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철 KBS 신임 보도국장이 차별화된 뉴스 보도 방안 중 하나로 출입처 제도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9시 뉴스 앵커를 맡고 있는 엄경철 국장은 지난 1일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국장에 임명됐다. 엄 국장은 임명 동의 투표 합의사항에 따라 내부 게시망에 보도국 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엄 국장은 “KBS는 광고에 기반한 상업방송과는 다른 ‘차별화된 뉴스’를 시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차별화된 뉴스를 생산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는 수신료를 회수당할 수 있다”며 △출입처 제도 혁파 △주제·이슈 중심의 취재시스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엄 국장은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엄 국장은 “출입처 제도는 필요한 공적 획득의 전달, 안정적 기사 생산이라는 기능을 하고 있지만 모든 언론사를 균질화시킨다”며 “패거리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고, 이 과정에서 과당 경쟁이 발생하면서 언론 신뢰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출입처 중심의 취재와 기사생산은 불가피하게 시민의 관점과 요구, 필요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부서별 특징을 감안하고 점검해, 출입처 제도를 혁파하겠다”고 밝혔다.

출입처 제도는 저널리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지만 굵직한 정부 부처 발표 이슈, 출입처발 정보 독점, 취재원 관계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매체로선 포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플랫폼 다변화 등 미디어환경 변화로 정보 유통이 빨라져 정보의 매개지로서 출입처 기능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KBS가 출입처 제도 폐지라는 파격적인 실험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엄 국장은 출입처 폐지시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이슈를 “주제 이슈 중심의 취재시스템”을 통해 메꾸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엄 국장은 “시민의 삶 속으로, 시민사회 속으로 카메라 앵글이 향하기 위해 모든 부서에 주제 이슈 중심의 취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별로 구체적 주제와 이슈를 선택, 취재를 집중해서 우리만의 차별화된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뉴스룸 취개기능의 50% 이상을 탐사, 기획 취재 중심의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엄 국장의 ‘파격’ 선언에 KBS 구성원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엄 국장의 계획이 현실로 반영됐을 때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와 현실적 문제로 선언적 의미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이 혼재돼 있다.

양성모 KBS기자협회장은 “30년 넘은 출입처 문제를 KBS 국장 한 사람이 하겠다고 되는 건 아니”라며 “신임 국장의 발표는 순식간에 출입처를 폐지하겠다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안다. 문제점을 해결하고 대안을 내놓은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양성모 협회장은 “엄 국장의 계획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출입처 폐지는 장기적으로 고쳐나가야할 어려운 과제”라며 “내부적으로 출입처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건강한 주제의 논란을 던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KBS 한 기자는 “신임 국장의 구상이 현실로 어떻게 나타날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기대와 우려가 섞인 의견을 전했다. 출입처 폐지는 KBS 취재 시스템 전반을 뒤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에 신임국장과 전체 평기자의 토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KBS 본관.
▲ KBS 본관.

엄 국장은 다만,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점에서 전면 폐지라기보다 특정 부서를 중심으로 한 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경찰과 단체를 출입하는 사회부에 주제 이슈별 발제를 하는 것을 자리 잡게 하고 점차 출입처를 탈피하는 방향이다.

엄 국장은 “같은 출입처에서 같은 방식으로 노력해서는 대동소이한 뉴스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며 “타사에서 쏟아지는 출입처 뉴스, 발생뉴스의 압력을 견뎌야, 수신료를 받는 시민에게 다른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생활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보도하고, 부서 칸막이를 없애면서 시민 밀착형 이슈를 선점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엄 국장의 선언이 최근 김경록씨 인터뷰 왜곡 논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 김경록씨를 KBS가 인터뷰하면서 일부 대목을 떼와 왜곡 논란이 벌어졌고, 법조출입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검찰에 확인하자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지난달 1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검찰 기자들의 출입처 시스템을 보면 굉장히 폐쇄적이고 배척적인 집단이다. 그곳에서 검찰하고 늘 같이하면서 기자들이 많이 검사화 돼버렸다. 우리나라 출입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출입처 제도를 없애고 브리핑제도로 가야한다는 주장이다.

엄경철 신임 국장에 대한 임명 동의 투표는 5~6일 이틀 동안 진행된다. KBS 보도국 소속 기자 과반수 투표 참여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