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도노동조합이 4조2교대제 전환을 위한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지 나흘째다. 결정권을 쥔 정부가 강경 입장을 유지하며 돌파구를 찾지 못한채 언론은 관성대로 ‘노조탓’ 보도를 주로 이어갔다. 노조 요구를 전하며 정부 프레임을 따라가는 양상도 눈에 띈다.

철도노조는 지난 20일 아침 9시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핵심 요구는 4조2교대제 전환합의 이행을 위한 안전인력 4600여 명 충원이다. 철도 노사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내년부터 현행 3조2교대제를 4조2교대 전환키로 합의했다. 낮 근무 이틀, 야간 근무 이틀을 연이어 하는 체제를 낮 근무와 야간 근무를 하루씩 하도록 바꾸는 거다. △임금 정상화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와 자회사 임금수준 개선 약속 이행 △코레일과 SR(수서고속철) 통합도 요구도 있다.

모두 정부 승인이 필요한데,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서 반 년에 걸친 노사협상이 결렬됐다. 이번 파업의 핵심은 노사 합의를 이행하라는 요구이자, 정부가 적극 개입해 협상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제공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제공

시민 불편 부각 되풀이…  열차사고 방지는 없어

대부분 언론이 나흘째 철도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부각했다. 기사 제목엔 “시민불편”, “혼잡우려”, “국민볼모” 등이 등장했다. 언론이 철도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파업 때마다 되풀이해온 관행이다.

이들 기사가 말하는 ‘시민 손해’엔 철도안전 미비로 시민들이 치르는 비용은 없다. 언론은 끊이지 않는 코레일의 크고 작은 열차 사고 때마다 ‘안전시스템 구멍’이라고 비판해왔다. 지난해 말 강릉선 KTX 탈선사고가 대표 사례다. 200명을 태운 열차가 선로를 벗어나 16명이 다쳤다. 언론은 당시 사고를 톱뉴스로 보도하며 철도공사를 비판했다. 당시 언론은 정비인력과 예산 부족을 질책했다. 바로 지금 철도노조는 언론이 질책한 정비·역무 등 안전인력 충원과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중이다.

▲22일 포털 뉴스페이지 “철도 파업” 검색 결과 갈무리
▲22일 포털 뉴스페이지 “철도 파업” 검색 결과 갈무리

‘약속 지키라’ 파업에 코레일 방만경영·친노조 탓… 적자는 오히려 SRT-KTX 분리 비롯

보수·경제지는 코레일 사측이 노조에 ‘파업 빌미’를 줬다고 비판했다. 코레일이 방만 경영과 친노조 정책으로 정부와 합의도 없이 안전인력 충원과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 자회사 직원 처우 개선 등 노조 요구를 들어줬다고 했다. 이들은 코레일의 방만경영과 노조 요구를 들어선 안 되는 근거로는 ‘만성 적자’라는 점을 댔다.

문화일보는 20일 “코레일 안팎에서는 친노조 정책이 이번 파업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오 전 (코레일) 사장은 지난해 6월 노조와 근무시스템을 4조2교대로 개편할 것을 약속하며 노조 편을 들었다”고 했다. 매일경제와 서울경제, 세계일보, 동아일보 등도 같은 주장을 폈다. 이들 언론은 “코레일은 총부채가 15조원이 넘고 매년 수천억원 적자를 내는 만성 적자기업”(매일경제)이라고도 강조했다.

노조의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에 ‘딴지 걸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출범 당시 철도 공공성 강화를 공약했다. 전문가와 철도노사는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협의체를 꾸렸고, 실태조사를 거쳐 자회사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권고했다.

적자 문제는 오히려 노조 요구에 따라 SRT-KTX를 통합하면 사라질 공산이 크다. 코레일 적자는 주식회사SR가 설립된 이후 고속철도 이용객이 KTX에서 SRT로 대거 옮겨가면서 고착화됐다. 코레일은 고속철도만 운영하는 SR과 달리, 수익을 내는 KTX와 손실이 나는 일반·화물열차를 철도 공공성 차원에서 함께 운영한다. 노조는 철도공공성 강화와 관리운영 효율화를 위해 SRT와 KTX 연내 통합을 요구한다.

▲20일 문화일보 사회면
▲20일 문화일보 사회면
▲20일 세계일보 사설
▲18일 세계일보 사설

정부의 ‘주 31시간’ 프레임 헤드라인에… “핵심은 심야근무 축소”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노사 요구를 설명하며 정부 프레임을 따라가기도 했다. 이들 언론은 정부가 4조2교대제 합의를 두고 ‘주 39시간에서 더 줄여달라는 요구이며, 근거 없는 무리한 주장’이라는 입장을 부각했다. 노조의 요구 초점이 심야근무 축소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21일 10면에 ‘주39시간 일하는데 철도파업… 노조 요구 들어주면 30시간’이란 제목으로 국토부 주장을 앞세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주39시간 근무 철도노조, 주 31시간 일하겠다고 파업’으로 제목을 뽑았다. ‘주31시간 일하겠다고 철도파업이라니’(서울경제), ‘주31시간 일하겠다며 파업한 철도노조, 국민이 납득하겠나’(매일경제), ‘‘주 31시간 근무’ 철도노조 파업, 상식에 맞나’(서울신문) 등 제목의 사설이 줄이었다.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이 20일 “노조 요구 수용 시 31시간, 코레일 요구 수용 시 35시간으로 전체 근로자의 최저수준이 된다”며 노사 어느 쪽의 요구도 받을 수 없다고 한 발언을 그대로 옮겼다.

▲21일 조선일보 사회면 갈무리
▲21일 조선일보 사회면 갈무리
▲(위부터)파업기간 중 중앙일보 사회면 기사·매일경제· 서울경제 사설
▲(위부터)철도파업 기간 중앙일보 사회면 기사·매일경제· 서울경제 사설

실상 4조2교대제 합의는 산업재해와 열차사고가 이어진 데 대한 대책이다. 노조는 인력부족과 장시간 야간근무로 사고가 끊이지 않자 노동자 시민 안전을 보장하려면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사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김승현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선전국장은 “연속 심야근무는 노동자의 업무집중도와 지대한 영향을 미쳐 사고 때마다 원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고속철도는 정밀한 정비와 운영, 역무를 필요로 해 노동자들의 집중도를 필요로 하는데, 자칫 실수하면 가벼운 부상이 아니라 열차사고나 사망사고로 곧장 이어진다. 다수 언론이 고속철도 보도를 하며 이를 간과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코레일은 공공기관 가운데 산재율이 가장 높은 업장이다. ‘최근 5년간 산업재해 사상자 현황’을 분석하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간 총 583명이 사상을 당했다. 지난달 밀양역에서 선로작업 노동자가 새마을호에 치여 숨진 사건도 선로 감시원 등 인력 배치 부족이 원인으로 꼽혔다.

경향신문 등이 이 사실을 지면에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21일 “교대근무는 주야 근무를 번갈아 반복하기 때문에 정시 출퇴근과 근무시간을 단순 비교하기 힘든데, 국토부가 주당 근로시간만 계산해 노조 주장을 비판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는 전문가 설명을 전했다.

한겨레는 23일 사설 ‘철도 노사에 ‘파업책임’ 돌리는 국토부는 떳떳한가‘를 냈다. 한겨레는 △4조2교대로 전환해도 국제철도연맹 평균 노동시간보다 많다 △국토부가 밝힌 주당 근로시간 축소 효과도 과장됐다 △정부는 올들어 노사가 30여차례 협상을 벌이고 노조가 태업과 경고파업을 벌이는 동안 뒷짐을 졌다 등 정부 주장의 맹점을 짚고 해결 책임을 강조했다.

▲23일 한겨레 사설
▲23일 한겨레 사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이번 파업보도 양태를 두고 “철도 파업 때마다 되풀이되는 모양새”라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언론은 3년 전이나 13년 전이나, ‘시민들 발 동동’ ‘열차 안 와’ 등 표현을 써 보도했다”며 “파업하면 시민이 불편한 건 당연하다. 다만 파업의 원인과 해결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심을 둬야 하는데, 주류 언론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경영진처럼 파업을 막을 주체, 특히 이번 파업에서 예산과 인력충원을 결정할 열쇠를 쥔 정부가 지금까지 뭘 했는지를 염두에 두는 보도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