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와 기자가 일대일로 나누는 인터뷰, 그것도 우발적이고 예측하지 못한 말들이 오가는 생방송으로 시민과 다른 언론 종사자들이 지켜볼 대통령과의 대화는 단순한 대담이 아니다. 약 90분 간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로 한 방송사가 시민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며 또 다른 층위에서 다양한 이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내는 발화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논란이 되었던 KBS의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는 송현정 기자의 “끼어들기”와 같은 무례함이나 선택한 단어의 적절성, 또는 표정과 같은 태도의 문제만으로 협소하게 시민의 반응을 이해할 수는 없다. 거칠지만 이번 KBS의 대담 방송이 낳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취임 2주년을 맞아 송현정 KBS 기자와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취임 2주년을 맞아 송현정 KBS 기자와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KBS와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방송사가 생방송 대담의 질문을 준비하며 인터뷰이에 집중할 때 놓치기 쉬운 커뮤니케이션이 이 지점이다. 종사자들은 대통령과 같이 만날 기회가 흔치 않은 인터뷰이에게 던질 ‘어려운 답변’이나 ‘예상 답변’을 준비하지만, 그 질문이 시청자에게 어떤 계층이나 집단의 언어나 질문으로 이해될지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독재자’ 질문이 그렇듯 기자의 관점에서는 현재 장외 투쟁 중인 자유한국당의 표현을 옮겨서 그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 자체는 시청자에게 대통령에 대한 무례함보다 질문을 대신해 주길 원하는 시민에게 특정 정당의 입장을 전달하는 질문으로, 나아가 질문으로 대변해야 할 시민을 특정 정당이나 정파로 구분한 행위로 읽혀졌다. 이 질문은 자유한국당 공세에 대해 ‘대통령에게 답변할 기회’를 주려는 의도였을 수 있으나, 또 다른 대화의 상대인 시청자에게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 묻는 질문’으로 해석된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대통령과의 대담은 KBS 기자가 질문을 던져 대통령의 답변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공영방송 KBS가 얼마나 시민의 다양한 입장과 질문을 대의하는지 평가받는 자리였던 셈이다. 나아가 이 대담은 지난 정권 동안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던 KBS가 마주한 중간시험 시간이었다. 이런 시험의 결과와 평가는 다시 또 다른 층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확산되었다.

미디어와 이용자의 커뮤니케이션

KBS나 청와대도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이 대담은 그 자체로 중요한 뉴스 아이템이자 분석과 평가의 대상이다. 그러나 늘 취재와 보도의 주체였던 KBS는 이 대담으로 스스로 취재원이자 보도 대상이 되었다. 대담이 또 다른 콘텐츠로 재생산될 때 90분 분량의 내용이 모두 전달될 수 없다. 파편적으로 이어 붙인 기자의 질문들, 생방송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기자 표정의 순간 캡처 사진, 특정한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막 등으로 만들어진 콘텐트가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인터넷 이용자 사이의 대화 소재가 된다. 대통령 대담이라는 콘텐트는 다양한 프레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재생산된 대담 콘텐트는 기자의 질문보다 인터뷰이의 답변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번 KBS의 대담은 답변이 아닌 기자의 질문과 KBS에 대한 평가에만 집중됐다. 이렇게 편집된 콘텐트로 인해 중요한 현안 관련 대통령의 답변에 대한 평가나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전망은 사라지고 기자와 KBS에 대한 평가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풀영상을 본 시청자라면 기자의 ‘끼어들기’는 대통령 답변에 대한 ‘확인’이거나 시청자를 위한 ‘강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집된 화면과 자막, 기자의 순간 캡처 사진은 풀영상을 보지 않은 시민에게도 답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질문에 대한 평가만을 내리게 만든다.

 

▲ 지난 9일 방송된 KBS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송현정 KBS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모습.
▲ 지난 9일 방송된 KBS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송현정 KBS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모습.

언론 종사자들의 커뮤니케이션

 

기자의 질문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시청자의 몫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 대한 평가는 현장에 함께 있었거나 가장 먼저 보도를 접한 자사와 타사의 기자들, 언론 종사자 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KBS의 대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의 답변에 대한 평가보다 같은 일을 업으로 하는 기자들의 질문과 태도에 대한 평가가 먼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통령과의 대담에 대한 평가는 기자와 시민들이 동시에 수행하는 활동이 되었다. 그것도 방송이 끝난 후가 아니라 방송 중 실시간으로 시민들의 평가가 진행되는 와중에 언론 종사자 사이의 대화나 내부 평가가 소셜 미디어로 노출된 것은 치명적이었다. 자사 소속 기자인지의 여부를 떠나 모든 언론 종사자들은 시간을 두고 오랜만에 이루어진 공영방송과 대통령 간의 일대일 대담에 대한 평가를 지켜봤어야 했다. 시청자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담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은 부정과 긍정의 여부를 떠나 시민에게 언론이 스스로를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 아닌 ‘평가의 주체’로 여긴다는 오해를 낳기 때문이다.

언론과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이렇게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여러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또 다른 대화의 상황은 언론과 시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어려운 문제로 이어진다. 지난 정권의 시기 동안 언론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언론의 보도 내용을 넘어 언론 모두를 평가와 비판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특히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어떤 질문을, 어떤 태도로 던지는 지는 늘 중요한 관심사였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질문하고 받아쓰는 기자들, 침묵하며 병풍처럼 서 있는 기자들이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언론사의 이사장과 사장이 바뀌었다고 하여 이러한 평가의 시선이 달라질리는 없다.

그래서 이번 KBS의 대담 방송이 가져온 논란은 특정한 지지 세력의 반발이나 방송에 대한 시청자 평가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공영방송의 ‘정상화’ 투쟁에서 언론 종사자들이 만났던 ‘지지하는 시민’은 이미 ‘평가하고 주장하는 시민’으로 다가온 지 오래다. 물론 이런 평가는 공격적 언사와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넘쳐나는 말들로 던져질 수 있다. 그러나 언론 종사자라면, 무엇보다 시민을 대의하고 시민의 요구를 전달할 매개로서의 언론 종사자라면, 지금의 과격한 언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성찰할 해석의 소재로 삼아야 한다. 순진한 제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인해 자칫 기자를 비롯한 언론 종사자와 시민 간의 대화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지금 언론 종사자에게 정치권의 공세, 정부 관료들의 언사, 대기업 총수의 발언에 대한 인용과 해석이 아니라 시민의 발화와 언어에 대한 해석과 고민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어쩌면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 정상화의 시작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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