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서울 구의역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 군이 숨졌다. 그리고 2년 후인 2018년 12월 김용균씨가 태안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졌다.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죽은 사람이 지난해에만 855명이다. 돈 벌려고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가 죽음이라니…. 

일하다 죽어도 기업의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기업 처벌은 가벼웠다. 처벌이 이뤄져도 말단 직원 몇 명만 처벌받았을 뿐 진짜 책임이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은 무사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인정 투쟁 등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노동자 생명과 건강 책임은 기업에 있고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해야 정의로운지, 기업의 범죄행위는 어떻게 처벌할지 논의가 활발하다. 

▲ 아, 목숨이 낙엽처럼 / 김훈 외 지음 / 생명안전 시민넷 펴냄
▲ 아, 목숨이 낙엽처럼 / 김훈 외 지음 / 생명안전 시민넷 펴냄

아직은 멀었다.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둘러싼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야만의 기업을 멈출 ‘법’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수천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기업 중에서 국민이 납득할만한 ‘벌’을 받은 곳은 없다. 피해자들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인데 가해 기업은 처벌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잘 있다. 기업도 개인처럼 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 사회가 오지 않으면 시민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기업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사망 사고 10명 중 9명은 하청 노동자다. 200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기사망 위험이 정규직에 비해 3배 높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데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과 업무환경에 처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헌장에 따르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시돼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업무환경과 임금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4배까지 발생한다. 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비정규직은 차별을 받아야 하나?

▲ 태안화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직장 동료들이 지난해 12월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 참가해 김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태안화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산업재해로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직장 동료들이 지난해 12월19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3차 촛불 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 참가해 김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눌 명분은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윤리적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과 산업재해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도 봐야 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건 경위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산업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산업재해 관리가 능사가 아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는 노동자들의 다급한 외침을 더는 외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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