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을 다루는 토론회는 결코 쉽지 않다. 오래된 과제이며 해법조차 찾기 쉽지 않은 쟁점일 수록 더욱 그렇다. 1월1일 <JTBC 뉴스룸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가 다룬 언론개혁은 그 자체로 언론개혁의 어려움을 보여준 토론이었다.

잘못끼운 첫 단추

언론개혁이라는 의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정확한 쟁점의 선정이 필요했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 피의사실 공표, 속보와 단독 보도 경쟁, 포털이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문제, 중앙 언론 중심의 정치 보도 뿐이 아니다. 여기에는 보도국의 조직문화나 갈수록 악화되는 수익성 등 시장 상황이 얽히고 설킨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스룸 토론의 시작은 “왜 언론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나?”라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언론 불신이라는 질문은 두 패널인 진중권 전 교수와 유시민 작가가 관련된 조국 전 법무장관 관련 언론 보도의 문제로 출발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한국 언론과 저널리즘의 거의 모든 문제가 응집된 사례일 수 있다. 그러나 두 패널의 진단은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언론, 또는 유튜브 채널을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독자의 문제로 귀결됐다. 한편에서는 정파적이고 악의적인 언론에 의해 선동되어 믿음에 맞는 언론만을 찾는 수동적 대중을 비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보통신혁명으로 언론에 직접 항의할 뿐 아니라, 지지하는 입장에 따라 ‘편파 중계’를 선택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시장 속 소비자를 칭송했다. 

토론 시작부터 논점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대중은 언론을 불신한다는 전제로 시작된 질문에서 목적어인 언론은 간 데 없고, 언론이나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낸 대중에 대한 각기 다른 상상만이 충돌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패널 각자의 대중’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확대됐다.

▲ 지난 1월1일 JTBC 뉴스룸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 갈무리
▲ 지난 1월1일 JTBC 뉴스룸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 갈무리

 

언론 토론에서 대중 평가로

두 번째 주제였던 “유튜브, 기존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나?”는 뉴스룸 토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순서였다. 진중권 전 교수는 유튜브의 문제를 다시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찾는 이용자로,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needs)를 내세우는 확증 편향의 소비자로 연결지었다. 결국 유튜브는 “듣기 좋은 거짓말을 만드는 것이 콘텐츠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뉴미디어”의 결전장이라는 것이다. 반면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 대해 “언론이 아닌 비평, 메타 비평의 역할”이라고 전통적인 언론과 선을 그었다. 특히 그는 유튜브 채널의 인기 이유를 전통 매체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슈를 쉽게 해설해 주기 때문이라는 소비자의 선택, 달리 말하면 ‘깨어있는 시민’의 선택으로 돌렸다. 

애초 토론의 주제를 유튜브와 전통 매체라는 잘못된 대립 축을 만든 것이 문제였다. 유튜브는 정확히 말해 콘텐츠가 아니라 광고주에게 이용자를 매개하는 플랫폼이다. 유튜브 콘텐츠의 내용보다 이용자의 조회수, 체류시간, 이용행태가 더 중요한 미디어다. 토론의 주제인 언론은 간데없고 다시 대중, 소비자, 시청자, 이용자가 문제가 된 것은 이 단계였다. 진중권 전 교수와 유시민 작가는 유튜브의 콘텐츠를 얘기하지 않고 유튜브가 숫자로 매개하는 진정한 콘텐츠인 이용자를 통해 상상의 대중을 다시 불러냈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대중이 아니라 바로 이들에게서 나타났다.

주류언론과 유튜브의 대비가 만들어낸 이 문제는 여전히 토론의 주제가 명확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유튜브가 조회수와 구독자수로 만들어낸 이용자는 1인 미디어와 미디어 비평가인 두 패널에게 각자의 대중을 만들어냈다. 이쯤에 오면 토론을 지켜보던 시청자는 자신이 유튜브에 휘둘리는 확증편향의 소비자인지, 아니면 친절한 해설에 이끌리는 능동적 소비자인지 스스로 진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언론개혁의 첫 번째 질문

토론의 주제가 언론이 아니라 대중으로 바뀌어 갈 때, 진행자와 다른 두 패널의 발언은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매체 환경의 큰 변화를 설명하며 언론의 문제로 돌리자는 조언도, 전통 매체와 유튜브의 대비를 플랫폼의 문제로 전환하려는 노력도 더 깊은 토론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언론 양극화의 문제는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릴레오와 같은 콘텐츠도 새로운 저널리즘으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를 꺼냈던 진행자도 다르지 않았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던 토론에 충격을 준 것은 방청객 두 명의 미니토론이었다. 양극화된 언론 상황에서 “여러 사안을 보려해도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며 “유시민 작가의 알릴레오가 그러한 편향을 더욱 키우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나아가 “대중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원인을 대중에게서 찾는 것은 아닌가”라 되물으며 “극단을 달리는 언론 시장에서 대중은 새로운 선택지를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도리어 이 질문들이 토론의 주제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제서야 유튜브 알고리듬, 정치적 편향성과 언론의 편향성, 언론 개혁의 현실적 대안 등 중요한 논점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두 패널의 답변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자신의 입장에 맞는 섭취는 각자의 문제”라는 무책임한 답변만이, 다른 편에서는 “그 질문 자체가 내가 앞서 말한 현상의 사례”라는 엉뚱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토론의 마지막이 오히려 백미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두 시간 가까이 언론이 아닌 대중을 주제로 논쟁했던 패널들이 바로 그 대중 중 두 명을 눈 앞에서 마주했다. 이들은 확증편향의 정파적 지지자도, 편파중계에 환호하는 소비자도 아니었다. 분명히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얘기하고 있으나 그 대중에 과연 내가 속하고 있는가를 묻는 두 명의 방청객, 대중이었다.

결국 이 토론은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가 아니라 “언론 수용자, 어떻게 보아야 하나”로 주제가 바뀐 셈이다. 그럼에도 이 토론이 남긴 중요한 질문이 있다. 토론을 준비한 JTBC 제작진 뿐 아니라 언론 종사자와 비평가들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나왔기 때문이다. “언론 불신의 원인이 대중 때문입니까?” 2020년 언론개혁을 계속해야 한다면, 그 당사자들은 대중에게 이 질문의 답을 먼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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