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언론 최악의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저명’, ‘유력’ 따위의 수식어가 붙던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서 지난해 벌어진 기사 조작사건은 독일 언론계의 큰 충격이었다. 다만 이 사건의 전모를 다른 어느 매체도 아닌 슈피겔이 스스로 공개했다는 점이 그마나 위안이 됐다.

2018년 12월, 슈피겔은 주로 분쟁지역에 가서 르포기사를 쓰던 클라스 렐로티우스(Claas Relotius)의 기사 상당수가 날조되었다고 밝혔다. 쿠르드족,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역, 이슬람국가(IS) 등에서 어려운 취재원에 접근, 훌륭한 르포기사로 기자상을 휩쓸던 촉망받는 기자였다. 하지만 그가 기사에서 밝힌 취재원이나 인터뷰 일부 혹은 전부가 가짜로 드러났다. 

이는 렐로티우스와 공동 취재를 했던 유안 모레노(Juan Moreno) 기자가 밝혀냈다. 현장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취재를 해낸 렐로티우스 기사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고 역으로 추적한 덕분이었다. 유안 모레노는 이 사실을 편집국에 알렸고, 슈피겔은 12월22일 표지 기사 ‘있는 그대로를 말하라(Sagen, Was ist)’를 통해 이 사건을 직접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슈피겔은 스스로의 잘못을 밝히기 위해 이 사건에 22페이지를 할애했다. 예전에 발행된 조작된 기사의 사진과 함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언론계와 독자들의 반응도 함께 보도했다. 슈피겔의 경쟁지라고 할 수 있는 디차이트(Die Zeit)의 편집국장과 해당 사건에 대한 인터뷰 기사도 실었다. 

▲렐로티우스 사건을 밝힌 2018년 12월 22일자 슈피겔 표지 ‘있는 그대로를 말하라(Sagen, was ist)’ ©Spiegel
▲렐로티우스 사건을 밝힌 2018년 12월 22일자 슈피겔 표지 ‘있는 그대로를 말하라(Sagen, was ist)’ ©Spiegel

이 보도는 독일 언론을 통틀어 가장 긴 분량의 ‘바로잡습니다’ 정정 보도로 남을 것이다. 슈피겔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특별 조사위원회를 꾸린 슈피겔은 지난 5월 사건의 발단과 진행 과정, 조직의 문제점 등을 분석한 ‘렐로티우스 사건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렐로티우스는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조금씩 ‘뻥튀기’하던 이야기가 점점 더 불어나 소설을 쓰기에 이르렀다.

기자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시스템 차원의 문제도 많이 지적됐다. 슈피겔 내부의 성과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부 분위기와 이로 인한 기자들의 부담감이 컸다. 슈피겔 내부의 팩트체크 팀인 문헌팀(Dokumentation) 또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렐로티우스 기사의 경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쟁지역 기사가 많아서 팩트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그동안 렐로티우스의 기사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독자의 메일이 몇몇 있었음에도 편집부가 이를 안일하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슈피겔은 특히 이 부분을 뼈아프게 받아들였다. 지난 8월 슈피겔은 사건 이전의 위험 신호를 묵살하고, 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도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던 사회부장 마티아스 가이어(Matthias Geyer)를 해고했다. 

사건을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은 유안 모레노 기자는 지난 9월 ‘수천 줄의 거짓’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모레노가 렐로티우스를 의심하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부터 내부 조사 기간에도 거짓말을 했던 렐로티우스의 행동 등을 담았다. 이 책은 발행 직후 영화 판권 계약까지 맺었다. 이 사건은 이렇게 ‘렐로티우스=역대급 거짓말쟁이 기자’로 정리가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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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 모레노 기자가 지난 9월 발간한 책 ‘수천 줄의 거짓’.

그리고 지난 10월 23일,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렐로티우스 기자가 입을 열었다. 자신에 대한 ‘심각한 거짓과 잘못된 묘사’를 담은 책 출간과 배포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건 것이다. 렐로티우스는 “나는 나의 큰 잘못을 알고 인식하고 있고, 이 소송으로 그것을 피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알고 있지만, 모레노의 거짓된 해석과 거짓된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또한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하나의 인물을 창조했다”고 비판했다. 

렐로티우스가 변호사를 통해 문제 삼은 책의 내용을 보면 꽤 ‘사소한 것’이 많다. 렐로티우스가 매일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느냐 마느냐, 그가 인턴 기자들과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느냐 마느냐 하는 내용들이다. 책의 마지막은 렐로티우스를 병적인 거짓말쟁이처럼 묘사했다. 렐로티우스가 동료 기자에게는 독일 남쪽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며칠 뒤 다른 사람이 함부르크에서 렐로티우스를 봤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렐로티우스는 본인이 비난받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에 대한 거짓이 퍼지는 것을 감내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거짓 기사를 쓴 전직 슈피겔 기자가 참지 못했던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거짓’이 퍼지는 일이었다. 

렐로티우스 소송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적반하장이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거짓은 거짓’이라며 렐로티우스 입장을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사건이 터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모레노를 앞세워 그를 비판하는 책을 내고, 이 책과 영화 판권 판매를 대서특필한 슈피겔의 태도는 과연 최선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덕분에 슈피겔의 ‘렐로티우스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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