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후보이 당초 목표했던 10%의 득표율을 올리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 30년 동안 부딪혀 온 진보정당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판적 지지론', '사표론' 등 제1야당 중심의 선거전략 구도에 종속돼 지지율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는데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진보세력 통합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9대 대선 개표 결과 6.2%(201만7458표)의 득표율을 올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진보정당 대선주자 가운데 최고 득표율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16대 대선 후보가 2002년 기록한 3.89% 득표율을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내부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다. 정의당은 여론조사에서 두자릿수 지지율을 보이거나 TV토론에서 긍정적인 여론 반응을 이끌어내는 심 후보의 선전에 10% 이상 득표율을 예상했다. 지난 9일 저녁 8시 투표 종료와 동시에 공개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심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5.9%였다. 정의당사 브리핑실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당직자들의 표정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의당 찍었던 사람 절반이 문재인 뽑아

6.2%는 정의당이 끌어모을 수 있는 지지율 최대치가 아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7.23% 지지율을 얻었다. 노동당 0.38%,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 복지국가당 0.08%였다.

19대 총선 득표율은 통합진보당 10.3%, 녹색당 0.48%, 진보신당 1.13% 였다. 민주노동당은 17대 총선에서 13.03%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심 후보의 득표율이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의 총선 득표 결과와 비교해 낮게 나온 것은 '될 사람 밀어주자'는 전략 투표와 사표심리가 발휘된 결과로 보여진다.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정의당은 국민참여계라 불리는, 민주당에 가까운 당원들도 안고 있는 정당인데 그것치고는 (득표율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총선 때 정의당을 찍은 유권자들의 55.2%가 문재인 당선인을 뽑은 것으로 나타났다.

▲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사진=이치열 기자
▲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사진=이치열 기자

선거 막바지에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 국면이 이어지며 '소신투표 바람'이 불었으나 사표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심 후보를 향한 20~30대 청년층의 호응도 그대로 투표로 이어지진 않았을 거란 지적도 제기됐다. 김 평론가는 "20대들이 '스타덤'으로서 심 후보를 반겨주긴 했지만 그것이 표로 연결됐느냐엔 의문이 있다"면서 "잘 보면 (20대 들이) 심상정에게도 환호했지만 유승민, 안철수, 문재인에게 환호했다. 표는 어차피 한 표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심 후보 또한 1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막판에 사표론이 힘을 발휘했다는 생각이다. 정권교체 열망에 대한 국민의 간절함과 기대가 집중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 증표가 어제 출구조사 발표, 국민이 기대했던 만큼의 심상정 지지율보다 못 미친 결과였던 것 같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제1야당 위상 회복, 정의당 존재감 중요해져

진보진영 내에서는 심 후보가 7.1%를 얻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보다 낮은 지지율을 보인 점도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던 상황에서 정의당은 19대 대통령 임기 동안 더불어민주당과의 개혁연대를 구성하는 유의미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심 후보가 8% 가까운 득표율을 획득해 유 후보를 앞질렀을 경우 정의당의 국회 내 입지는 더욱 강해질 여지가 있었다. 의석 6석을 가진 정당이 의석 20석을 가진 정당보다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면 지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확장성'과 '차별화' 전략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평론가는 대선 4차 TV토론에서 심 후보의 '사장님 마인드' 발언을 한 예로 "토론회 때 선을 그어서 각자 영역을 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사장님이 되게 많다"며 "예전 민주노동당이 (사장들과) 카드 수수료 인하 운동을 한 전통이 있는데, 너무 노동자 대 자본가 선을 그은 것 같다. 선명성은 지지하는 사람이 더 지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정책에 대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장님 마인드만 있다’라고 비난햇다.

▲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 평론가는 "안철수 후보의 표가 심 후보의 표로 건너갔다는 건 여론조사 등으로 드러난 바 있다"며 "심 후보는 확장성이 있어서 더 치고 나갈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리얼미터는 4월 초와 말 안 후보의 지지율을 분석한 결과 6.3%포인트가 안 후보에서 심 후보로 이탈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 평론가는 "심 후보가 처음 치고 올라갈 때 문재인 후보를 때리면서 성동격서로 안 후보 표를 가져갔다. 그 다음에 문 후보 표를 가져오는게 필요했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보수 쪽에서 유승민, 홍준표가 나왔고 안철수도 일정 정도 보수로 비춰지는 가운데 문재인이 진보라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심상정과 문재인의 차이가 뭔지, 심상정이 문재인보다 더 선명할 뿐인 건지, 여기서 차별화 전략이 잘 먹히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6.2%, 진보정당 존재 의미 보여준 성과

심 후보의 정확한 메시지 전달은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 등의 캐치프레이즈나 TV토론에서 심 후보가 보인 모습은 유권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진보정치의 가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여성과 성소수자, 20~30대 청년층 등을 끌어안은 정치적 포섭력도 심 후보의 성과다. 지난 9일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의 심 후보 지지율은 12.7%로 8.2%의 홍 후보를 눌렀다. 30대 지지율의 경우 심 후보가 7.4%, 홍 후보가 8.6%, 유 후보가 8.9% 등으로 나타났다.


▲ 19대 대선유세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8일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12시간 필리버스킹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9대 대선유세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8일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12시간 필리버스킹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진보정당, '전략투표' 휘둘리지 않을 날은 언제

진보정치 진영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단일 정당으로는 거대 양당 구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정의당이 원내 6명의 의원을 배출하는 등 성과를 낳았으나 1987년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된 '비판적 지지론'에 여전히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 대통합론' 필요성도 거론된다. 정의당이 진보 단일 정당으로 남는 것을 넘어 다른 진보정당 및 지역·계급·계층 단위 시민사회단체들과 통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개혁 국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국민의당의 경우 당내 갈등이 심각해 질 가능성이 높아 향후 개혁 국면의 한 주축이 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지역 의원들 간 내홍이 깊어질 거란 예측이다.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간 연대도 장담키 어렵다.

심 후보는 10일 "이후 협력은 당 대 당의 협상을 통해, 개혁을 위한 공동정부 구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두 사람 입각의 문제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 분명히 말한다"면서 "(9일 문 당선인에게) 국민이 거는 기대가 크다, 촛불의 여망을 받아 성공한 개혁대통령이 되시기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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