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생명을 다 살아보지 못하고 꿈을 키워갈 기회를 빼앗겼다. 그러나 그동안 ‘일가족 자살’ ‘동반자살’ 등으로 여겨져 안타까운 가족사로 기록됐다. 관심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 사연에 주로 집중됐다. 자신이 가장 믿고 따랐던 이들에 의해 생을 마감한 아이들의 마지막은 적막했다.”(2019년 10월8일자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 하나요”)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이하 탐사팀)은 지난 10월8일부터 18일까지 기획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을 연속 보도했다. 2009년 이후 발생한 살해 후 자살 사건 가운데 미성년 자녀가 피해자인 사건의 수사 자료, 살해 자살 미수자 판결문, 언론 보도 등을 촘촘히 분석했다. 경찰관 40여명을 인터뷰했다. 여러 유가족도 만났다. 전문가를 상대로 한 연속 인터뷰도 보도했다. 2009년부터 최소 279명(미수 포함)의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 죽음에 강제 동반됐다. 매달 두 명 꼴이다.

우리가 ‘일가족 자살’ ‘동반자살’로 치부한 문제는 개인사가 아닌 사회·구조 문제에 가까웠다. 이를 테면 실직, 사업 실패, 빚 등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변동하고 이를 수용하지 못할 때 우리는 벼랑 끝에 내몰린다. 고립된 인간은 주변에 손을 내밀기보다 스스로 결정내리길 선호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고 회생하지 못한 이들은 ‘부모 없는 아이’의 미래와 운명을 예단한다. 부모가 죽으면 아이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생각이 비극을 초래한다. 부부 갈등으로 표출되는 분노는 어린아이에게 향하기 쉽다.

▲ 국민일보 2019년 10월8일자 1면.
▲ 국민일보 2019년 10월8일자 1면.

기자 4년차 임주언 탐사팀 기자는 올 7월 한 재판에서 영감을 얻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세 자녀를 기르던 부부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었다. 아이 한 명이 죽어 부부는 살인 및 살인미수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가정에 ‘개입’했다. 직권으로 엄마의 보석을 결정한 재판부는 채무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직을 위한 계획이 무엇인지 보고토록 했다.

법률구조공단과 구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도 남은 두 아이 회복을 위한 대책에 머리를 맞댔다. 구청은 남은 아이들을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이 머물던 친척집도 주기적 방문해 상황 점검했다. 지역 대학병원은 가정의 심리적 회복을 도왔다. 변화를 만든 건 ‘국가의 개입’이었다.

임주언 기자는 9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보통 보석은 돈(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재판부는 그런 것 없이 ‘실험’을 시도했다”며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부모들은 왜 극단적 선택을 하는지 그것이 단순 개인 문제인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인력은 팀장을 포함해 5명에 불과했지만 국민일보 탐사팀은 3개월 공력을 쏟았다. 임 기자는 “10년 전 사건도 다루다보니 아무래도 과거 사건을 기억 못하는 경찰 분들도 적지 않았다. 또 담당 경찰을 찾는다고 해도 사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오랜 설득이 필요했다. 취재를 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술회했다.

첫 보도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포털 댓글 등에선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겠느냐’며 부모를 동정하는 여론이 많았다. 국민일보가 전문가 26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을 보면,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꼽혔다. 살해 후 자살이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아이를 부모 소유물로 여기는 정서도 컸다.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죽했으면’이라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자녀의 생명권을 부모에게 종속시켜 생각하는 부분이 크다.”

▲ 국민일보 2019년 10월10일자 6면.
▲ 국민일보 2019년 10월10일자 6면.

정신 장애 아들과 함께 죽으려다 미수에 그치고 혼자 숨진 아버지 사연도 소개됐다. 남은 가족은 자책과 무기력에 시달리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딸 A씨는 국민일보에 “누가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손을 내민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말했다. 임 기자는 “유족이 굉장히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유족은 말을 꺼내고 싶어했다. 살해 후 자살 문제가 공론화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전한 뒤 “생존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체계적으로 개선돼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 인력 부족, 고위험군 가정에 대한 국가의 개입 및 관리 부실 등 국민일보 보도는 이 문제가 공동체 복원이 필요한 ‘사회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번 보도는 국민일보 탐사팀이 부활한 지 5~6개월 만에 거둔 성과였다. 임 기자는 “편집국 차원에서 시간 투자 등 큰 배려를 해줬다. 이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며 “앞으로도 사람 또는 죽음 문제를 계속 다루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동반자살’이라고 불렸던 사건들은 많이 보도됐어요. 단 건 보도는 적지 않았어요. 그런 사건을 전부 모아 의미를 도출하는 작업이 탐사 보도인 것 같아요. 개별 사건들을 한곳에 모아보고 사회적 의미를 찾는 탐사가 지속돼야 의미 있는 의제가 설정되고, 우리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제350회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에서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 하나요’ 기사로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을 수상한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 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사진=국민일보
▲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제350회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에서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 하나요’ 기사로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을 수상한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 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사진=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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