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합성 사진 유포, 강제 키스, 남성 간 성폭력, 취재원 성희롱… 지난 40여 일 동안 ‘#MeToo’(미투·나는 고발한다) 운동 및 제보 등을 통해 드러난 언론계 성폭력 사건의 종류다.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못해 기사화 되지 못한 사건을 고려하면 사건 수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언론계 ‘미투’ 해시태그 운동은 지난 2월7일 한 전직기자의 피해 사실 폭로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최소 5건의 미투 고발글이 게시됐다. 미투운동이 이어지는 동안 목격담 등의 제보도 계속됐다. 기자들 스스로 자사의 성차별 문화를 고발하는 리포트가 나오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월29일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 후 드러난 언론계 성폭력 사건을 일자 별로 정리해봤다.

2월7일, 첫 #미투 “직급이 낮은 여성에게 사회는 잔인했다”

첫 미투 글로 폭로된 사건은 현재 징계 결정만을 남겨놓고 있다. 변아무개 전 기자는 2월7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 직장이었던 파이낸셜뉴스 조아무개 부장기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 이후 이직한 YTN에서 양아무개 기자로부터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는 말을 듣는 등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고발했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파이낸셜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파이낸셜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폭로 직후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에 돌입했던 파이낸셜뉴스는 가해자 면담조사 등을 거쳐 지난 주 중 사실관계 파악을 마쳤다. 사건은 인사위원회로 회부돼 이번 주부터 징계 논의에 돌입할 예정이다. 진상위 관계자는 “공정성을 위해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인사위원이 제외됐고 보다 객관성을 담보한 위원으로 채워졌다”고 밝혔다. 조 기자는 자택대기 중이다.

YTN은 고발 직후 양 기자에 대한 징계 논의에 착수해 일주일 여 후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해당 기자는 고발글이 게시된 당일 “저의 부주의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을지 깊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사과문을 썼다.

변 전 기자는 “제 고백이 단 한 분에게라도 ‘이래서 여자를 뽑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됐길 기도하며 잠들겠다”며 미투 글을 끝맺었다.

2월7일 밤, ‘남성 간 성폭력’ 언급돼

같은 날 밤, 한 경제지와 통신사에서 있었던 남성 간 성추행 사건이 언급됐다. 모 경제지에서 일했던 A씨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그 회사의 한 부장이 남성 기자들에게 강제로 뽀뽀를 하거나 키스를 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이라며 “명백한 성추행인데, 회사가 문제제기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여서 그대로 넘어가곤 했다”고 전했다.

▲ 지난 2월7일 익명의 기자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언론인 게시판에 남성 간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 지난 2월7일 한 익명의 기자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언론인 게시판에 남성 간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한 기자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언론인 게시판에 ‘남자한테 성추행 당해봤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는 회사의 한 고위급 간부가 남자 후배 기자들의 입에 강제로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도 당했다며 “그에게 당한 기자들이 한두 명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적었다.

2월11일, ‘음란물 합성 사진’ 유포

지난 2월11일 내외뉴스통신 직원 20여 명이 있는 단체카톡방에 음란물 합성 사진이 유포된 사실이 확인됐다. 남여 배우 한 쌍이 나체로 성관계를 하고 있는 포스터에 한 남성 간부의 얼굴과 여성 PD의 얼굴이 각각 합성된 사진이 공유된 것이다.

▲ 합성에 이용된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왼쪽)과 '사랑과영혼' 장면. 당사자 동의없이 합성 사진이 제작됐다.
▲ 합성에 이용된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왼쪽)과 '사랑과영혼' 장면. 당사자 동의없이 합성 사진이 제작됐다.

합성 사진은 이밖에도 4장 가량이 더 있었다. 이들 사진의 배경은 음란물은 아니고 연인으로 분한 배우들이 신체를 밀착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브로크백마운틴, 타이타닉, 사랑과 영혼 등의 영화 장면이 사용됐다. 피해자는 남성 간부 및 여성 PD, 여성 기자 및 남성 기자로 총 4명이었다. PD 3명이 장난으로 시작해 서로 경쟁하듯이 만든 합성물이었다.

‘역대급이다’, ‘안구테러’, ‘같이 먹고 싶다더니’, ‘ㅋㅋㅋㅋ’ ‘더 센거 없느냐.’ 카톡방에 있던 일부 PD 및 기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 피해자는 사진 제작자와 피해자들을 희롱한 동료들에 대해 회사에 문제를 제기해 사과를 받았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 논의는 없었다. 분위기를 조장해 사과를 요구받았던 한 남성 PD는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했으나 최근 재고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2월14일, 언론인의 언론인을 향한 #미투

2월14일, KBS 기자들은 “KBS_MeToo:KBS 기자들이 말한다” 영상을 공개했다. 언론사가 자사의 성차별 문화를 폭로하며 미투운동에 동참한 유일한 사례다. KBS 기자들은 “여기자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단란주점에 가서 도우미들을 부르고 그런 일들이 부지기수로 있었다” “회식자리 같은 데에서 간부나 부장 옆자리에 앉아라, 술을 따라라, 이런 식의 강요는 거의 애교(였다)” 등의 증언을 내놨다.

▲ KBS_MeToo:KBS 기자들이 말한다(1)박에스더·이지윤 기자 영상 화면 갈무리.
▲ KBS_MeToo:KBS 기자들이 말한다(1)박에스더·이지윤 기자 영상 화면 갈무리.

이 시도는 KBS 내 다양한 구성원에게 미투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했다는 측면이 있다. 김시원 KBS 기자는 ”우리가 이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다뤄보지 못한 분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가 있다”며 “그런 제보를 받기 위한 것도 있지만 우선 미투 운동 동참한 분들을 홀로 두지 말자, 우리부터도 먼저 동참하자는 무브먼트(운동적인)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월 중순이 지날 무렵,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던 KBS 과거 성폭력 사건이 폭로됐다. 전직 리서치직원 박아무개씨는 2012년 6월 1박2일 부서 MT 자리에서 백아무개 기자가 자신의 신체를 만지고 강제키스를 하는 등 강제추행을 했다고 주장하며 ‘#미투’ 태그를 달았다. KBS 파견 노동자였던 B씨는 2년 전 최아무개 촬영기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가해자 측에 민사소송을 걸었고 2심 재판부는 ‘직장 내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인정했다. B씨는 지난 2월20일 KBS 측에 “직장 내 성희롱이 명확히 인정된다”며 “빠른 시일 내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리길 바란다”는 의사를 전했다.

▲ 언론계 미투운동에 참여한 박아무개씨의 블로그 글 캡쳐
▲ 언론계 미투운동에 참여한 박아무개씨의 블로그 글 캡쳐

KBS 측은 박씨의 성추행 미투 사건과 관련해 감사를 진행 중이다. KBS 관계자는 “당사자 조사가 진행됐는지 등 구체적인 과정은 확인해줄 수 없으나 감사가 진행 중인 것은 맞다”면서 “B씨의 징계 요청 건도 관련 부서에 전달돼, 그 부서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월27일, 취재원의 #미투 올라와

익명 앱 ‘블라인드’엔 홍보대행사 직원이었던 아내가 4년 전 한 일간지의 김아무개 기자로부터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자신을 남편이라고 밝힌 익명의 작성자 C씨는 “그 분은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귓볼과 입술을 만졌고, 남자친구와 속궁합이 중요하다 뭐 블라블라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면서 “당시 사과는 회사대 회사로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C씨는 “사회 초년생인 홍보대행사 여직원들에게 제발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metoo 태그를 달았다.

▲ 지난 2월 말 익명 앱 ‘블라인드’엔 홍보대행사 직원이었던 아내가 4년 전 한 일간지의 김아무개 기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 지난 2월27일 익명 앱 ‘블라인드’에 홍보대행사 직원이었던 아내가 4년 전 한 일간지 기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김 기자는 이와 관련해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 그런 행동과 말은 전혀 한 적이 없었고 볼터치가 있었으나 그와 관련해선 몇 일 후 양 쪽 회사의 팀장 등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사과를 했다”면서 “이 일로 책임을 진다고 사표를 내고 이직했다. 그런데 이후로도 사실관계가 다른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남편이 썼다고 하는데 당사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2월28일, 성추행 피해 주장에 ‘징계’ 내린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전직 기자 박아무개씨는 2015년 ‘밤 10시 넘어서까지 술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주의’ 징계를 받았다. 술자리 이야기는 박씨가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건과 관련해 쓴 진술서에 나온 내용이었다. 파이낸셜뉴스는 성추행 사건에 대한 징계 논의가 끝나기전에 피해자 박씨에 대한 징계 절차에 돌입한 셈이다. 징계 명목은 사내질서 위반으로, “회사내 직원 간 상호 인격을 존중해 예의와 우애를 지키지 않았고 회사의 신용을 훼손하는 언동을 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 2월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를 고발하며 #미투 태그를 달았다. 박씨는 2014년 1월 말 사내 D차장으로부터 강제 키스를 당하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문제를 제기한 박씨에게 회사 측은 “성추행 사건은 조사결과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답했고 이후 박씨는 징계를 받았다.

박씨는 “지금도 누군가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 역시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힘든 일을 겪으며 명백한 적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위로가 있기를 원한다”고 썼다.

3월5일, 전직 SBS 라디오 PD가 언론인 지망생 성추행

박성원 전 세종대 겸임교수 겸 SBS 라디오 PD로부터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는 복수의 증언이 지난 5일 나왔다. 피해자 E, F씨 모두 2009년 1학기 박 전 PD의 ‘라디오 제작’ 수업을 들은 세종대 학생이었다.

▲ 박성원 전 SBS PD 겸 세종대 겸임교수.
▲ 박성원 전 SBS PD 겸 세종대 겸임교수.

E씨는 박 전 PD로부터 ‘네가 진짜 작가가 되려면 네가 먼저 나에게 섹스하자고 해야 한다’ 등의 말을 들었다. E씨는 “하루는 박 전 PD가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운 뒤 강제로 키스를 했고 손을 그의 성기에 갖다대며 만지게 했다”고도 주장했다.

F씨 또한 “하루는 박 전 PD가 밥을 사주겠다며 집 근처로 불러 ‘내가 자자고 하면 잘 거냐. 네 취향이 아니라고 하면 단념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F씨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 전 ‘친구끼리 뽀뽀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요구해 한 번 해준 적 있다”고 증언했다.

3월8일, “여기자 열 몇 명 성추행한 기자, 잘 있느냐”

“여기자 열몇명 성추행 및 스토킹해서 쫓겨났던 모 경제지 ○○○ 편집국장은 잘 계실까? 쫓겨난줄 알았는데 오너인 △△△씨가 다시 모 방송사 사장으로 앉혔던. 권력형 성범죄의 구조는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셋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님. 이른바 '조력자' 그룹도 있다. #미투 #위드유” 지난 8일 전직 기자인 이아무개씨 트위터에 올라온 ‘언론계 미투’ 글이다.

▲ 3월8일 이아무개 전 기자가 자신의 SNS에 올린 #미투 글
▲ 3월8일 이아무개 전 기자가 자신의 SNS에 올린 #미투 글

2~3월, 성폭력 목격담 연이어 제보돼

미디어오늘이 지난 한 달 간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지 못해 기사화하지 못한 제보 사례는 6건이 넘는다. 익명으로 발신된 편지엔 모 주간지 팀장 G씨가 후배 여기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술자리에 예쁜 친구를 불러봐라’ ‘친구들 예쁘겠네’ ‘(MT 갈 때도) 친구 불러오면 안되느냐’ 등의 성희롱적 발언을 해 고통스러웠다고 적혀 있었다.

한 지역 방송국의 기자 H씨가 수년 전 다수 직원들이 모인 장소에서 한 여성 인턴 기자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고 껴안으며 상의를 풀어헤친 사실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피해 기자는 그 해 정기자로 채용이 되지 않았다. 가해 기자는 가벼운 징계를 받고 최근 보도책임자로 승진했다.

▲ 익명으로 발신된 편지
▲ 익명으로 발신된 편지.

20년 전의 사건도 고발됐다. 모 일간지 매체 간부 I씨는 1996년 경 어느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기자의 엉덩이를 강제 추행해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장에 따르면 피해 기자는 사건 후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종교계 언론의 한 간부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당시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2008년 경 가해자가 한 여성 직원에게 성추행을 가했고 사건은 공론화되지 않고 유야무야 지나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1~2년 뒤 피해 직원은 퇴사했다”면서 “그러나 피해자가 나설 의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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