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일 방송의 날을 앞두고 한국언론정보학회와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지상파 방송에 쓴소리가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방송 공정성 투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3층 회견장에서 열린 ‘한국 방송 산업의 위기와 대응방안’에서 박정훈 한국방송협회장(SBS 사장)은 지상파 위기를 강조했다. 

박 협회장은 “국민에게 사랑받았던 콘텐츠들이 이제는 냉소와 무관심 속에 있고, 자책하고 있다”며 “원래 9월3일이면 정계와 재계 등이 모여 연회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하루의 축제도 즐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협회장은 “연회 등을 열기보다 지상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8월 광고 상황을 보니 지상파 매출 현황이 참담하다 못해 참혹하다. 정책 당국과 함께 우리 스스로 대비를 잘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정책 당국도 책임이 있다. 중간광고가 아직도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책 당국의 책임”이라며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있어야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주최로 '한국 방송산업의 위기와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주최로 '한국 방송산업의 위기와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반면 발제를 맡은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지상파 위기는 종사자들이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한가지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지상파 위기는 지난 10년 결과물이라고 감히 판단한다”며 “매체를 바꿔나가야 했던 시기에 공정성 문제를 두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 공정성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끝나면 (방송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를 남기게 했다. ‘지상파가 정상화하면 때깔이 고와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대단히 아프게도 그렇지 않았다”며 “예를 들어 잘나가는 작가들의 시나리오가 3~4군데를 돌고 나서야 지상파에 들어오는 상황은 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지상파와 공영방송이 스스로 상대적 안정성이라는 또 하나의 버블에 안주했고 시민, 이용자와 직접 응대하기보다 상층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며 “또 법제, 콘텐츠 측면에서의 우위를 지렛대 삼아 경쟁자를 제어하려는 전략에 치중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상파가 지향하는 모형은 가치·실용론적으로도 현 시대와 일치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차 확인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기회를 놓쳤으며 개혁 동력을 마련하기 부족하다”며 “제도 역시 바꿔야 하지만 스스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방송에서 추구하는 공익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 창출하고 보존해야 할 ‘핵심적 공익’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민하고 적응력 높은 산업으로 스스로 재정의하고 그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영국 채널4의 OTT 전략을 사례로 들었다. 해당 사례를 보면 TV를 통한 주문형 시청이 매년 24% 성장하고 있고 자사가 보유한 콘텐츠뿐 아니라 대표적 영국 프로그램의 온라인 배포권을 확보했다. 이 플랫폼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독자 콘텐츠도 제공했다. 또 시청자 데이터에 기반을 둔 타깃형 광고로 전환해 디지털 매출을 성장시켰다는 것.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도 시청자들이 시간을 줬지만 지상파 방송이 계속 시청자들을 실망케 했다고 지적했다. 

정 정책위원은 “지상파가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 즉 국가적 재난 상태나 커다란 이슈가 사회를 점령할 때 지상파는 또 실망을 줬다”며 “산불 보도나 특정 장관 후보자 보도에서 드러났듯, 그저 무리 지어 몰려다니면서 이슈를 쓰는 수준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정상화한 이후에도 시청자들이 기다렸던 방송을 보여주지 못했고 더 이상 시간을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정 정책위원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업자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사업자 노력과 함께 종편 승인 시기의 특혜 등 불공정 규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 지상파가 주장하고 있는 중간광고 문제는 근원적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지금까지 시민사회가 말해왔던 대안에 가시적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수영 MBC 전문연구위원은 지상파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이 억눌린, 최소 10년의 시간 동안 나타난 문제가 1~2년 만에 해결될 수 없다”며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각각의 주체들이 무엇을 하며 긍정적 방향을 만들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준희 겸임교수는 “방송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이나 국민에게 ‘기다려주세요’라고 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더 노력하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며 “종사자들 스스로가 ‘비대칭 규제’ 등 때문에 못하겠다고 말해선 안 된다. 제작 후 철저한 분석을 통해 프로그램 질을 높여야 한다. 방송국에서도 이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확실히 하며 현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한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국장은 토론을 들은 후 “비대칭 규제를 풀어나갈 이슈로 중간광고가 있는데, 실무 중이지만 아직까지 방통위 내에서 논의 중”이라며 “다만 중간광고 문제 해결만으로 지상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외 미디어렙 제도, 편성 규제 문제 등을 관행 수준이 아니라 시청자와 방송사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 규제 형태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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