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1285호의 표지는 목장갑을 낀 손이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림이다. 지팡이에는 ‘은퇴, 단순노무직, 산재, 빈곤’이라는 글자가 빙빙 돌아가고 있다. 한국의 노인들은 평균 71.8살까지 일하고, 아파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워 빈곤의 굴레를 돌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한국판 ‘하류노인’이 온다”, “가난해 일하다 다치고 가난해지는 노인들”, “‘죽어도 좋습니다 일하게 해주세요’라는 그를 위해” 기사 등 5개 기사로 구성돼있다. 이 중 “가난해 일하다 다치고 가난해지는 노인들”이라는 기사는 노인 3명의 심층인터뷰로, 노인 빈곤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담겨있다. 기사를 쓴 변지민 기자는 기사에서 “노인 빈곤 통계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심각했고 실제 눈앞에 만난 빈곤 노인은 믿기 싫을 정도로 비참했다. 취재를 하며 공포가 몰려왔고 기사를 쓰며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썼다.

그가 심층 인터뷰한 인물 중 한명은 콩팥을 팔려고 알아봤지만 ‘노인의 장기’라 산다는 사람이 없어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인터뷰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은퇴 이후 재취업했지만 재취업한 곳에서 산업재해를 입었다. 2017년 한 해만 60대 이상 노동자 2만4314명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2018년 60대의 산재 승인 건수는 50대에 이어 전체 연령 중 2위다. (관련기사: 한겨레21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

▲한겨레21 1285호 표지.
▲한겨레21 1285호 표지.

변 기자는 취재를 하며 60대 이상의 산재 건수가 높은 것과, 가난을 대하는 노인들의 태도에 놀랐다고 한다. 변 기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보통 정년이 60세부터 65세인데 이 연령층에서 일하다가 다친 사람이 많은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취재를 하다 보니 이것이 ‘한국 노인의 전형’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모든 사람들의 경우는 아니지만 인터뷰를 하며 만난 인물들은 자신의 가난에 대해 힘들다는 인식이 청년층보다 덜하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받았다”며 “유년시절 워낙 가난한 환경 때문에 ‘어렸을 때도 가난해서, 버틸만 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보였는데,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세대에 상관없이 가난을 겪지만,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에 비해 빈곤에 대해 발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몸도 상대적으로 건강하다. 또한 노인들은 법적으로도 차별을 받기 때문에 악재가 겹친다. 기사에도 언급되지만 고령자에 대해 △근로기준법 예외 △산업재해보상보험 감액 △기간제법 예외 △고용보험 예외 등 법적 예외조항들이 존재한다. 변 기자는 “한국에서는 평균 70세까지 일하는데 이런 예외조항에 굉장히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한겨레21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 기사의 인포그래픽 중 일부. 사진출처=한겨레21.
▲한겨레21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 기사의 인포그래픽 중 일부. 사진출처=한겨레21.

그는 “노인들보다 현재 젊은 세대는 빈곤에 대해 발화해본 경험도 많고 불안감도 큰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현재의 젊은 세대가 노인이 돼 빈곤을 느낀다면, 그 불행감은 굉장히 클 것이라고 예상된다”며 “취재과정에서 이러한 젊은이들의 공포심(노인이 되면 빈곤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저출산’하고도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빈곤 노인’의 문제는 산업재해와 산재 인정의 문제, 비정규직 문제, 저출산 문제까지 건드리게 된다. 정년퇴직 이후 노인들은 비정규직에 다시 취직하는 사례가 많고, 이곳에서는 정규직들보다 산재신청이 어렵기 때문에 신청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변 기자는 “고령자들은 연금 이슈에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득 비율 가운데 연금이 굉장히 높아, 복지에 대한 체감도가 높다”며 “좀 더 취재를 해서 고령자들이 연금을 통해 변화하는 정치에 대한 생각, 복지에 대한 생각 등을 기사로 녹이고 싶다. 여성 노인의 빈곤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취재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는 노인 빈곤의 해결책으로 △저소득층 기초연금 확대 △공익형 어르신 일자리 확대 △산재보험 기준 완화 등을 해결책으로 언급한다. 변 기자는 “산재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단기적 해결책”이라며 “중기적 해법은 노인들이 덜 다치게, 사업장을 안전하게 바꾸는 것이다. 사실 이미 여러 대책들이 나와 있지만 처벌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 해결책은 역시 연금 확대와 노인에 대한 법적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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