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기수 고 문중원씨(40)가 한국마사회의 갑질과 비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데 공식사과와 제도개선 요구가 이어지지만 마사회는 언론에 거듭 사실과 다른 입장을 밝혀 비판을 받고 있다. 마사회의 주장에 유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정면 반박했다.

한국마사회는 한국스포츠경제와 오마이뉴스, 스포츠조선 등에 유족이 공식 면담요청한 적이 없고, ‘경마제도 개선 합의안’을 내며 문씨가 속한 부산경남기수협회와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 한국스포츠경제 보도를 보면 마사회는 “유족 측에서도 공식적으로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유족 측이 공공운수노조와 예고 없이 본관을 방문해 시위했기 때문에 경찰 병력이 출동했다”고 했다.

마사회는 지난 3일 오마이뉴스 보도에선 한국마사회-한국기수협회가 발표한 제도개선안을 두고 “부산경남기수 집행부와도 사전 협의했다”고 밝혔다. 김낙순 마사회장은 스포츠조선‧한국스포츠경제와 인터뷰에서 “유족과 기수협회가 요구했던 가장 핵심 사안인 경마제도 개선이 합의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과 노조는 마사회 쪽에 거듭 공문 등으로 공식면담을 요청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마사회 사이 오간 공문을 보면 노조는 지난달 19일과 지난 1일 두차례 공문을 보내 마사회 회장과 면담을 요구했다. 이에 마사회는 한 차례는 ‘부산경남본부와 협의하라’며, 다른 한 차례는 ‘본부장과 논의하라’고 회신했다.

▲고 문중원씨 아버지 군옥씨가 6일 정부서울청사 앞 중원씨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씨 아버지 군옥씨가 6일 정부서울청사 앞 중원씨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씨 유족 등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6일 ‘한국마사회 거짓말 팩트체크, 제도개선 요구와 교섭경과 발표 및 청와대 상여행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씨 유족 등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6일 ‘한국마사회 거짓말 팩트체크, 제도개선 요구와 교섭경과 발표 및 청와대 상여행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부산경남기수협회도 지난달 31일 공식 입장을 내 마사회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부경기수협회는 “언론보도에는 이번 합의 발표가 경마 관계자의 의견수렴을 거친 것이라 하지만 부산경남기수협회와 부산경남본부 간 공식 간담회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합의는 당연하게 없다”고 했다.

마사회는 6일 노조와 부경기수협회의 반박 내용을 일부 시인했다. 마사회는 미디어오늘에 공식면담 요청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주어가 (노조가 아닌) ‘유족 측’이라고 돼 있어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유족은 문씨가 숨진 당일인 지난 11월29일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에 일체 사항에 대한 권한을 위임해 뜻을 같이 한다. 마사회는 부산경남기수협회와 ‘공식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엔 “공식인지 모르지만 논의하긴 했다”고 했다. 부산경남기수협회에 따르면 부산경남경마본부는 부산경남기수를 11일 모았으나 단 3명이 참석했고, 대부분이 본부 영향 아래 있는 이들이었다는 것.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가 6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운구차를 향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가 6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운구차 앞에서 정부의 해결 책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씨의 아내 오은주씨가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 놓인 문씨의 운구차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씨의 아내 오은주씨가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 놓인 문씨의 운구차를 향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는 3일 언론보도로 노조가 마사회 임직원과 유족의 만남을 가로막는다고도 주장했으나, 노조는 “갈라치기”라고 일축했다. 마사회는 오마이뉴스 보도에서 “유족들을 만날 의향이 있으나 전국공공운수노조에서 마사회 임직원과 유족이 만나는 것을 막고 있다”며 “(노조가) 장례와 무관한 제도개선에 대해 일대일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노조는 실제 유족이 장례절차와 진실규명, 위로비와 재발방지, 산재처리 등 권한을 위임하고 함께 움직인다고 밝혔다. 유족도 마사회 임직원에게 연락 받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문씨의 유족과 공공운수노조 등 64개 단체가 꾸린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 차려진 시민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유족과 노조는 지난달 27일 한국마사회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 문씨의 운구차를 옮기고 시민분향소를 세웠다.

문씨의 아버지 문군옥씨는 이날 “아들은 2018년부터 노골적으로 마방을 제대로 받으려면 ‘빽’을 쓰든 같이 밥을 먹든 하라고 얘길 들었다. 그러나 원래 옆질러 가는 것을 싫어했다”고 했다. 기수로 17년 일한 문씨는 2015년 조교사 자격증을 땄지만 마사회 심사위원회로부터 마방을 받지 못했다. 마사회 권한 아래 조교사와 기수로 이어지는 수직적 갑을관계가 근본 문제로 지적 받지만, 마사회는 현재까지 문씨가 소속 직원이 아니며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과 모형상여, 문씨가 타고다닌 말상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과 모형상여, 문씨가 타고다닌 말상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과 모형상여, 문씨가 타고다닌 말상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문씨의 영정사진과 모형상여, 문씨가 타고다닌 말상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교부하고, 마방 임대 여부를 심사한다. 마사회는 경마시행규정에서 매년 기수가 받는 급여 격인 상금을 책정하고, 기수와 조교사 면허 지급‧갱신권과 징계권을 쥐고 있다. 기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고 일해, 조교사 뜻을 거스르기 어렵다. 특히 부산경남 경마공원은 고정급여가 거의 없이 순위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2005년 이후 죽음을 택한 7명의 마필관리사와 기수는 모두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이다. 

한편 언론은 마사회가 직접 책임을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잇따라 사설을 냈다. 부산일보는 지난달 1일과 12일 “마사회 갑질에 대한 총체적인 수술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죽음을 부르는 한국 경마의 오랜 후진성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6일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이 유족들을 계속 피할 게 아니라 찾아가 사과하고 협의하는 게 마땅하다. 이는 한해 매출 8조원의 공공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도 “구조 개선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그 첫걸음은 마사회가 유족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