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언론계가 주목하고 있다. 출입처 병폐를 끊는 것을 넘어 차별화된 뉴스로 성공한다면 끼칠 파장이 크다.

시작은 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신임 보도국장이다. 그는 지난 4일 내부게시망에 보도국 운영계획을 올리면서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별로 구체적 주제와 이슈를 선택, 취재를 집중해서 우리만의 차별화된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엄 국장 선언은 임명 동의 투표에도 영향을 준 걸로 보인다. 보도국 소속 기자 258명이 참여해 161명이 찬성하고 97명이 반대했다. 전임 이재강 보도국장은 266명이 참여해 찬성 210명, 반대 56명이었는데 반대 수치가 더 높아졌다. 엄 국장의 ‘파격’ 선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셈이다.

출입처 제도는 언론의 병폐 중 대표 문제로 거론돼 왔지만 견고한 현실을 깨긴 어려웠다. 기수 문화가 강한 한국 언론에서 출입처는 또 다른 위계질서를 형성한다. 취재원과 관계 설정을 위한 절대적 공간이다 보니 크고 작은 사건도 발생한다. 출입처 취재는 ‘누가 더 빨리’ 출입처 정보를 캐는데 매몰된다. 전문성을 키울 시간은 부족하다. 정치부는 출입처의 정파성에 동화돼 취재원 발언이 진실 여부보다는 받아쓰기 해온 게 사실이다. 소위 좋은 출입처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와 관계를 쌓는데 골몰하고, 이를 발판으로 권력의 자리로 가는 관행도 굳어졌다.

출입처 문제의 핵심인 기자단 카르텔도 여전하다. 지난 2009년 4월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경찰청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공보관 시절 자신이 기자들에게 성접대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기자단은 ‘자체’ 판단에 따라 보도하지 않기로 했는데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프레시안이 강 청장 발언을 기사화하면서 논란이 됐다. 공직자를 감시하고 견제할 언론의 역할이 기자단 카르텔에 막혀버린 셈이다.

▲ KBS 본관 전경.
▲ KBS 본관 전경.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2010년 출입처를 탈피하겠다며 분야별로 나눠 취재하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외근 기자가 기사 쓸 공간이 한정돼 있어 기존 경찰과 시청, 도청 등 기자실을 베이스캠프처럼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출입처를 남겨뒀다. 예로 여성과 복지, 환경을 맡은 기자가 관련 출입처를 맡는 식이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는 “정책 문제점이 발생하면 도청 출입기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기사를 쓸 시스템은 유지되고 있다. 출입처 문제인 기관과 유착을 막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주완 이사는 “과감하게 출입처와 단절하는 건 좋은 시도지만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현실적으로 될까 의구심이 있다”며 “오히려 출입처 제도 하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디테일하게 해결하는 게 좋다. 예로 검찰발 정보를 놓고 수사 중인 사안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보다 재판 과정에 집중하겠다거나 피의자 반론을 얻지 못하면 일방의 주장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준칙을 만들어 취재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CBS는 12월 노사가 함께 꾸린 ‘CBS 미래를 위한 노사혁신 TF’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고 이슈 중심 편집국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다. 박재홍 언론노조 CBS 지부장은 “당시 ‘뉴스 혁신’이라는 대의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했지만 현장에서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출입처를 폐지한 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취재 시스템을 꾸릴지 논의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CBS는 현재 출입처 시스템을 당장 폐지하자는 방향보다 ‘실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쪽으로 합의했다. 현재 CBS 보도국과 편성국은 ‘심층 취재팀’을 따로 두고 출입처 취재 외 이슈 대응을 하고 있다.

해외 미디어 동향을 보면 출입처 문제는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라 조직을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지 논의로 넘어간 지 오래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CIR(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탐사보도센터)은 취재 영역을 정하고 IT기반 전문가와 함께 팀을 이뤄 보도한다. 젠더와 차별, 혐오 문제를 다루는 시민사회팀과 경제사회팀, 비디오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단기 저널 연수를 다녀왔던 임인택 한겨레 기자는 “해외에서도 ‘비트’라고 부르는 출입처 제도를 두지만 100명이 안되는 스타트업 매체는 출입처를 두지 않고 기획 위주 아이템 보도를 하는 게 보통”이라면서 “기존 매체가 출입처를 견고하게 기득권으로 형성하고 있어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라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택했다. 다만 출입처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출입처 안에서 기성 언론이 리드나 리뷰를 잘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임 기자는 KBS의 이번 시도를 지지한다면서 그 이유를 “우리 언론이 선의로 도모하는 대부분의 변화를 옹호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어제 하던 대로만 오늘도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러 현실을 감안했을 때 엄경철 보도국장의 계획이 ‘선언’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엄 국장은 출입처 제도 탈피 방안으로 주제 및 기획 아이템을 생산하는 취재 시스템을 도입하고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밝히면서 ‘뉴스타파’를 언급했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데일리뉴스를 생산하고 정시 뉴스를 해야 하는 KBS와 전혀 다른 조직이다. KBS에서 뉴스타파로 옮긴 심인보 기자는 “KBS는 데일리 뉴스를 메워야 한다. 발생 뉴스 없이 기획뉴스로 9시 뉴스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예를 들어 공정위 이슈가 터졌는데 담당인 경제부 출입처가 없어 남겨놓은 기획재정부 출입처에서 리포트를 만드는 식이라며 남겨놓은 출입처 기자들 업무 과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윗사람이 생각하는 뉴스를 기획하는 형태로 주문 생산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기사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엄경철 국장은 청와대와 같은 주요 출입처는 폐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엄 국장은 통합뉴스룸 취재기능 50% 이상을 탐사, 기획 취재 중심의 구조로 바꾸겠다고 했는데 바꿔 말하면 출입처 절반은 그대로 남겨두겠다는 말이다. KBS 내부에서 어떤 출입처를 남겨두느냐를 놓고 부장급 기자들이 자신들이 속한 출입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는 등 강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KBS 예산과 관련된 기획재정부 출입은 포기할 수 없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결국 연차가 낮은 사회부 기자가 출입하는 경찰 등 출입처를 없애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심인보 기자는 “과거에 사회부가 사스마와리 경찰 출입을 줄이고 이슈팀을 만들었는데 기자들이 출입처가 없다 보니 회사로 출근하면 윗선에서 조간과 석간에 나온 아이템을 받아 취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심 기자는 “엄 국장 구상대로 절반 이상이 탐사 기획 아이템을 내고 보도해서 쳇바퀴 맞물리듯이 돌아가면 좋겠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며 “출입처를 없애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출입처 기자단 안에서 담합하고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문제를 막아야 한다. KBS가 그런 쪽으로 방향을 틀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출입 기자단 카르텔을 깨고 좋은 보도로 이어질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조출입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강경훈 민중의소리 기자는 “지금처럼 소수 매체만 기자단에 포함시켜 운영하는 출입처 제도는 기관과 언론의 유착만 심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강 기자는 “특히 검찰과 같은 폐쇄적인 기관은 출입처 제도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다. 기본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매체 자체부터 한정돼 있고 그 안에서조차 선택적으로 기관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특정 매체에 정보를 제공하면서 언론플레이 할 수 있다”며 “사실상 검찰 같은 상급 기관은 출입처 제도를 입맛에 맞게 활용하고, 권력기관이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부적절한 구조를 양산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가진 비대칭 정보에 언론이 휘둘리면서 사실상 유착관계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강 기자는 “검찰이나 법원 같은 상급 사법기관에는 언론이 제대로 된 문제제기도 못하면서 공소권 영장청구권이 없는 경찰 같은 상대적 하부기관에는 출입기자단이 ‘갑질’을 한다”며 “검찰이 특정 매체에 단독을 흘려주면 항의는커녕 어떻게든 그 카르텔에 들어가려고 용을 쓰는 반면, 경찰에서 단독 기사가 흘러나오면 쌍심지를 켜고 항의하면서 수사 관계자를 기자실에 소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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