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1월부터 주 52시간 노동제를 지켜야 할 중소기업(노동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에 추가 계도기간을 부여하자 방송·노동계 단체, 산재 피해자 모임 등이 “주 52시간제 파기 시도를 당장 철회하라”며 집단 반발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용균재단 등 25개 노동·법조·언론·의학계 단체는 9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추가로 유예한 정부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기존 계획대로면 노동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해야 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지난해 7월1일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했고 50~300인 규모 중소기업엔 오는 1월까지 1년 6개월 준비기간을 줬으며 5~50인 미만은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8일 ‘충분한 계도 기간을 두겠다’며 중소기업에 적용 유예 방침을 밝혔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용균재단 등 25개 노동·법조·언론·의학계 단체는 9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추가로 유예한 정부를 규탄했다.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용균재단 등 25개 노동·법조·언론·의학계 단체는 9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추가로 유예한 정부를 규탄했다.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김동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많은 이들이 프리랜서니까 방송업계엔 영향을 안 주는 게 아니냐’ ‘50인 미만 사업장엔 큰 영향을 안 주는게 아니냐’ 말이 나오는데 프리랜서 드라마 스태프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았고 앞으로도 분명히 인정받을 것이다. 외주제작사 대부분이 50~300인 규모고 제작 시스템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어 한 쪽의 노동시간이 유예되면 결국 다른 곳에도 영향이 확대된다”고 우려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경영상 위기만 재난이고 갑자기 부과되는 장시간 노동으로 죽고 쓰러지는 건 재난이 아니냐”며 “주 40시간 노동제는 2003년에 도입했다. 16년 동안이 계도기간인 셈인데 계도기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냐” 물었다.

최민 활동가는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면, 8시간만 일한 사람보다 안전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50% 증가하고 12시간 넘게 일한 사람은 이 확률이 2배 이상 높아진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더 다양하게 많다. 내가 의사라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는 문제”라 밝혔다.

주 136시간 극심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적 있는 드라마 스태프도 계도기간 철회를 촉구했다. 드라마 DI(색보정) 작업자 황아무개씨는 각성제 에너지드링크 9캔과 커피 4잔이 책상에 놓인 사진을 공개했다. 황씨는 “이 작업 당시 잠자지 않고, 103시간 정도 연속으로 일했다. 졸지 않으려고 의자에 무릎을 끓고 일했고, 이후 집에서 자다가 몸에 이상 변화가 와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내가 살아 남은 것도 운이 좋아서다. 근본적인 시스템이 안 바뀌면 나와 같은 노동자들이 양산될 것”이라며 “방송노동자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멋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 열정을 불 태우자는 생각으로 (장시간) 작업을 한다. 빨리 고쳐지지 않으면 그의 삶은 황폐해 진다. 국가가 이들을 돌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25개 단체는 계도기간 철회 촉구 성명에서 “지금도 방송사들이 엄연히 법으로 규정된 주 52시간제를 어기는 상황에서 진작에 끝났어야 할 유예기간이 늘어나고, 예외조항이 늘어난다면 방송 노동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다”며 “정부는 방송 노동자들의 혹사를 부추기는 주 52시간제 파기 시도를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엔 시민 60여명도 개인으로 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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