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일,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최종화를 방송하며 평균 시청률 12%(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그 기록에는 ‘2019년 tvN 드라마 최고 시청률’이라는 상찬이 덧붙게 되었다. 1990년대나 2000년대에 TV를 주로 봤던 사람이라면 의아한 문구일 수 있다. 평균 시청률 20%는 가뿐히 넘기던 시절, 10%는 소위 ‘애국가 시청률’이라 무시받을 수준은 아니어도, 높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기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매체가 무수히 다변화된 2019년 현재, 10%의 시청률은 이젠 감히 달성하기 어려운 꿈의 기록이 되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서서히 하강의 조짐이 보이던 방송 시청률은 2010년대 중반 이후 tvN, OCN을 비롯한 케이블 채널과 JTBC, 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급격한 성장으로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상파 시청률은 눈에 띄게 하락세를 보였고, 케이블과 종편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5%, 1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작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유튜브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위시로 한 OTT 서비스가 2010년대 중후반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입하며 미디어 환경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격전지가 되었다. 동시에 이전처럼 특정 채널, 특정 프로그램에 시청률이 집중되는 모습도 쉽게 보기 어렵게 되었다.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되는 상황이 점차 고착화되자 방송사들은 어떻게든 시청률을 올리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초에 종영한 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과 ‘왜그래 풍상씨’가 각각 최고 시청률 49.4%, 22.7%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이 주목한 것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치 않다. 드라마들은 시대착오적 설정과 표현을 남발하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그 비난은 곧 ‘시청률’로 연결되었기에 시청자들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적 시선과 표현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악화됐다. 이전에 방영해 인기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MBC 드라마 ‘떴다! 장보리’, 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 같은 소위 ‘막장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저하하는 상황에서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모으는 첨병의 역할을 했다.

▲tvN의 '호텔 델루나'. 사진출처=tvN 홈페이지.
▲tvN의 '호텔 델루나'. 사진출처=tvN 홈페이지.

그러나 방송사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TV 시청률은 계속 감소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상파 3사의 경우, 8월 5주~9월 1주 기준으로 지난 한 달 간 닐슨코리아 집계 기준 전국 평균 시청률 10%를 돌파한 프로그램은 KBS1 ‘여름아 부탁해’, ‘뉴스9’, ‘전국 노래자랑’, KBS2 ‘태양의 계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미운 우리 새끼’까지 단 8개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조사 기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10%를 넘겼던 프로그램을 찾아봐도 KBS1 ‘아침마당’, ‘가요무대’, ‘TV는 사랑을 싣고’, MBC ‘나 혼자 산다’가 전부다.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시청률 5%를 넘기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채널 특성상 고연령층 시청자가 다수 포진되어 있는 KBS1가 5% 이상의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하는 프로그램이 다수 존재하는 반면 KBS2는 8개 프로그램, MBC는 3개 프로그램, SBS는 11개 프로그램만이 시청률 5% 이상을 꾸준하게 기록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프로그램들이 TV 시청률이 낮은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았던 것일까. 전반적으로는 KBS1의 ‘가요무대’, ‘전국 노래자랑’, ‘시니어토크쇼 황금연못’ 같이 소위 ‘장수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 동시에,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흥미로워 할 소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KBS1과 KBS2의 일일드라마, KBS2의 주말 저녁드라마는 드라마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급격하게 감소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10-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상황이다.

KBS1을 통해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시청률 상위권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다른 채널에서도 상황은 큰 차이는 없다. KBS2에서는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살림하는 남자들’, MBC에서는 ‘나 혼자 산다’, ‘복면가왕’, ‘구해줘! 홈즈’, SBS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인 ‘미운 우리 새끼’를 비롯하여 ‘생활의 달인’, ‘불타는 청춘’, ‘백종원의 골목식당’,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궁금한 이야기 Y’, ‘의사 요한’, ‘정글의 법칙’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SBS의 경우, 시사교양과 예능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꾸준히 시청자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의 존재가 방송국에게 위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시청률 5%를 넘기는 것도 버거운 가운데, 극히 일부의 프로그램만이 시청률 10%를 넘고 다시 그 중에서도 극소수의 프로그램만이 20%의 벽을 돌파한다. 프로그램의 성격이나 주제마다 시청자의 호응이 달라지는 만큼, 프로그램 시청률이 항상 일정하게 분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가운데 일부 프로그램만이 흥행하는 상황은 TV를 관람하는 시청자들의 구성이 습관적으로 KBS1 채널만을 보거나, 또는 일부 자신들의 흥미를 만족하는 몇몇 프로그램에만 채널을 돌리는 이들로 채워져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방송사들도 가만히 앉아서 시청률 저하를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다. 일찌감치 SBS는 뉴미디어 채널 ‘스브스뉴스’, ‘비디오머그’, ‘모비딕’ 등을 개설하며 스마트폰이나 PC로 영상을 보는 것이 익숙한 청년 세대들을 위한 별도의 전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모비딕’을 통해 방송되었던 ‘양세형의 숏터뷰’, 독특한 인기를 끌어모아 끝내 독립적인 채널을 만든 ‘문명특급’은 SBS가 뉴미디어 채널로 만든 대표적인 성과이다. 다른 방송들도 SBS를 뒤따라 뉴미디어 전용 뉴스나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지만, 종편 채널인 JTBC가 설립한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통해 제작한 ‘와썹맨’. ‘워크맨’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보이는 양적 성과는 드문 상황이다.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

도리어 새로운 시청자를 유입하겠다는 명목으로 이전과 차이 없거나, 오히려 또 다른 논란을 낳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이하 ‘마리텔 V2’)가 대표적이다. 한국 방송 최초로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TV라는 올드 미디어와 접목시킨 시도는 분명 흥미롭고 참신한 시도였지만, 긴 휴식 끝에 돌아온 ‘마리텔 V2’은 공교롭게도 많은 시청자들이 우려하던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의 문제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사건을 만들었다. 사건의 당사자는 정형돈과 함께 사실상 고정 게스트 수준으로 출연하고 있는 前 JTBC 아나운서 장성규다. 프리랜서를 선언하기 직전부터 JTBC ‘아는 형님’에서 ‘선을 넘는’ 컨셉으로 자신의 방송인 캐릭터를 구축했던 장성규는 자신이 선을 넘는 컨셉을 지닌 것을 명목으로 성적으로 혐오감을 줄 수도 있는 발언을 뱉기도 했다.

MBC는 이러한 캐릭터성이 ‘마리텔 V2’의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지속적으로 자사의 유튜브와 페이스북 채널을 통해서 장성규의 발언을 별도로 편집한 영상을 배포하고 있지만 이는 양날의 칼이다. 남성 위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일만한 발언을 방송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은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쾌감을 줄지 몰라도, 해당 발언에 문제 의식을 가지거나 불편함을 가지는 시청자에게는 해당 프로그램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방송사 전반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을 늘릴 가능성 역시 농후하다. 인터넷 문화가 현재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문제나 고민 의식 없이 표현의 폭을 무작정 넓히는 것은 결코 좋은 해답이 되긴 어렵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방송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보편성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을까. 기존 중장년층, 노년층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은 오랜 시간 굳어진 고정관념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히려 고정관념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세태를 왜곡하고 있다. 마치 ‘막장 드라마’나 ‘슈퍼맨이 돌아왔다’, ‘미운 우리 새끼’ 등의 프로그램이 결국 종류는 달라도 모두 ‘가족의 소중함’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작정 새로 유행하는 프로그램을 급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앞서 말했듯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요소가 산재한 것이 현실이다. 도리어 지금까지 보편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건, 쉽게 방송에서 녹여내지 못했던 가치를 새로운 프로그램의 흐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KBS 정도만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함께 선보이려 노력 중인 듯하다. 몇 차례의 파일럿 방송을 거쳐 2018년 11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KBS1의 ‘거리의 만찬’은 기존 시사 프로그램의 고루함과 진부함을 넘어 여성 출연진이 직접 이슈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방문해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컨셉으로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실험을 시도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다뤄낸 이슈들 또한 성소수자, 페미니즘 운동, 불안정 노동자 등등 삶의 주변에 널려 있지만 제대로 초점을 받지 못했던 문제들을 응시하고 있다.

2017년에 KBS 스페셜로 방송되어 호응을 얻고, 이후 같은 해 영화 개봉까지 이어진 ‘땐뽀걸즈’나 2018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과 토크를 조합한 ‘저널리즘 토크쇼 J’, 지난 7월부터 방송을 시작해 유튜브로의 진출을 기획 단계부터 의도한 ‘지식채집프로젝트 베짱이’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다큐멘터리나 미디어 비평, 30분 내외의 미니 다큐멘터리라는 컨셉이 이전까지 없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기존에 존재하던 포맷의 폭을 넓히고, 새롭게 등장한 시청자와 매체를 접합하려는 시도는 이전과는 다른 색다른 흥미와 재미를 낳고 있다.

비록 이들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의 측면에서는 압도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지상파 방송이 지닌 공영성의 측면에서 민영 방송에서는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측면을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는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다. 비록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는 ‘비상경영대책’ 따위의 구조조정안이 이러한 시도를 더욱 확산시키는 대신, 찬물을 끼얹을까봐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 계속 기존의 프로그램을 답습하는 길을 걷는다면, 지상파의 위기는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길을 걸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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