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이 넘게 앙골라에서 온 루렌도씨 가족 6명은 난민심사를 요청하며 인천공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천공항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잠이며 밥이며 병 치료며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곳이지만 그곳을 떠날 수 없다. 콩고 출신인 그들은 앙골라에서 콩고인에 대한 추방과 탄압이 심해져 한국으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루렌도씨는 4명의 자녀들과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올해 1월 9일 정부는 그들 가족이 낸 난민인정회부 심사에서 불회부(난민인정심사에 회부되지 않음) 판정을 내렸다. 즉 난민인정심사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한국은 1992년 12월에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 ‘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하 난민법)’을 제정하여 2013년 7월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난민인정률은 국제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법무부가 밝힌 한국의 난민인정률(난민심사 결정자 대비 난민인정자 비율)은 2018년 3.7%로, 작년 난민심사가 완료된 3879명 중 144명이 난민인정을 받은 것이다. 세계 평균 난민인정률은 29.8%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4.8%이다. 난민인정률은 난민심사가 종결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루렌도씨 같은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난민인정이 아닌 인도적 체류 허가자 514명까지 포함한 난민보호율도 17%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난민인정 절차의 부실함과 자의성은 유엔난민기구와 국내 난민인권단체들도 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문제다.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난민심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준이나 난민법, 난민에 관한 국제기준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전문성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통역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고 난민 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까지 난민심사를 담당한 직원 수는 전국 39명이었다. 올해 통역 5명을 포함, 91명으로 증원됐지만 난민신청자를 고려하면 매우 적은 인원이다. 난민심사 기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지난해 6월29일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지난해 6월29일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게다가 난민심사과정에서 난민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통역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왜곡 편집 되는 경우도 많다. 6월18일 난민인권센터가 개최한 ‘난민 면접 조작 피해자 증언대회’에 따르면, 난민신청서에 기재한 내용에 대한 답변이나 신청사유도 통역과정에서 임의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쿠데타에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된 후 위협을 느꼈다”고 난민신청자가 답했으나, 통역자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로 바꾸었다. 박해의 증거가 난민 인정의 핵심인데 이를 삭제하고 전달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난민심사과정에서 신청자의 발언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고 20~30분 만에 끝낸다.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문제임에도 형식적으로 심사하는 것이다. 법무부도 통역 왜곡으로 난민심사에서 탈락한 사실을 인정했다. 통역왜곡으로 탈락한 57명 중 55명은 법무부가 직권으로 처분을 취소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난민협약과 난민법의 취지에 맞게 난민인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난민을 공항에 묶어두는 난민심사제도

루렌도씨 같은 난민심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는 난민법의 모순과 처우지원 공백으로 인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난민법이 시행된 2013년부터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출입국항 난민신청제도’가 운영됐다. 그 후 출입국항에서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만큼 모순과 공백으로 인한 피해도 늘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 난민들은 법무부와 면담 절차를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은 정식 절차가 아니어서 ’난민신청을 할 만한 사람인지’를 먼저 판단하는 ‘난민심사 회부·불회부 심사’를 받아야 한다. 회부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 난민신청을 접수할 수 있다. 공항에서 이뤄지는 ‘난민심사 회부’ 심사통과 비율은 2017년 10%, 2018년 46.7%다. 왜 출입국항에서 하는 난민신청은 난민신청이 될 수 없는가. 난민법의 난민 정의규정(2조)에 ‘대한민국 입국’을 명시하면서 입국 전인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은 신청자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자는 난민 신청/심사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자신이 살던 나라를 피해 망명을 결심한 만큼 출입국항에서 난민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항에 있는 난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난민인권네트워크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공항에 구금된 난민들은 변호인 접견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주국제공항에서 변호인 접견이 성사된 사례가 거의 없다. 헌법재판소가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난민에게는 최소한의 식량권, 건강권, 사생활조차 보장되고 있지 않다. 난민에게는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가질 권리’조차 없다. 독일계 유대인인 아렌트도 난민이었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기까지 18년 동안 그는 무국적자였다. 누구보다도 권리가 박탈된 난민의 상태를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민에게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인권은 ‘국가에 속한 특정 집단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 또는 인류에 속할 수 있는 모든 개인의 권리가 인류 자체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적어도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처우가 보장되도록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

난민혐오를 넘어서 인권의 보편성을 되돌아봐야

그러나 난민제도의 취약함과 이를 무마시키려는 국가의 책임 떠넘기기식 태도는 난민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 삶의 불안과 공포를 나보다 약한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쉬운 현실에서 국가의 무책임은 혐오로 이어진다. 작년 제주 예맨 난민에 대한 혐오가 그랬다. 한국 사회에 일상적으로 상존하는 성폭력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예맨 난민에게 떠넘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예맨 난민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다.

그럼에도 난민혐오는 기회를 엿보며 수시로 터져 나온다. 얼마 전 인천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왔다. 부실한 수도관 관리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만 이를 난민혐오로 연결시키려 는 기사가 나왔다. 서울 문래동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은 이슬람난민의 소행일 수 있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상 ‘이슬람 난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 기사는 바로 내렸지만 아직도 몇몇 카페에서 해당 기사를 볼 수 있다. 이는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1923년 관동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과 유사하다. 

세계 곳곳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등등의 이유로 박해받는 나라를 떠나온 난민들이 있다. 전쟁과 가난, 자연재해, 종교 갈등 등이 전 세계에 있는 현실에서 난민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고 김대중 대통령도 난민이었다. 그를 받아주는 국가가 없었다면 그는 한국으로 소환돼 사형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 난민으로 받아주었기에 한국 정치의 독재적 성격을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렇듯 어떤 국가에서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사람의 생명을 박탈해서라도 비판세력을 전멸시키려 할 때, 난민은 타국에서 독재정치를 증언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혹은 어떤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종교적 획일을 강요할 때, 타국에서 난민으로 사는 그의 존재는 신앙의 자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난민은 인권의 보편성과 인간존엄성을 존재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 난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세계가 더 민주적이고 다원성이 인정되는 사회로 가는데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난민은 일국에 갇힌 존재의 공포와 불안을 다양한 세계의 다른 가능성을 만들게 하는 존재다. 난민을 타자화하는 것을 넘어서 세계적 시야와 인권의 보편성에 대해 돌아본다면 혐오를 넘어설 힘을 비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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