌어질 일이 이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우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이슈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선거법에 따른 정당 광고, 정책 토론 등을 편성할 방송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이 각 정당의 공약을 비교하고 선거전략을 분석하며 여론조사 결과로 판세를 예측할 것이다. 물론 후보 간 비방처럼 네거티브 선거 운동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슈의 생산은 오직 언론과 정치인 간의 대화일 뿐이다. 토론을 방송하고 광고를 게재하며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이들은 오직 언론 뿐이며, 그들에게 질문을 받고 인터뷰에 응하며 때론 항의도 하는 이들 또한 정치인이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각 지역구의 핵심 이슈가 무엇인지, 20대 국회 의정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의 몫도 언론이다. 

▲ 투표. 사진=gettyimagesbank
▲ 투표. 사진=gettyimagesbank

 

사정이 이러하니 당연히 각 지역구의 후보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지역시민이 아니라 중앙과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다. 지역시민들은 그저 유세트럭을 타고 얼굴을 비추며 손이 아플 정도로 악수를 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이번 선거 역시 다르지 않다. 언론과 후보자 간의 대화만이 이슈를 만들 것이다. 어디에서 지역시민의 목소리가 전달될 통로는 없다.

이번 선거가 이전과 똑같은 이유는 선거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이 철저히 대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의 선거구는 약 250개에 달한다. 서울에만 25개 자치구에 49개 선거구가 있다. 그러나 정당간 경쟁은 특정 선거구만을 ‘격전지’로 만들고 지역의 이슈보다 여론조사를 통해 변하는 ‘표심’만을 분석한다. 격전지 시민이란 지역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며 그 배경이 어떤지에 대한 관심보다 특정 정당에 투표할 표의 숫자로 전락한다. 결국 격전지란 여론조사 결과로 특정 후보의 당선을 예측할 수 없는 지역이 아니라 지역시민이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에만 주목하는 기자들의 관전 대상이란 뜻이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지역시민은 여전히 언론과 정당, 후보자만의 대화에서 소외될 것이다. 지역시민이 얻을 수 있는 정당과 후보자의 지역에 대한 입장은 그저 벽보와 선거공보에 적힌 몇 줄의 지역발전 공약 뿐이다. 그것도 지자체가 수행할 사업과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다. ‘서울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와 같은 공약을 위해 최고 입법기관에 종사할 국회의원 후보자가 어떤 법률을 개정하여 노력할지의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250여 곳의 선거구가 있으나 지역의 이슈가 쟁점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령 지역언론이 이슈를 만든다고 해도 중앙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격전지로 구분되지 않는다면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 지난해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일대에서 각 후보 당 대표, 단일후보 당 대표 등이 유세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 유세, 오른쪽 사진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여영국 단일후보 유세. 이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당선됐다.
▲ 지난해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일대에서 각 후보 당 대표, 단일후보 당 대표 등이 유세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 유세, 오른쪽 사진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여영국 단일후보 유세. 이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당선됐다.

 

결국 ‘똑같은 선거’가 달라지려면 시민, 그것도 지역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언론과 정치인만이 대화하는 선거에서 후보자에게 어떤 질문도 할 수 없고 격전지 관전대상이 될 지역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정치에 냉소를 보내거나 언론을 불신하는 시민에게는 4월15일에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행위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언론에 맡기기만 했던 질문할 권리를 되찾는 일이다. 이번 총선은 정당이나 정권에 대한 심판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외되고 침묵하는 시민이 어떤 힘을 보여줄 수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기회다. 다시 문제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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