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안에 대한 찬성(지지) 혹은 반대(비판)의 입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 과정을 알기 위해선 어떻게 그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만일 그 과정을, 입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그건 입장이라기 보단, 그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가깝다. 호불호의 감정을 갖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호불호와 입장의 개념을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이 차이가 정치와 공론장의 상태를 진단하는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호불호를 유발하고 있을까, 아니면 유권자가 입장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을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검찰개혁안으로 부상한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신설을 “조국 구하기용 가짜 개혁”(10월13일 국회 발언)이라고 표현했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10월28일 국회 연설)이라고 발언했다. 사실 이 발언들은 검찰개혁과 경제정책에 대한 ‘입장’을 가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론장은 어떨까. 입장이 만들어질만큼 충분하고도 균형된 정보가 제공되고 있을까, 아니면 주장이 앞서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들만 편향적으로 제공되고 있을까, 아니면 근거조차 불분명한 인상 비평들이 범람하고 있지는 않을까. 분명한 것은 정치와 공론장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호불호를 유발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호불호든 입장이든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고, 이왕이면 가성비 높은 호불호 유발쪽으로 정치와 공론장이 기운다.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각 개인들이 입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공수처를 찬성·반대하느냐는 입장 중에 어느 쪽이 다수인가 자체보단, 각 개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공유하는 가치들을 발견하고, 중요시하는 가치의 차이도 발견된다. 아마도 여야가 모두 중시하는 가치는 수사기관의 독립성일 것이다. 여당은 검찰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단 입장에서 공수처를 지지하고, 야당의 입장은 거친 언사들을 최대한 선해하면 공수처가 권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단 우려로 보인다. 반면 현재 검찰이 스스로 권력기관화 되어 있는가와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가 정당한지는 여야의 의견이 엇갈린다. 이처럼 양쪽의 주장이 근거를 기반으로 한 ‘입장’인 경우엔 어떤 가치를 공유되고 있고, 중요성을 달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생산적인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다. 하지만 호불호의 정치에선 그런 과정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저 ‘내편이냐, 네편이냐’만 따지는 정치만 남는다.

전직 언론인이자 나름 뉴스의 열성소비자에 속하는 필자가 최근 입장을 가지기 어려운 두 가지 사안이 있다. 공론장에서 균형된 정보들을 제공 받기가 힘들어서다. 하나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이 어떤 맥락에서 성공했는지다. 2018년 유가부수 기준으로 1위~5위인 조선·동아·중앙·매일경제·한국경제 등의 신문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법인세를 인하하고, 노조의 기득권을 해체하며 개혁에 성공했고 프랑스 경제가 살아났다며 기사와 사설들을 쏟아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이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며 마크롱을 배우라는 조언도 넘쳐난다. 더 찾아보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이들 매체의 보도와 사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널리 알려진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만 대입해봐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례로 마크롱 행정부는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33.3%에서 31%로 내리는 세제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이미 한국은 법인세의 최고세율이 25%다. 2018년 기준 GDP 대비 복지 지출의 비중은 한국이 11.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지만, 프랑스는 31.2%로 1위다. 매일경제 기사(9월27일자 ‘마크롱 감세 드라이브… 소득·법인세 동시인하’)에선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54.4%에 달하는 GDP 대비 정부 재정의 비중을 2020년 53.4%로 줄인다고 보도했지만, 한국은 2018년 국내총생산이 1893조원(한국은행 ‘국민소득’ 통계)이었고, 정부의 총지출이 결산 기준으로 434.1조원으로 22.9%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가 처한 상황 자체도 다르다. 2017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노조의 단체협약 적용률이 전체 노동자의 98%에 달하지만, 한국은 12%로 이 역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와 최하위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근로기준법 위반이 만연하지 않고, 노조의 쟁의행위를 형사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법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조차 정직하게 명시하지 않은 채 보도를 하니, 혹시 마크롱의 개혁에 대해서도 왜곡된 보도를 하지 않았나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를 확인하는 몫은 오로지 궁금한 독자의 몫이다. 정파적 언론이어도 최소한 정직하고 성실하다면 이런 불필요한 의심은 덜 수 있지 않을까.

▲ 프랑스 제25대 대통령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리크 마크롱 (Emmanuel Jean-Michel Frédéric Macron). ⓒ 연합뉴스
▲ 프랑스 제25대 대통령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리크 마크롱 (Emmanuel Jean-Michel Frédéric Macron). ⓒ 연합뉴스

방만한 재정 운용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언론들과 야당은 연일 초슈퍼 예산과 국가부채가 임계점을 넘었다며 기사와 칼럼, 사설 등을 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8월15일자에 “포퓰리즘이 나라 살림 거덜 낼 것”이란 사설을 게재했고, 복지 포퓰리즘이 방만한 재정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로 10월 말 연속 기획으로 ‘오늘만 보는 현금복지’라는 기획기사들을 내놨다. 방만 재정의 주요 근거는 ‘초슈퍼’라고 표현하는 역대 최대의 재정 규모인데 국가 경제가 역성장하지 않는 한 재정은 매년 최대 규모를 경신한다. 그렇다면 증가율이 과도한지, 재정여력이 불충분한지 등을 따져봐야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일방적이고, 반례를 재반박하기도 어렵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지난 8월19일에 팩트체크 매체 뉴스톱에 기고한 내용을 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수 증가로 정부의 총수입이 총지출보다 누적 71.5조원 많았다. 세금을 거둬놓고 안 쓰면 민간경기가 위축되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방만 재정’을 역설하는 기사들에선 찾아볼 수 없다. 지자체가 서로 조율 없이 추진하는 다양한 현금성 복지정책들도 문제가 있지만, 건설경기를 부양하며 단기 일자리를 늘리는 재정지출의 방식에 대해선 왜 균형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까. 이처럼 현재의 언론 환경에 다양한 정보를 균형되게 접하고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호불호가 아닌 입장을 가지려면 직접 정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는 “민주주의에 있어 ‘정보를 잘 제공 받는 유권자’(well-informed electorate)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한국 언론은 과연 유권자에게 정보를 잘 제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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