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2~3일씩 밤을 새우며 14년 일한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 이동민씨(37·가명)는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인건비를 올려 달라’고 요구한 지 며칠 만에. 기획제작국 하아무개 국장은 요구를 듣자마자 ‘그만둔다는 말로 듣겠다’며 소리쳤고 며칠 뒤 모든 프로그램에서 이씨를 하차시켰다. 지난해 4월 일이다.

이씨의 요구는 소박했다. 이씨는 매주 목요일 1시간 방영되는 ‘TV여행 아름다운 충북’ PD였다. 막내 작가는 회당 30만원, 책임 PD인 자신은 40만원을 받았다. 2일 간 촬영해 3일 간 편집하면서 다음 주 아이템까지 준비하는 이들의 인건비는 한 달 120~160만원. 2012년 막내작가 한 달 급여가 80만원이었다. 이씨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인건비 인상을 말했고 잘렸다.

충북 민영방송사 청주방송(CJB)은 이씨와 퇴사 건을 두고 1년여 법적 다툼 중이다. 이씨는 지난해 9월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청주지법에 냈다. 이씨는 “부당 해고된 지난해 5월부터 복직할 때까지 월 300만원 급여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14년차 정규직 해고는 취업규칙, 단체협약, 노동법을 따라야 해 어렵지만 이씨 해고는 ‘연출자 교체’ 말 한마디면 가능했다. 그는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청주방송에서 고용계약서나 용역계약서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 청주방송에서 일했던 이동민(가명) PD가 '청주방송 지방보조금 실무책임자'로 청렴서약서까지 작성한 내부 문서.
▲ 청주방송에서 일했던 이동민(가명) PD가 '청주방송 지방보조금 실무책임자'로 청렴서약서까지 작성한 내부 문서. 그래픽=이우림 기자

이씨 근무 형태는 정규직 PD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2004년 조연출로 입사한 그는 2010년부터 연출 PD를 맡았다. 그는 최근까지 2개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종종 특집 생방송 프로그램이나 특집쇼 연출도 함께 했다. 프로그램 최종 검수·송출부터 출연진 섭외, 프로그램 구성·촬영·편집, 중계차 디렉팅 업무까지 책임졌다. 매일 윗 사람에게 업무보고도 했다. 내근일 때는 매일 오전 8시30분 전에 출근해 6시 이후 퇴근했고 매주 5~7일 일했다.

청주방송 내 모두가 그를 ‘PD’라 불렀다. 청주방송은 이씨에게 ‘청주방송 기획제작국 PD’ 명함도 파줬다. 전직 작가 A씨는 “프리랜서란 사실을 알기 전엔 누구나 정규직 PD로 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하 국장에게 일일업무보고를 했다. 청주방송 지시로 프로그램을 맡고 정규직 PD 지휘를 계속 받으면서 일한 데다 이미 많은 프로그램·행사를 맡아 다른 회사에서 일할 엄두도 감히 못 냈다”고 법원에 증언해 준 직원도 있다.

그는 PD 업무 외에 행정 업무도 떠안았다.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그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충북’을 찍기 위해 충북 내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는데 보조금 신청 서류 작성부터 협의, 각종 기안문, 정산 서류 작성까지 이씨가 맡았다. 회사 내부 경영과 관련돼 정직원이 아니면 맡기기 힘든 업무다.

실제 2016년 5월 청주방송이 음성군청에 낸 서류엔 이씨가 ‘지방보조금 실무책임자’로 보고됐다. 이씨는 이때 책임 PD로 ‘보조금 청렴 이행 서약서’에 서명도 했다. 음성군은 그 해 1650만원을 지원했다. 청주방송은 2017년 청주시로부터 1650만원을 받을 때도 보조금 사업 담당자로 이씨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청주방송은 “프리랜서인 이씨에게 해고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 국장은 지난 9일과 1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소송 중인 사안이니 결론이 나면 답하겠다”며 “보조금 사업 같은 건 당연히 회사가 딴다. 그후 회사가 AD, FD 등 프리랜서에게 일을 준다. 프리랜서에게 모든 일을 맡기진 않는다. 프로그램을 찍어오라는 지시를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동민(가명) PD가 보조금 사업자 담당자로 지정된 청주시청에 보내는 정산보고서.(왼쪽) 오른쪽은 이 PD가 충북 내 지자체들과 보조금 사업을 하며 주고받은 메일. 그래픽=이우림 기자
▲이동민(가명) PD가 보조금 사업자 담당자로 지정된 청주시청에 보내는 정산보고서.(왼쪽) 오른쪽은 이 PD가 충북 내 지자체들과 보조금 사업을 하며 주고받은 메일. 그래픽=이우림 기자
▲ 이 PD가 2016년 11월27일 촬영한 충북 청주시 내 모 교회에서 열린 장로 취임식.
▲ 이 PD가 2016년 11월27일 촬영한 충북 청주시 내 모 교회에서 열린 장로 취임식.

청주방송 간부들은 이런 프리랜서를 십수 년 사적으로 이용했다. 이씨는 2016년 11월27일 청주방송 회장의 교회 장로 취임식을 촬영해야 했다. 일요일에 쉬고 있던 이씨에게 하 국장이 전화로 ‘회사에서 카메라 들고 교회로 와 회장을 찍으라’고 지시했고 이에 이씨는 그날 2~3시간 동안 교회에서 ‘공짜 노동’을 했다는 것. 하 국장은 1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런 지시한 적 결코 없다”고 부인했다.

이 외에도 아무개 국장이 ‘술자리까지 운전해 달라’고 지시해 이씨가 운전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씨는 아무개 국장을 집에서 골프장까지 바래다주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귀가까지 챙겼다.

남자 프리랜서들은 국장 지시로 그의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수년 전 퇴사한 프리랜서 C씨는 “설과 추석에 간부들 집에 인사하러 가지 않은 프리랜서들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며 “대학원 방문해야 한다며 서울까지 PD 운전 수행을 한 동료도 있었다”고 말했다.

22살에 입사한 이씨에게 청주방송은 “20~30대 청춘을 다 바친 곳”이다. “한 달이 50일이면 좋겠다”며 방송사에 열정을 쏟았던 20대, 그의 별명은 ‘라꾸라꾸’였다. 일 때문에 집에 갈 수 없었던 그가 회사에서 애용하던 침대 브랜드가 별명이었다. 이씨는 “남은 후배들이 전철을 밟지 않도록, 판례를 남기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며 “비정규직 남용은 전국 민영방송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문제”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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