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전에, 이 기자회견문은 최순실이 써준 게 아니라는 점부터 말씀드립니다.”

10월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한 노동계 인사는 기자들을 향해 이런 농담을 던졌다. 10월24일 JTBC의 비선실세 ‘최순실 태블릿PC’ 관련 보도로 다음날인 25일부터 모든 뉴스가 최순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최순실’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지 않은 사건 사고는 뉴스로 주목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처럼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며 자연스럽게 다른 이슈들이 가라앉았다. 미디어오늘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밀려난 이슈들을 정리해봤다.

아직 건져내지 못한 세월호

정부가 올해 안으로 인양하겠다던 세월호의 연내 인양이 결국 무산됐다. 해수부는 11일 “동절기로 접어들면서 기상 등 작업 여건이 좋지 않아 선미들기 작업을 내년으로 넘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세월호 인양장비 변경 및 추진계획 보고’에 따르면 해수부는 내년 초에나 선미들기가 가능하고, 인양완료(육상거치)까지는 선미들기 이후에도 2~4개월 더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해양수산부는 지난 9일 세월호 인양 전문가 기술자문회의를 열고 세월호 인양방식에 대해 리프팅 빔을 들어 올리는 ‘해상크레인’을 ‘잭킹바지선(2척)’으로, 선체를 부두로 운송하는 ‘플로팅 도크’는 ‘반잠수식 선박’으로 장비조합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같은날 해수부 기자실에서 이철조 세월호 인양추진단장 직무대리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불과 한 달 전인 10월14일 국정감사에서 해수부는 세월호의 연내 인양이 목표라고 답변했다. 돌이켜보면, 인양의 시기는 계속 미뤄져왔다. 지난 5월 인양 작업에 돌입한 해수부는 인양 완료 시점을 ‘7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을 근거로 인양 시기는 8월, 9월, 10월로 계속 늦춰졌다.

인양이 미뤄지는 사이 인양작업을 감시하고 인양 후 선체조사를 담당했어야 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로부터 강제 종료 통보를 받았다. 정부는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1일을 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한 날로 보고 1년6개월, 그리고 3개월의 보고서 정리 기간이 지난 9월30일 최종적으로 종료를 통보했다. 하지만 특별법의 시행령, 인력, 예산이 모두 구비된 시점은 2015년 8월4일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특조위의 조사기간은 2017년 2월까지 보장받아야 한다.  

최순실 블랙홀에 모든 뉴스가 빨려 들어간 사이,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 철거도 진행되고 있다. 권영빈 특조위 상임위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집기가 사라져 가는 특조위 사무실 사진을 올리고 “여기는 어디?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 철거 진행 중. 현 비상시국에서도 세월호 연내 인양 실패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특조위 사무실을 폐쇄하고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덮어가고 있다”고 썼다.

해수부의 인양 작업을 감시하고 검증할 기관이 사라진 상황에서 인양 작업은 해수부의 판단에 의해 계속 미뤄지고, 결국 2016년을 넘기게 됐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세월호의 연내 인양실패는 인양회사인 상하이 샐비지 측에만 의존해서 벌어진 결과”라며 “인양회사 측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해수부, 유가족, 국회 등이 추천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하여금 인양작업에 대한 검증과 검토를 병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선체인양과 특조위 해산은 큰 이슈가 되지 못한 채 최순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지만 거꾸로 세월호가 최순실 게이트와 엮여 쟁점으로 다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연결고리는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이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지난 4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라진 대통령의 7시간이 비선실세 최순실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관들은 청와대가 ‘참사 당일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서면보고 자료 일체’, ‘참사 당일 청와대 생산 접수 문서 총 목록’, ‘당시 청와대 조직도와 총원 명부’ 등을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온라인을 중심으로 7시간에 관한 시술설, 굿판설 등이 제기되며 ‘사라진 7시간’이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불이 꺼진 채 텅 비어있는 특조위 사무실. 사진=조윤호 기자
국정교과서, 최순실 국면 전환시킬까 새로운 뇌관 될까

오는 11월28일 공개될 국정교과서도 최순실 게이트에 의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이슈다. 최순실 게이트가 없었으면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언론이 곧 공개될 예정인 국정교과서의 내용을 미리 입수해 파악하고, 집필진 명단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겠지만 현재까지는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은혜 의원은 10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중단 및 폐기 촉구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야3당이 공조해 오는 11월14일 발의할 예정이다. 이 결의안에는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추진을 중단할 것, 교육부장관 수정고시와 국무회의 소집을 통해 2017년 3월부터 검정교과서가 적용되도록 준비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 외에 검찰이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에 최순실이 개입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국정교과서는 양면성을 지닌 이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라는 이념 이슈를 통해 바닥까지 추락한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려 할 것이다. 위기 때마다 이념 이슈를 제기해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방식 중 하나였다. 국정교과서가 부각될수록 정국이 보수 vs 진보의 갈등으로 전환되면서 보수-중도-진보가 모두 박 대통령을 규탄하는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 최순실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다면 국정교과서는 최순실 게이트 국면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측도 이 같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유은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교과서는 이미 신뢰를 잃었으며, 오히려 최순실 개입여부를 수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반헌법적, 반교육적, 졸속적 국정교과서 시도를 정부는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공백에 풀리지 않는 철도노조 파업

지난 8월27일 성과연봉제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한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47일 째 이어지고 있다. 공공부문 노조의 최장기 파업이다. 11일 기준으로 파업참가율은 39.6%다.

50일 가까이 파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파묻힌 정부와 정치권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사회정치적 쟁점으로도 떠오르지 못하는 탓이 크다.

그 사이 피해는 속출하고 있다. 코레일은 253명을 직위해제했고, 노조원의 11월 급여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위험한 사고도 여럿 발생했다. 분당선에서는 열차가 갑자기 멈춰 승객 150명이 탑승한 1시간10분 동안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고, 3호선에서는 열차에서 연기가 발생해 승객 200명이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대체인력의 미숙한 운전으로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공백은 파업이 장기화되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사항인 성과연봉제 철회 등은 청와대가 추진하는 정책이기에, 코레일 입장에서는 청와대의 승인이나 동의가 있어야 노조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멈춘 상황이기에 코레일이 관행처럼 직위해제를 하거나 대체인력 투입을 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야당 의원은 “흔히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정이 멈추면 관료들도 멈출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자기들이 지시받았던 일을 계속 이어간다”며 “이에 따라 오히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이 상황을 빨리 수습지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지난 2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파업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노동계의 구호는 바뀌고 있다. 성과연봉제와 노동개악이 최순실 게이트와 엮여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 비선실세가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단순히 대기업들로부터 삥을 뜯은 게 아니라, 그 대가로 성과연봉제와 노동개악 등 대기업 입맛에 맞는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앞장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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